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6-12-15   1527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⑫]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에게 보내는 열두 번째 편지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의 개혁을 위해 지난 10년간 논의되었으며, 2003년부터 운영된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마침내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로스쿨 제도임에도,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의 심의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회의원들에게 로스쿨 제도 도입에 필요한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를 개혁하는데 동참할 것을 설득하기로 하여 지난달 15일부터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열 두 번째 편지는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입니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⑪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⑩ “저소득층도 쉽게 로스쿨에 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⑨ “12년 동안 우리는 멈추어 있었습니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⑧ “로스쿨은 바로 우리 교육의 문제입니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⑦ “국회, ‘변호사기득권보호위원회’의 악명을 씻어주십시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⑥ “로스쿨에서의 교육, 그 변화를 상상해 보십시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⑤ “로스쿨 반대 이유, 이의있습니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④ “획일적인 사법연수원 교육,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③ “전태일이라면 로스쿨 도입에 동의했을 것”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② “세상은 왜 로스쿨을 원할까요”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① “일본 로스쿨,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변호사 정원제 폐지의 요원함과 절실함 사이의 유일한 타협, 로스쿨

최순영 의원님의 답장을 잘 받아 보았습니다. (최순영 의원의 반론 “법학전문대학원,‘법학교육판 새만금 사업’으로 전락을 우려한다”) 교육위원회 위원님다운 지식, 논리 그리고 열정을 보여주셔서 저희 참여연대의 간사 한 분은 이런 의원님이 계신 것이 다행이라고 하셨을 정도입니다. 교육에 대한 의원님의 식견만큼 다행스러운 것은 의원님께서도 국민들에게 더욱 공정하면서도 질 좋은 법률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사법개혁의 최종 목적지에 대해서 저희들과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 의원님이 제시하신 비전은 단지 우리의 목적지만을 제시할 뿐 목적지로 가는 길을 보여주지 못하며 현재의 정치 지형 속에서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거부하고 계십니다.

로스쿨 제도는 대한변협, 법원 그리고 검찰이 사상 최초로 변호사 정원제를 폐지할 것에 동의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제도를 찬성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변호사 정원제의 전(前) 사회적 폐해에 대해서는 제가 변호사 정원제의 위헌성을 밝히는 논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으므로 다시 다루지 않겠습니다 – 박경신, 이국운, “정원제 사법시험의 위헌성”, 법과사회 18호, 299-339쪽)

그러나, 곧바로 최 의원님은 로스쿨 총정원이 존재하는 한 변호사 정원제 폐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최 의원님이 로스쿨제도가 “법학교육을 더욱 왜곡할 것”이라거나 “기득권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는 최 의원님의 주장은 로스쿨제도의 입법화 이후 로스쿨 총정원이 늘어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로스쿨 총정원이 현재 대한변협이 주장하고 있는 1,200명 선에서 고착된다면 저도 로스쿨제도가 개악(改惡)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로스쿨 총정원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로스쿨 입시과열, 등록금 인상, “귀족법학교수”의 탄생 등의 폐악을 감안하고 사회가 엄청난 거래비용을 들여 제도를 바꾼 후에 다시 제도를 고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들을 고려하였을 때, 로스쿨 제도는 추진하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저희 로스쿨 지지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새로운 법학 교육방식들도 시장(市場)이 바뀌지 않는 한 절대로 온전한 형태로 도입될 수 없을 것입니다. 토론식 및 사례식 교육 방식들은 실제 판례에서 적용되지 않는 한 수업시간 내에서만 의미가 있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뿐입니다.

반대로, 로스쿨 제도로 인해 변호사 정원제가 폐지된 상황에서 로스쿨 총정원이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로스쿨 총정원이 늘어남에 따라 사법시험을 대체할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시장(市場)이 바뀌고 교육이 바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교육은 다시 변화된 시장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로스쿨 제도가 변호사 교육을 학사과정 이후에 실시하여 더욱 경쟁력 있는 변호사들을 배출할 것이고, 또, 현재의 사법연수원으로 집중된 교육 과정을 여러 개의 기관으로 분리하여 더욱 다양한 변호사들을 배출하여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담합구조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 정원제가 폐지되어야만 더욱 다양한 성장배경 및 학력의 변호사들이 배출되고 이들이 법치주의에 충실한 이익집단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즉자적으로든 대자적으로든 하급심의 상급법관으로부터의 독립성, 판결문의 일반적 공개, 판결문을 통한 법적 논쟁 등이 전개되어, 새로운 법학교육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변호사 정원제로 모두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 정원제는 법학교육개혁의 최소요건이라는 뜻입니다.

