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4-08-25   1183

<안국동窓> 판사를 흔드는 사법부의 폐쇄성

얼마 전 한 신문에서 ‘흔들리는 판사들’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그 내용은 법원의 판결과 법관 임명에 대해 시민단체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사법부 독립을 해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삼권분립 원칙에서 사법부 독립은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지 국민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도 국민의 대표이며 사법활동을 제대로 못한다면 원칙적으로는 국민이 이들을 교체할 수 있어야 하며 선거를 통해 그 구성원들을 선출할 수도 있다. 물론 소수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판사의 임명을 과반수의 힘이 그대로 반영되는 선거에 맡길 수는 없으므로 민주적 정당성과 사법활동의 독립성 사이의 일정한 타협안들이 필요해진다. 외국의 입법사례를 보면 선거를 통해 법관을 선출하거나 임기내 신임을 묻기도 하고, 최소한 법관의 임명권을 선거를 통해 뽑힌 사람에게 맡기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법관을 종신임명하거나 장기간 임기보장 등의 방법으로 다수결의 횡포로부터 보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관 임명제도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소가 전무하다. 법원은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 법원의 전 세대가 임명한 리더들에 의해 지배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법활동이 더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외부로부터 격리된 이 집단 내에서 개별 법관에게는 판결의 헌법적 정당성에 대한 평가보다는 승진 결정권을 가진 법원 지도부에 의한 ‘인성적’ 평가가 더 중요해진다. 승진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임명권을 가진 법원 지도부의 눈치나 자신의 ‘조직친화성’에 대한 법원내 평판을 세밀하게 살피게 된다. 이로써 사법부의 관료화가 완성된다. 또 국민이 법원을 평가할 수 있는 정식통로가 없으므로, 고위법관직도 국민의 두터운 신임 속에서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종신제나 임기보장제로 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몇년씩 돌아가면서 하게 되고 사법부의 권위를 더욱 깎아내리기도 한다.

결국 우리나라 법관들이 소신껏 판결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사법부 자신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시민단체의 요구도 사법부의 관료화를 깨고 사법활동에 진정한 독립성을 부여할 수 있는 법률가 양성 및 인사제도의 개혁이다. 이 상황에서 판사들은 시민단체가 판결에 대해 한 말에 걱정할 것 없다. 또 법관인사에서 여론에 밀려 자신이 탈락되었다고 낙담할 것이 아니다.

국민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활동에 자유롭게 의견표명할 수 있는 만큼 사법부의 활동에도 의견표명을 할 수 있다. 국민의 뜻은 사법부의 권위를 세우고 한국 법치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며 사법개혁이 이루어질 때 그 최대 수혜자는 법외적인 고려로부터 자유롭게 사고하며, 법의 심오한 뜻을 정직하게 발전시키는 판사들이 될 것이다.

(위 글은 8월 21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박경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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