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4-10-21   2133

[소수의견] ‘관습헌법’론을 근거로 한 위헌결정에 반대

전효숙재판관, “국민투표권 침해했다는 다수의견, 헌법해석 상 받아들일 수 없어 “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중 8명은 ‘관습헌법’론을 주장하며 수도이전은 헌법개정사항이라며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은 위헌이라 결정했습니다. 참여연대는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찬반의견을 떠나 위헌결정의 법적 근거가 타당하지 않으며, 이에 ‘관습헌법’론을 근거로 한 위헌결정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제시한 전효숙 헌법재판관의 의견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재판관 전효숙의 반대의견(헌법재판소 결정문 46쪽 이하)

가. 나는 이 사건 법률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에 관하여는 다수의견에 동의하나, 수도의 이전이 헌법개정절차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므로 이 사건 법률이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는 취지의 다수의견의 논지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받아들일 수 없어 다음과 같이 나의 견해를 밝힌다.

(1) 우선 오늘날의 입헌주의 및 복지국가 헌법이론에서 과연 한 나라의 수도의 위치가 어느 정도의 헌법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수도의 소재지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었으나, 오늘날의 입헌주의 헌법에서는 이것이 헌법의 본질적인 사항이라거나 국민주권의 원리상 국민이 직접 결정하여야 할 사항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은 국가 권력의 통제와 합리화를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려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즉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헌재 1992. 4. 28. 90헌바24, 판례집 4, 225, 230). 수도의 소재지는 그러한 헌법의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러한 목적 실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항이라 보기 어렵다. 오늘날 국민들 간에 여전히 ‘정서적인 통일의 원천’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주된 가치로 하고 있는 이상 수도의 위치 자체가 반드시 헌법제정권자나 헌법개정권자가 직접 결정하여야 하는 사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2) “서울이 수도”라는 관행적 사실이 다수의견이 말하는 “관습헌법”이라는 당위규범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다수의견이 오랜 역사와 전통의 측면에서 상세한 자료를 통해 논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자명하게 인식되어 온 관행에 속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법규범으로서 다수의견이 말하는 바의 법적 확신(“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다수의견이 타당하려면 그러한 법적 확신의 대상은 서울이 상징적 의미에서 주요 헌법기관의 소재지라는 면에서 수도이어야 한다는 당위의 형태여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실질적 의미의 헌법 중에서도 일반 법률의 상위에 있고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는, 즉 헌법개정절차에 의해서만 개정되어야할 정도의 효력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법적 확신을 모두 인정하는 것은 수도이전 문제가 최근에 우리 사회의 주된 쟁점이 된 것을 감안하면 무리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법률의 입법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동 법안에 대하여 압도적 지지를 하였는데, 동 국회의원들은 법률안 심사과정에서 수도이전 사안이 국민의 헌법적 확신을 지니는 헌법사항이라든가 그 개정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하여야 하므로 자신들의 입법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든가 하는 점에 관한 인식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다수의견은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사실명제로부터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데 있어서 법논리상의 비약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3) 성문헌법을 지닌 법체제에서,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 혹은 “특정 성문헌법 조항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

