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8-02-20   3444

[두 번째 국민참여재판 방청기] “배심원들은 사건을 정확히 이해했다”


이 글은 지난 2월 18일 청주지방법원에서 국내에서 두 번째로 열린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하고 난 뒤, 재판내용과 방청소감 등을 기록한 방청기입니다.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도입을 주창해온 참여연대는 직접 방청하지 못한 시민들이 방청기를 통해 국민참여재판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앞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재판 방청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박근용(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



예상보다 오래걸린 국민참여재판



올해부터 시행되는 국민참여재판의 두 번째 사례는 지난 18일(월) 청주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재판이 있기 전 며칠 전 평소 아는 분으로부터, 이번 사건은 정신지체 장애인이 피고인이고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전에 공개된 재판일정을 보면, 하루만에 재판이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검사와 피고인간에 사건의 기본사항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모양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청주지방법원 웹사이트에서 사전에 볼 수 있었던 재판계획표는, 오전 10시30분부터 배심원 선정절차를 진행하고, 1시30분부터 증거와 증인 등에 대해 조사하는 변론절차, 그리고 6시부터는 배심원 평의를 하여 대략 저녁 7시에는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재판은 그러지 못했다. 자칫하면 다음 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재판이었다.
2월 18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내 두 번째 국민참여재판의 모습. 판사석의 왼쪽의 6명이 배심원들이고, 배심원석 왼쪽에 검사, 그리고 배심원 맞은 편에는 증인, 검사 맞은 편에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좌석이 배열되어 있다.











 
오후 5시 40분경, 재판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피고인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 신문이 시작될 차례였고, 그 다음에는 검사와 변호인의 최후 진술, 그리고 피고인의 최후진술, 배심원 평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재판장이 예상보다 1시간 정도 늦어지고 있는데, 가급적 피고인 신문을 압축적으로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러자 변호인이 일어서, 피고인측의 입장에서는 오늘 재판중 피고인 신문이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1시간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 순간 방청석에서도 어휴~하는 숨소리가 들렸고 재판장도 조금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변호인의 말대로라면, 피고인신문과 검사와 변호인측의 최후진술만 생각해도 7시 30분이 넘어갈 것이 예상되고, 배심원 평의와 평결, 최종 판결 선고까지 감안하면 밤 9시가 넘어야 재판이 끝날 것이라는 계산이다. 모두들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방청객들의 처지도 걱정이지만 배심원들의 처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재판장도 이 부분을 제일 많이 걱정하는 눈치였다. 재판을 일단 중단하고, 내일 다시 재판을 열 수도 있겠다는 말을 한 재판장은 휴식을 선언하고 판사실에서 검사와 변호인과 함께 이후 재판진행을 협의한다고 말했다.



검사와 변호인과 협의를 한 뒤 10분 후 법정에 돌아온 재판장은 일단 재판은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판장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아마 변호인과 검사측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남은 과정을 진행하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았다.



일반적인 재판을 보면, 재판장이 예정했던 재판시간을 초과하면, 판사들은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에 이어서 하겠다고 하면 끝이다. 그 다음 재판은 한 달 후 또는 2주일 후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판사가 재판일정을 조절하는 것이 쉬웠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인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배심원들을 다음날 다시 출석시켜야 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재판장이 무조건 빨리빨리 재판을 진행할 수도 없다. 재판장 자신은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검사와 변호인들의 말을 중간에 자르기 어렵다. 배심원들이 충분히 이해했는지 재판장이 신경써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 배심원들에게 사건의 내용과 각자의 주장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게끔 검사와 변호인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피고인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동안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재판결과에 상관없이 만족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외딴 시골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이날 재판에서 다룬 사건은 다음과 같다.



스물일곱 살의 피고인 전 모씨는 서울의 가리봉동에서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던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나 두 살도 되기 전에 ‘갑상선 기능저하’라는 정신지체 장애를 앓기 시작했다.


특수학교를 다니거나 적절한 치료를 감당할 여건이 안 되었던 집안사정 때문에, 피고인은 일반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하였다. 성적은 최하위권이었다. 피고인은 열아홉 즈음에야 군대 문제 때문에 공식적인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병원에서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없이 충북 영동의 외딴 시골 마을로 이사 온 피고인은 아버지의 얼마 안 되는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이 생활의 대부분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장애인 고용지원센터 같은 곳을 통해 서너 차례 공장에 취업시켜보았지만, 사나흘 또는 하루만에 공장에서 쫓겨났다.



