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3-11-29   1237

[기고] 노조 손배소ㆍ가압류가 제한되어야 하는 이유

노조활동을 이유로 하여 회사가 노조 및 노조 간부 나아가 그들의 신원보증인 등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하고 가압류를 하는 것은 신종 노동운동 탄압방법으로 널리 활용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용자인 기업으로서는 노동조합의 파업에 절차상 하자가 있을 경우,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노조 및 그 간부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에서 살피는 바와 같은 문제점을 차치하더라도 노조 및 노조원에 대한 손배소ㆍ가압류 관행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우선 그 결과가 보여 준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노조 지도자들의 자살과 단체행동의 격화에 관하여 손배소ㆍ가압류가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되었음은 널리 지적되고 있다. 손배소ㆍ가압류는 근본적으로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사갈등을 증폭시키는 방책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 인수 초기단계부터 이와 같은 손배소ㆍ가압류의 문제점을 해결할 것을 약속하기도 하였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과를 얻은 바 없으며, 다만 현재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준비되고 있는 이른바 “노사관계법ㆍ제도 선진화 방안”에서 손배소ㆍ가압류에 관한 부분적인 제한의 도입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활동에 대한 손배소ㆍ가압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노조활동은 원칙적으로 정당한 행위이지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문제가 되는 것은 파업이 절차상의 하자가 있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상의 하자라는 것이 대부분 우리나라의 근로관계법이 근로자들의 권익보다는 공익이나 산업평화 등을 우선시하면서 사실상 파업권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에 도입된 것들이어서, 그와 같은 규정을 모두 지키면서 효과적인 파업을 하기 어렵다는 점은 계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던 문제점이고, 손배소ㆍ가압류가 문제되는 대부분의 파업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근로자의 권리가 정상적으로 인정되는 합리적인 국가에서라면 결코 문제될 수 없는 사안이 우리나라의 경우 “불법행위”로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제기되는 대부분의 손배소ㆍ가압류는 보편적인 정당성을 얻기는 어려운 청구들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손해배상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문제가 된 사안들은 거의 대부분 노조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노조의 간부 및 주요 노조원, 나아가 이들의 신원보증인들에게까지 청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그 노조간부나 노조원들은 가족ㆍ친지들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게 되고, 결국 몇몇 사안에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까지 초래하는 것이다. 사견으로는 설사 기업이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이는 단체로서의 노조를 상대로 청구하여야 할 뿐 노조의 간부나 노조원들 개인에 대하여는 청구할 수 없는 것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노조의 간부는 노조라는 단체의 일을 행하는 것이어서, 노조에 대하여 책임을 부담하면 된다. 마치 회사의 간부나 직원이 회사의 방침에 따라 어떤 근로자를 “부당해고”하였을 경우, 회사에 대해 청구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회사의 간부나 담당직원 개개인을 상대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그 법률적 정당성 여부를 떠나 사회상규상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처럼, 기업이 파업의 주체인 노조 뿐 아니라 그 간부 및 소속근로자 개개인들을 상대로 청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열하고 “막 가는” 방책이라는 비난을 받을만하다. 노조활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없는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닌 한, 노조의 정상적 결의를 간부 및 노조원들이 이행한 것에 불과한 경우라면, 설사 파업과정상 절차상의 하자가 있는 경우에도 이에 대해 민사적인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노조이지, 노조원은 아니라고 본다.

셋째, 과연 “손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손배소ㆍ가압류에서는 소위 불법파업으로 인하여 입은 회사의 영업상 손실까지 포함하여 어마어마한 금액을 청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를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늘 느끼는 의문은 “노조가 파업할 경우 저렇게 많은 손해를 입는다면, 왜 노조와 타협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예컨대 “근로자들이 하루동안 일을 하지 않아 회사는 1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익을 잃었다” 라고 사용자가 주장하여 제소하였다고 하자.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근로자들은 평소 일을 하여 하루에 1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익을 회사에 남겨 주고 있다” 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닌가? 거액의 경제적 손실을 주장하는 회사가 노조와 타협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사견으로는 손배소ㆍ가압류에 있어서 인정될 수 있는 손해는 적극적인 손해에 한정되어야 하며, 이른바 경제적인 손해(economic loss)는 제외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반 민사 불법행위사건에 있어서도 경제적인 손해에 관하여는 대체로 손해의 범위에서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며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넷째, 마지막으로 손배소ㆍ가압류는 언제 왜 제기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쟁의과정중에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는 쟁의 종료 후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쟁의과정중 제기한다면 이는 쟁의에 휘발유를 붓는 격으로, 바람직한 선진적 노사관계의 정착을 위해서는 결코 좋은 방책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쟁의가 끝난 후 제기하는 것으로 할 것인가? 쟁의가 끝난 후 제기하는 것은 대부분 단체협약에 대한 배신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새로운 분규의 불씨가 될 뿐이다. 결국 손배소ㆍ가압류라는 것은 평화로운 쟁의의 해결을 염두에 둔다면 완전히 무용한 제도이다. 일체의 타협 없이 노조를 분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 또는 진정한 타협의사 없이 근로자들을 기망하여 일단 단체협약을 체결한 후 노조의 “뒤통수를 치는” 경우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수단이다.

손배소ㆍ가압류를 제한하는 것을 포함한,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한 특별한 행정조치 또는 입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입법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사법부에서는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압류의 경우, 필수적으로 변론 또는 심문 절차를 열어 충분한 심리과정을 가진다면, 과도한 가압류로 인한 문제점을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사가 극단적인 대처국면으로 가기 전에 한번 더 타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부여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법원의 지혜로운 재판 진행은 노사관계의 선진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글은 월간 사법감시 20호에 실릴 글입니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교수/변호사/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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