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대법관 시민 후보 4명 추천

대법원,”추천방식 부적절하다”… ‘후보자 공개 타당성’ 논란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8일 대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8월 17일 임기가 끝나는 조무제 대법관의 후임으로 최병모 변호사, 박시환 변호사, 이홍훈 판사, 김영란 판사 등 4명을 후보자로 추천했다.

대법원은 지난 6월 29일 후임 대법관 제청과 관련하여, 대법관 후보를 누구든지 제청할 수 있고, 후보들을 심의할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 시민대표 3명을 참여시키는 내용으로 관련 내규를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단체들이 이 날 ‘시민단체 추천 후보’를 선정, 발표한 것이다.

이 날 기자회견에서 차병직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시민참여의 중요성과 함께 사법부가 시대변화에 맞게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책임을 강조했다.

차 변호사는 “사법부 가운데서도 최종적 판단권을 갖고 있는 대법원이야말로 현재 국민들의 생활 뿐 아니라 미래 한국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하고, “단순한 흑백논리로 진보와 보수를 이야기할 수 없는 이 시대에 맞는 사회적 가치기준을 세워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4개 단체가 후보자를 선정한 기준은 ▲법원개혁에 대한 소신 ▲여성, 노동, 환경 등 사회경제적인 약자의 입장 대변하고 인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의지 ▲행정 입법기관에 대한 적극적 견제 의지 ▲법관 이외의 다양한 사회활동 경험 등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오늘 추천한 후보들이 “사회적으로 신망 받는 분들로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대법관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는 주장이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 대변할 대법관 뽑아야”

올해 5월까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회장을 맡았던 최병모 변호사는 노동사건, 시국사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 인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호활동에 주력해왔으며,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또 환경운동연합 공익환경법률센터 이사장을 지내는 등 환경문제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다. 다양한 가치와 이해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시환 변호사는 판사로 재직한 19년 동안의 인신보호에 관한 일련의 판결에서 볼 수 있듯이 원칙에 입각한 뚜렷한 소신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특히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권리를 박탈당한 피고인을 직권으로 석방하는 등 인권의식이 투철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랜 판사경험으로 대법관으로서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능력을 두루 갖춰 법원 개혁의 내외부적 요구를 잘 접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홍훈 제주지법원장은 행정관련 판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기존 판례를 답습하지 않고 소신이 묻어나는 법해석을 하고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에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대법원 입장을 반박하는 등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이 남다르다. 이 판사는 개혁적 성향의 법조인들로부터 신망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란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소년보호관찰제도와 이혼심판실무에 관한 다수의 논문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법과 소년법 문제에 정통하다. 특히 최근까지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남편의 지나친 경제적 집착을 이혼사유로 인정하는 등 여성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안에서 남성일변도인 대법원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법원 ” 후보자 공개 추천 부적절”

시민단체 대표자들은 기자회견을 한 후 곧바로 대법원에 추천서를 접수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오후 시민사회단체들의 추천방법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사법개혁위원회가 지난 6월 대법관 제청절차 개선에 관하여 대법원장에게 제출한 건의사항에는, 후보자 추천의 공개 여부에 관하여 ‘추천된 후보자 명단을 그 추천 단계에서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되어 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댔다. 결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추천 후보를 공개한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이송희 간사는 “사개위가 제출한 건의사항 전문을 실제로 보면, ‘추천된 후보자 명단을 그 추천 단계에서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하나, 추천자가 후보자를 공개하였다는 이유로 자문기구의 심의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며, 대법원이 편의적으로 일부분만을 인용해 시민단체들의 추천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대법원이 “현재까지 후보자를 추천한 다른 단체나 개인들은 사법개혁위원회의 건의 취지를 존중하여 비공개로 추천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이 간사는, 지난 7일 경기여고 동창회가 추천한 모 판사의 예를 들며, “이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해서만 문제삼는 것이야 말로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가 최고 공직자 가운데 한 사람인 대법관을 뽑는 과정에서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추천하고 후보의 자질에 대해 공개토론을 벌이는 활동들이 오히려 사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어서 후보자 공개에 대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후보추천을 받은 대법관후보제청자문위원회는 각계에서 추천된 후보를 상대로 오는 16일까지 심사를 벌이게 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4명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지원활동은 물론,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등 관련 기구의 추가적인 자료요청이나 참고의견 요청 등에 적극적으로 응할 계획이다. 또한, 후보자 추천결과 공개를 요구와 더불어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와 국회 인사청문회를 모니터하고, 후보자 추천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대법관 후보자 시민추천의 취지