혹자는 숫자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와 다르다고 하지만 시장이 바뀌지 않고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확인해 주는 복습장으로 변한 초ㆍ중등학교와 옛날의 본고사 수준으로 어렵게 출제되는 대입논술고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현재의 로스쿨 제도는 바로 정원제 폐지를 전제로 하고 있고, 로스쿨 총정원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결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최 의원님은 바로 그 장관을 감독하는 교육위원회에 계십니다. 지금까지 변호사들과 인적ㆍ물적으로 엮여 있는 법무부 장관이 정하던 변호사 정원과는 다른 양태로 운영될 것입니다. 또, 로스쿨 정원의 증가가 곧바로 변호사 증원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법조계가 지금처럼 극렬히 반대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 로스쿨 정원이 늘어난 상태에서 변호사 정원제는 폐지되어 최소기준의 지식과 역량을 갖춘 사람은 변호사가 될 수 있게 되므로 변호사 숫자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로스쿨 총정원의 증가라는 확신할 수 없는 가능성에 기대어 고비용의 제도를 추진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변호사 정원제가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의 깊이와 크기를 이해한다면, 변호사 정원제 폐지를 전제로 하고 있고, 이와 같은 구조적인 변화가 우선 일어난 후에 반드시 로스쿨 총정원의 증원이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제도입니다.

최 의원님께서는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우회로를 이야기 하시기 전에 현재 학부의 법학교육을 과감하게 개혁하고 변호사 자격시험의 도입을 통한 법조인 선발을 강력하게 피력하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라고 하시지만 이는 너무나 안이한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언하건대 첫째, 시장을 바꾸지 않고 교육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며, 둘째, 로스쿨 제도를 계기로 삼지 않고 변호사 정원제의 폐지(즉, 변호사 자격시험의 도입)를 말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합니다.

변혁은 이상만을 더 크게, 그리고 되풀이해서 말한다고 찾아오지 않습니다. 현실이 주는 작은 기회들을 하나하나 적립하여 만기가 되었을 때 탈 수 있는 적금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전진에도 열정을 걸 수 있어야만 합니다. 단순한 준법운동에 온몸을 던졌던 전태일은 이와 같은 취지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공공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유주의’와 공공성의 영역을 좁히는 ‘신자유주의’는 명백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최 의원님은 ‘모든 것을 시장의 기능에 맡겨버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유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가 “실제 국민들에게 절실한 것”인지를 물으셨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로스쿨은 신자유주의가 아닙니다.

최 의원님은 로스쿨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계신 이유가 변호사 증원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도 아니고 변호사 교육의 민영화를 동반하기 때문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최 의원님이 로스쿨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시는 이유는 ‘개방 되어가는 법률시장에 대처하며 국제적 사법체계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적인 경쟁력과 다양성을 목표로 하는 법조인 양성계획에 따라 계획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현실에 대응하려고 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에 경쟁하기 위해 스타들의 독점 이윤을 제한하기 위한 구조 조정을 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아마도 최 의원님이 로스쿨을 신자유주의로 분류하는 이유는 현재 국가가 사법연수원을 통해 지불하고 있는 변호사 양성 비용을 ­ 그래서 가난한 사람도 한 푼 들이지 않고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 개인이 지불해야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상희 교수님이 노회찬 의원님에게 보낸 서한에 잘 정리되어 있듯이 국가는 로스쿨을 운영하는 대학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계속 변호사양성에 공공자원을 활용하도록 정책적인 정비를 하면 됩니다. 또, 변호사들의 최소한 16%는 사회취약계층 출신으로서 등록금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리고 10%는 사회취약계층 출신으로 보장됩니다. 최 의원님은 이 숫자를 “사회취약계층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극소수의 상위계층 자제들 이외의 다른 대다수의 학생들은 등록금의 부담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라고 폄하하셨는데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과연 현재의 변호사들 중에서 사회취약계층 출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며, 과연 장애인들 및 극빈자들에게 10%의 쿼터, 그리고 20%의 장학금의 의미가 그리 작은 것일까요? 민주노동당의 목표는 현재의 산술적 다수(多數)의 복지인가요, 종속 및 상하관계가 용해되어 최약계층도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인가요?

로스쿨을 구태여 분류하자면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주의는 공공의 영역을 축소하는 제도가 아니라 공공의 영역을 확대하는 제도입니다. (정태욱, ‘정치와 법치’ 참조) 여기서 공공의 영역이란 정치표현의 자유가 공익과 동일시되어 보호된다는 의미이며, 로스쿨제도를 통한 정원제의 폐지는 표현의 자유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인 재판을 통해 주의주장을 펼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는 것이며 그런 활동을 직업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정확히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다시 한번 저의 주장을 말씀드립니다.

자유주의적인 제도라 할지라도 구시대의 특권을 해체하거나, 과거에 짓밟혀 왔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주거나, 경쟁의 틀을 공정하게 다시 짜주는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공공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유주의’와 공공성의 영역을 좁히는 ‘신자유주의’는 명백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아니 한국이 아무리 사민주의를 지향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변호사 숫자가 필요하고 최소한의 법치주의가 필요합니다. 또 변호사들이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변호사 증원은 반드시 필요하고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그 목표에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로스쿨 제도를 지지해 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2006년 12월 15일

박경신 드림

박경신(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고려대 법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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