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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1996.12.01
  • 1183
나의 사법피해사례

사람들은 나를 강간범으로 만들었다

차태명 (부산 북구 덕포1동)



1992년 7월 15일 오후 7시경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부산 북부경찰서 형사 두사람에게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나왔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나는 N다방 아가씨를 강간한 사실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아니면 그만”이니 가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19일과 20일 경찰관 두 사람에게 연행이 되어 다시 경찰서로 갔다. 아무 잘못도 없이 여러 차례 조사를 받고 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의 시간에 처와 함께 집에 있었던 내가 다방 여종업원을 강간했다니, 경찰의 수사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22일 ‘강간’이라는 죄목으로 구속되었다.

피해자라는 N다방 종업원이 92년 7월 15일 새벽 3시경에 강간을 당했다고 경찰에 고소를 했다지만 나는 그 시간에 가게 영업을 마치고 처와 함께 처의 증조할머니 팔순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나의 그런 주장은 경찰에서 완전히 무시되고 말았다. 게다가 다방 주인이 내가 나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해서 나는 꼼짝달싹 할 수 없이 강간범으로 몰려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억울했지만 경찰의 잘못이 검찰이나 재판 도중에는 바로잡아지고 나는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1,2,3심을 거쳐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와 증인 이외의 증거물은 단 두 가지, 잠겨 있는 문을 열기 위한 것이라는 쇠젓가락과 피해자의 속옷뿐이었다. 증거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는 전혀 없었다. 정형외과의 진단서 한 장이 있었지만 의사는 ‘산부인과 의사의 진료 및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단서에 명기해 두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새벽 3시, “알리바이를 대라”

이후 안 것이지만 다방 종업원의 고소장에는 가해자가 누구라는 것이 정확히 지칭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 후 경찰에서의 몇 차례 피해자 진술과정에서 가해자가 나로 지목된 것이었다. 진술도 이리저리 바뀐 것이 많고 정황도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새벽 3시에 집에 있었다는 것 말고 다른 알리바이를 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구속된 상태에서 가족들이 무던 애를 썼지만 갇혀있는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했다.

추측으로 지목받아 징역 4년 선고

가족들의 온갖 설득과 노력 끝에 3심이 끝나기 직전 다방 종업원과 여주인의 탄원서를 받아냈다. 피해자는 범인을 정확히 보지 못했고 추측으로만 판단하여 고소하였다는 내용을 자필로 써주었다. 유일한 증인인 다방 여주인도 피해자가 주장하는 말만 믿고 별다른 생각 없이 내가 범인이라고 지목하였다는 내용을 인감증명까지 첨부하여 써주었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 3일 전 두 개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지만 판단은 여지 없이 징역 4년이었다. 세상의 법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수사기관과 법원은 억울한 사건을 만들어도 좋은 것인지, 그 속에서 나는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3년 6개월, 암흑 같은 날들

나는 징역 3년 6개월을 살고 나왔다. 출소 이후 나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억울함과 분함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출소후 11개월이란 세월이 걸려 겨우 피해자와 증인을 섰던 두 사람을 찾아내었고 왜 내가 범인으로 몰려야만 했는지 하나씩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 취재 중 다방 종업원 애인과의 인터뷰에서 다방 종업원과 주인이 가해자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것과, 나를 고소해서 합의금을 받아 나눠먹기를 약속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도 확인되었다. 나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다방 종업원의 애인, 친구, 동료를 만나보기도 하고 그 사람들의 말을 녹음해 두기도 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도 만나보고 진단서를 끊어 준 의사도 만났다. 내가 확보한 증거를 가지고 나는 다방 종업원과 여주인 두 사람을 무고와 위증으로 고소했다. 고소한지 1개월이 되었지만 아직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직까지도 나는 진정 법이 국민을 위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단지 예외적인 희생양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실수로 이루어진 나의 원죄사건은 그 진실이 꼭 밝혀지리라고 믿고싶다. 나 혼자만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지만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생업을 포기하여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다닌 것이 벌써 몇 년째다.

무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나를 강간범으로 만드는 데에는 무고와 위증을 한 두 사람 이외에 검찰과 법원도 큰 몫을 담당했다. 한 사람에게 강간범의 이름을 지우고 4년 동안 차가운 감옥에 가두어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내 사건을 담당한 경찰과 담당검사, 판사는 얼마나 신중하게 내 사건을 처리했을까. 내가 무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했을까. 단 한 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그들도 유죄이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내가 고통 속에서 보낸 시간이 보상될 수는 없다. 다만 내 명예를 회복하고 나의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그날이 올때까지 나는 내 혼신의 힘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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