사법부는 무형의 법이라는 도구를 구체적 사건에 적용해 실제 국민들의 일상 속에서 살아 숨쉬도록 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법부는 법치민주주의의 근간이 된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있어 사법부는 일상에서의 갈등이 조율되지 않거나 각종 위법 부당한 경우를 통해 피해를 입었을 때, 최종적으로 정의의 심판을 기대하는 기관이다. 또한 사법부는 시대 및 사회적 변화로 형성된 새로운 가치관과 기존의 가치관이 대립할 경우,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책임을 떠안게 된다. 특히 사법부 가운데서도 최종적 판단권을 갖고 있는 대법원이야말로 현재 국민들의 생활뿐 아니라 미래 한국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데 있어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사회단체는 대법원 헌법재판소와 같은 최고법원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왔으며 지난 2003년에는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바람직한 대법관·헌법재판관 추천을 위한 시민추천위원회’를 결성하여 후보자들을 직접 추천하기도 하였다. 시민추천위원회는 분야별 시민단체의 추천과 법학 교수, 변호사 등 관련자들과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1차 후보자를 선정하고 몇 단계의 검증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6인을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한 바 있다.

한편, 당시 법원 내부에서도 대법관 제청 과정의 밀실주의와 내부 승진 차원에서의 관료적 인사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한 최초로 구성, 개최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비민주적 회의 진행과 제한된 논의 등에 반발한 일부 위원들이 사퇴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내·외부의 비판과 요구는 결과적으로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에 최초 여성재판관을 임명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대법원은 애초 제청 후보자로 거론됐던 3명 가운데 한 사람인 김용담 판사를 대법관으로 제청하는 대신 향후 사법개혁 논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8월의 대법관 제청파동은 이와같이 일단락 되었고, 대법원과 청와대는 사법개혁논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법개혁위원회’ 구성을 추진하여, 지난해 10월말부터 현재까지 사법개혁을 위한 제도개선을 논의하고 있다. 논의의 구체적 결과와 그에 따른 사법개혁이 어느 정도까지 실현될 것인지 아직까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사법개혁이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제도개선 노력과 더불어 사법개혁을 위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 법원의 인적구성의 변화라는 점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판결들 일색인 현재의 대법원은 곧 인적 구성에 있어 경직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컨대 내부의 엘리트 법관들이 서열에 따른 승진차원에서 대법관으로 제청되고 임명됨으로써 구성원간 다양성 확보는커녕 평등한 논의를 위한 대등한 관계 형성조차 어려웠던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 점점 더 소수의견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법원 인적구성의 다양성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하다고 판단한다. 이미 한국사회는 한 사안에 대해 보수였던 사람이 다른 사안에서는 진보로 입장을 바꾸는 등 획일적인 기준으로는 분석할 수 없는 이념·성향적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대법원 역시 다수뿐 아니라 소수도 대변하고, 남성과 여성을, 자본가와 노동자를,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이해와 요구를 골고루 대변함으로써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외부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풍부한 실무경험과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대법관은 물론이요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활동을 통해 시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사회적 요구를 읽어낼 수 있는 대법관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이 사법개혁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이번 대법관제청 과정에서부터 일반 시민들과 단체들로부터 제청 후보자를 추천받기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또한, 대법원은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이상, 추천된 후보자 전원을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대법관 추천의 가능성을 모든 사람들에게 열어둠으로써 사법개혁에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려는 대법원의 지향은 높이 살만한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을 상대로 한 보도자료와 대법원 웹사이트에 추천 공고를 내는 것만으로는 좋은 시도에 비견될만한 결과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최초로 시도되는 좋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홍보가 부족해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하다면 결과적으로는 제도 개선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관련·비관련 단체들에 추천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것은 기본적 절차여야 하고,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매체에 공고 사실을 알리고, 후보자 추천기간에 충분한 여유를 두는 것이 필요했다고 본다. 제아무리 좋은 개선안이라 할지라도 현실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일 따름이다.

또, 사법개혁위원회가 대법원에 전달한 건의문에는 “추천자가 후보자를 공개하였다는 이유로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으나 대법원은 이를 내규에 반영하지 않은 채, 여전히 비공개를 원칙(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내규 제2조 제5항)으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내규상으로 비공개 원칙이 유지될 뿐이지 실제로는 공개된 추천자에 대해서도 접수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이 조항이 이미 자타에 의해 형해화된 것으로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못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추천자 공개여부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 조항을 삭제할 것을 대법원에 건의하는 바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참여연대 등 4개 단체는 2003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법관 후보를 공개적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오늘 추천하는 후보들은 사회적으로 신망 받는 분들로서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대법관으로서 전혀 손색이 없으며 훌륭히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대법원은 사법개혁을 열망하는 다양한 시민사회의 견해를 충분히 반영하여 시대적 소명에 합당한 훌륭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기를 기대한다.

n11780f.hwp

홍성희 기자



n11780f.hwpn11780f2.hwp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