관습헌법이 인정될 수 있는 이유는 다수의견이 판시한 대로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습헌법을 인정하더라도, 성문 헌법전은 헌법제정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명시적” 의사표시로써 제정한 것으로서 국가의 법체계 중 최고의 우위성을 가지며, 그 내용의 개정은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점에서, 단지 관습헌법이라는 점만으로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할 근거는 없다. 헌법을 그와 같이 성문화한 것은 헌법이 예정한 국가권력의 통제와 인권의 최대한 보장을 객관적으로 다툴 수 없는 확고한 안정성을 가지고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문헌법의 특징은 최고법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는 강한 힘을 보유하는 것인데, 이는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관습만으로는 헌법을 특징화하는 그러한 우세한 힘을 보유할 수 없는 것이므로 성문헌법과 관습헌법이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다수의견의 논증은 헌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해석은 헌법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하며, 판례법의 형태로 나타나는 불문헌법 역시 헌법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성문헌법 체제에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대한 보완적 효력만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문의 경성헌법이 존재하는 한, 관습헌법 혹은 불문헌법은 성문헌법으로부터 동떨어져 성립하거나 존속할 수 없고, 항상 성문헌법의 여러 원리를 전개하고 완비되게 하며 계속 형성함으로써, 또한 항상 이들 원리와 조화를 이룸으로써만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헌법적 관행에 의해서 성문헌법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성문헌법전보다 불문적인 헌법의 관행례가 우선하고 국가생활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결과가 된다. 그러므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을 보완하는 의미에서만 인정될 수 있으며, 더구나 관습헌법으로써 성문헌법을 변경하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법리는 관습헌법의 내용이 헌법에 직접 규정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헌법사항”이라 하더라도 동일하다. 그러한 관습헌법의 존재로써 성문헌법의 내용을 변경시킬 수 있는 효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 이는 헌법적 안정성을 저해하고 성문의 경성헌법전을 둔 헌법제정권자의 의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설령 헌법제정시 자명한 사실이어서 성문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사항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관습으로 존재하는 그러한 헌법사항을 성문 헌법전에 수록할 수 있는 헌법개정권력을, 자신의 대표자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행사할 수 있고, 이로써 성문헌법의 효력을 가지게 할 수 있다. 마치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한 아무리 처벌필요성이 있는 사항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문헌법에 규정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법적 효력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다수의견은 관습“법률”이 아닌 관습“헌법”은 “헌법”이므로 그 변경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해야 한다고 하나, 이는 형식적 개념논리에 집착한 것이고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헌법은 성문헌법에만 헌법적 내용을 모두 수록하고 있지 않으며 때로는 법률이나 관습법의 형태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고, 그러한 내용을 통상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라 부른다. “관습헌법”이란 실질적 의미의 헌법사항이 관습으로 규율되고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며, “관습헌법”이라고 해서 바로 “성문헌법”과 똑같은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문헌법의 강력한 힘은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나왔기 때문인데, 관습은 그러한 명시적 의사도, 특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인식되기 어려운 관행의 존재와 국민의 법적 확신이라는 요소로 인정되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그러한 문제를 우회하여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고자, 관습헌법을 “반드시 헌법에 의하여 규율되어 법률에 대하여 효력상 우위를 가져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 내지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으로서 법률에 의하여 규율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니한 사항”에 한정하고 있으나, 우선 그러한 개념 한정은 “성문헌법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관습헌법”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들고, 오히려 앞으로 관습헌법을 인정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한편 “법률에 대하여 효력상 우위를 가져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은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어떤 증명된 명제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법률로 규율하기 부적합한 사항”이라는 것도 헌법논리상 어떤 기준점을 찾기 어렵다. 법률로 규율할 사항이라도 헌법에 규정되어 있으면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며, 헌법에 규정될만한 사항이라도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사항으로서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수도,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을 거론하고 있으나 그러한 사항이 왜 법률에 규정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논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다수의견은 그러한 사항은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하나, 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민주적 의사를 수렴하여 결정해서는 안 되는지, 만일 헌법개정절차가 다른 나라와 같이 의회에서 이루어지고 국민투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결론이 달라질 것인지, 의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기(태극기)와 한글의 공용문의 경우, 이 역시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사항으로서 헌법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제정 1984. 2. 21. 대통령령 제11361호)과 한글전용에관한법률(1948. 10. 9. 법률 제6호)에서 규율되고 있는데, 그러한 규정 형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수도의 지정 역시 실질적 의미의 헌법사항으로서 법률 차원에서 규정하는 것을 헌법의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 헌법전에 기재할 사항 혹은 최고법의 효력을 가져야 할 사항의 범위는 논리적으로 도출되지 않으며, 수도를 법률에 규정하거나 수도이전이 헌법개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서 입법절차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 법체계의 모순 또는 성문 헌법규정의 의미훼손을 야기하지 않는다.

수도와 같은 관습헌법의 변경을 반드시 헌법개정이라는 입법형식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개정이란 헌법의 규범적 기능을 높이기 위하여 헌법이 정하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전의 조문 내지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고치거나 바꾸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헌법의 개정은 “형식적 의미”의 헌법, 즉 성문헌법과 관련된 개념이다. 헌법제정권자가 헌법개정을 일반 법률절차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 이유는, 헌법전에 규정된 내용이 주권자의 의지의 명시적 표명으로서 이를 함부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거꾸로 헌법에 들어있지 않은 헌법사항 내지 불문헌법의 변경은 헌법의 개정에 속하지 않으며, 우리 헌법이 마련한 일반적 대의민주주의 절차, 즉 법률의 입법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습헌법이 헌법개정의 대상이라고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개념의 형식논리” 이상의 매우 엄격한 논리적 정당성이 있어야 할 것인데 다수의견은 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법률이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입법한 것이라는 가정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르나, 만일 국회가 수도이전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당리당략적으로 졸속으로 입법한 것이라면, 그것이 헌법과 국회법 절차에 위반되지 않는 한 그러한 입법의 궁극적 책임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야 하는 대의기관에 불과한 이상, 그러한 입법부를 구성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견의 논지에 따르면 아무리 국회가 이 사건 법률 제정과정에서 공청회와 청문회 등 충분한 국민의사 수렴절차를 거쳤고, 국회의원 전원일치로 법률이 통과되었더라도, 헌법개정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적 이유만으로 위헌이 되는데, 그러한 결론이 타당하리라 보기 어렵다.

