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11-04-28   3982

[2011/04/14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①] 죄를 짓는 환경을 생각하게 된 국민참여재판

 

이 글은 2011년 4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형사합의25부) 서관 417호 법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함께 방청한 참가자의 방청기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함께해요 국민참여재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배심제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배심원이 될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본 방청자들의 경험을 통해 여러분도 함께 배심원단이 되는 간접체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방청기를 보내주신 김명희 님께 감사드립니다.

* [2011/04/14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②] ‘법’과 함께한 산뜻한 나들이!
* [2011/04/14 국민참여재판 방청기③] 이제 사법의 영역도 국민의 품으로

*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모음]  내가 본 국민참여재판

김명희 (주부)


학자들은 국민참여재판이 동료 시민에 의한 판결을 중심으로 한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재판이라고 했다. 또 국민참여재판이 갖는 시민에 대한 법률교육 효과도 주장했다. 이에 따라  나는 새로운 재판 형식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가지고 참관을 시작했다.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살펴본 것은 바로 배심원들의 인상이었다. 이번 재판에서 선정된 배심원은 5명이었는데 모두 어디서 한 번쯤 본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유무죄를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시민으로 하여금 판단하게 한다는 국민참여재판의 취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배심원석에서 본 국민참여재판 법정
(본 사건 재판을 찍은 사진이 아닙니다)

재판의 과정은 예상한 바와 같이 배심원 위주로 돌아갔다. 검사와 변호인 모두 배심원 앞에 서서 진술을 하고 재판장이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모습에서 고압적인 자세는 찾을 수 없었다. 배심원 앞쪽에 위치한 스크린에 모든 소송자료가 현출되었고 방청객들도 대형 TV를 통해 그것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참관인에 불과한 나도 재판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사건은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해 사람이 사망한 사례였는데 피고인은 폭행에 대한 자백을 한 상태였다. 한편 검사와 변호인 모두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하나 그 정도에 대해서는 각자 의견을 달리하는 듯 보였다. 검사의 최초진술과 변호인의 진술을 듣고 있자니 정작 이 사건에서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고민되기 시작했다. 이런 고민을 예상한 것일까. 재판장이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을 짚어 주기 시작했다. 이 사건에서 배심원이 판단할 사항은 피고인에게 심신미약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와 그에 따른 형량 결정이었다. 이렇게 쟁점이 잡히니까 검사와 변호인의 진술 의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검사는 검안서, 참고인조서 등 사건조사서류를 모두 보여주었다. 피해자의 시신과 검시과정을 기록한 사진은 끔찍했다. 피해자는 죽은 몸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잘 들어주는 것이 산 자들의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피하지 않고 모두 지켜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배심원은 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고인을 향한 불필요한 연민의 감정이 방지될 것이다.

계속된 증거조사와 피고인 신문을 지켜보면서 나는 피고인의 심신이 정말 미약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기는 했으나 초등학교 때까지 적응도 잘하고 공부도 곧잘 했다는 증언과 진술서에 또박또박 써내려간 글씨체를 보니 젊은 나이의 피고인이 왜 약 3년 동안이나 노숙 생활을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검사도 최종 의견진술에서  정상인의 수준을 약간 밑도는 정도의 정신분열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피고인인 동생의 정신병 증상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잘 돌보지 못해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눈물로써 사죄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증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을 외면하는 피고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증인의 충혈된 눈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가정불화로 인해 사랑과 돌봄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던 유년기와 그들의 팍팍했던 세상살이 이야기에 한숨이 났다. 글로써 명확하게 정의되는 심신미약의 그 실질적 판단과 적용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나의 복잡한 판단에 확신을 주는 순간은 검사의 피고인 신문과정에서 찾아왔다. 검사는 피고인의 비정상적 반응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했는데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폭력성이 드러났다. 그러나 동시에 피고인의 정신분열 상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나는 그 대목에서 피고인은 단지 폭력적 성향을 가진 사람인 것이 아니라 정신과적 치료가 절실한 상태에 놓여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내 생각과 같았을까. 며칠 후 배심원 평의 결과 3년 6개월의 징역이 선고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검사가 구형한 7년 징역보다는 형량이 많이 줄어 있었다. 나와 같은 시민들의 합리적인 판단이라서 더 신뢰가 가는 결과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노숙자였던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죄를 짓게 되는 환경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병 증세를 제때 치료하지도 못하고 소외된 채 살아왔을 피고인의 삶과 밥을 얻어먹기 위해 노숙자가 되었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범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노숙자들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이 사건의 피고인과 같은 사람은 사회 공동체가 얼마든지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사회조건과 제도 확립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시민의 참여에 의한 정당한 재판은 자연스럽게 그러한 사회제도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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