(5)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변경시키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다수의견처럼 이 사건 법률이 관습헌법을 헌법개정절차를 통하지 않고 변경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관습헌법에 대하여 국회의 입법권보다 우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 규정하며, 헌법에 달리 규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입법권은 포괄적 대상을 지닌다. 입법권의 주체는 다름 아닌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며,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의 선거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정한 절차와 내용에 따른 국회의 입법은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리하는 것으로서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영국에서 “의회주권”이 인정되고, 프랑스의 경우 의회에서 만든 법률은 국민의 ‘일반의사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던 것은 국민과 의회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이전과 같은 헌법관습의 변경이, 별도로 이를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없는 경우에, 왜 국회의 입법으로 불가능한 것인지 실질적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많은 나라에서 의회가 국민의 직접투표(국민투표) 없이 단지 법률안에서보다 가중된 정족수(통상 재적의원 과반수와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데, 이는 의회가 다름 아닌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주권을 대행하는 주된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법률은 투표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반대 13인, 기권 14인)으로 재적과반수와 출석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는데, 그러한 입법이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혹은 민의를 배신하였다는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별도로 하고, 적어도 헌법적 측면에서 그것이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아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결론은 관습헌법으로써 국회의 헌법상의 입법권한을 부인하는 것이고, 이는 헌법을 변경하는 것이 되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헌법제개정절차를 통하지 않은 관습헌법에 성문헌법과 “동일한” 혹은 “다른 헌법조항을 변경시키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이는 성문헌법 체계를 벗어나는 논리로서,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국민주권의 행사를 판례법상 인정하는 것인데, 성문헌법 체제하에서 국민주권의 행사는 그것이 저항권의 행사와 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성문헌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가기관이나 헌법재판소가 무엇이 진정한 국민의 의사인지를 확인하기 어렵고 국민들 간에도 특정 사안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있으므로, 헌법이 객관적으로 규정한 제도화된 절차가 아닌 헌법 외적인 방식으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수의견은 “관습에 의한 헌법적 규범의 생성은 국민주권이 행사되는 한 측면인 것이다.”라고 하여 국민주권주의를 제시하고 있으나, 그러한 국민주권의 행사가 과연 어느 범위의 국민의 의사인지, 그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가 헌법제개정절차에 버금가는 것인지가 불명확하며, 헌법이 명시적 객관적으로 제도화 해 놓은 방식이 아닌, 헌법해석에 의해서 그러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헌법에 제도화 되지 않은 방식으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할 경우, 이는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오히려 국민의 법적 생활 및 국가의 헌법질서에 혼란을 가져오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비록 아무리 사안이 중요하고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피해야 할 것이며,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문제는 적어도 그것이 국가의 위기상황에 관련된 것이 아닌 한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사건 법률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국민은 대의기관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전달시켜 법개정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며, 국회의원들이 당략적 차원에서 이를 무시해 버린다면 다음 선거에서 패배시킬 것이고, 현재로서는 결국 그러한 국회의원을 선출한 국민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에 귀착될 뿐이다.

(6) 결론적으로 서울을 수도로 한 관습헌법의 변경이 반드시 헌법개정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없고, 현행 헌법상 국회의 입법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130조 제2항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나. 한편 나는 수도의 이전은 중대한 국가정책이므로 신중한 여론 수렴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별개의견의 취지에는 동감하나,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는 논지는 받아들일 수 없어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힌다.

별개의견은 수도이전 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이 헌법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에 부의하지 않은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므로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고 본다.

그러나 헌법 제72조가 대통령에게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재량을 주고 있는(헌재 2004. 5. 14. 2004헌나1, 판례집 16-1, 609, 649 참조) 이상,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대통령의 그 재량 여부가 달라진다고 해석할 수 없다.

헌법 제72조가 대통령에게 과도한 재량을 주고 있어 국민주권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효과적인 제도인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현행 헌법상 위와 달리 해석할만한 근거가 없다.

위 조항이 대통령에게 국민투표에 부칠 것인지 재량을 주고 있는 이상, 동 조항의 국민투표권은 대통령이 부의한 경우에 비로소 행사가 가능한 권리를 뜻할 뿐이고, 이 권리의 보호범위를 대통령에게 특정 중요 정책사안에 대한 국민투표 부의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까지 넓힐 수 없다. 또한 그러한 재량은 헌법이 직접 부여한 것이므로, 행정법상의 재량권의 일탈남용 법리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와 같이 헌법 제72조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을 국민투표에 부의했다면 이는 제72조의 명문 규정(“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따른 요건을 위반한 것이지, 재량권의 일탈남용은 아닌 것이다. 또한 우리 헌법은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가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대의제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는바, 그러한 대의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이상, 수도이전과 같은 사안이라고 해서 반드시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볼 헌법적 근거도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행정수도의 이전에 관한 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민투표권이 행사되지 못했더라도,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다.

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침해 주장은 그러한 권리의 침해가능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적법하다. 청구인들이 이 사건에서 주장한 다른 기본권의 침해 주장 역시, 여기서 상론하지 않으나,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 직접성 혹은 현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는 최후적 보충적 수단인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본안판단을 하기에 부적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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