피고인은 집에 혼자 있거나 할 일이 없는 경우에는 가끔 소주를 혼자 마시기도 했는데, 외딴마을이라 친구도 없었던 그는 걸어서 4~50여분 떨어진 이웃마을에 사는 이번 살인사건의 피해자 할아버지(83세)와 이야기를 하거나 함께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피해자 할아버지 역시 혼자 살고 있었고 성격이 괴팍하여 주변 이웃들이 그를 싫어했던 처지라, 피해자와 피고인은 가끔씩 술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 해 12월 13일, 피고인은 낮 11시 경에 자전거를 타고 이웃마을 피해자 할아버지 집으로 갔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피해자의 집에서 소주 1병을 나눠 마시고, 가게로 가서 1병을 더 나눠마셨다. 술의 대부분은 피고인이 마셨다고 한다.


다시 피해자의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소주 1병을 또 나눠 마셨고, 4시 경 피고인은 바람을 쐬려 자전거를 타고 마을 주변을 다니다가 40여 분이 지나서 피해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4~5시간에 걸쳐 피고인은 3병에 조금 못 미치는 소주를 마셨고, 범행 직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갔다 올 정도의 상태였다.


바람을 쐬고 다시 돌아온 피고인은 피해자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피해자가 평소 술을 먹으면 자꾸만 반복하는 이야기(태풍 루사때 사망한 이웃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또 반복하자 갑자기 짜증이 났다. 갑상선 기능저하 증세로 체중이 많이 나가던 피고인은 체중이 50kg도 되지 않고 연로한 피해자를 눕히고 그의 가슴에 올라앉은 후 목을 졸라 실신시켰다(부검 결과 목뼈가 부러졌다고 함)고 한다. 이어서 피고인은 씽크대에 있던 칼을 가져와 실신해있던 피해자의 상의를 올린 후 맨살을 드러내게 한 후 칼로 배를 찔러 죽였다. 그러고 나서 피고인은 씽크대로 돌아가 식기세제로 칼을 씻고 칼꽂이대에 칼을 넣어둔 뒤, 곧바로 집을 나와 경로당에 있던 마을 주민들에게 “할아버지가 죽어 있더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마을주민들이 피해자의 죽음을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다음 날 피고인은 평소 아는 목사에게 범행을 자백하였고, 피고인은 살인죄로 청주지법 영동지원에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함에 따라 피고인에 대한 재판은 청주지법(본원)에서 진행되게 되었다. 물론 재판부는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피고인이 배심원들 앞에서 재판을 받을 상태인지를 여러 차례의 재판준비과정을 통해 세심히 확인하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것을 최종 결정하였다.






28명의 시민중에 6명이 배심원으로 뽑혀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 규정에 따라 이 날 재판도 오전에 진행된 배심원 선정절차는 공개되지 않았다. 나중에 재판장과 법원 관계자로부터 들은 바로는 청주지방법원 관할 지역(청주시, 청원군, 보은군, 진천군, 증평군, 괴산군) 거주 주민 100명에게 배심원 후보자로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고 한다.


그중 11명에게 보낸 출석통지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배달되지 않고 반송되었으며, 통지서를 받아보았던 89명중 28명이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된 배심원 선정절차에 참석하였다. 89명중 사전에 불출석 이유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다


지난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국민참여재판의 경우는 예비배심원을 포함해서 배심원은 모두 12명이었다. 그 때 법원은 230여명에게 통지서를 보냈다고 했으며 그중 38명이 배심원 선정절차를 위해 법정에 출석했다고 했다.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번 재판의 경우도 12명의 시민을 배심원으로 뽑는게 원칙이다. 하지만 범행을 피고인이 자백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배심원 숫자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규정에 따라 이 날 재판은 예비배심원 1명을 포함하여 6명의 시민이 배심원으로 최종 선정되었다.



법정 입장에 앞서 소지품을 검사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오후 재판이 시작된 오후 1시 30분을 조금 넘겨 법정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배심원석에는 6명의 배심원들이 앉아있었다. 배심원석은 6명이 앉을 수 있게끔 한 줄로 배열되어 있었다. 만약 배심원이 12명이었다면 두 줄로 배열해야 했을 텐데, 그러면 배심원석과 피고인 또는 증인석까지의 거리가 너무 가까울 것 같았다.



국민참여재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적당한 법정 공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등의 물리적 준비도 빨리 끝나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청주지법은 올해 5월에 신축건물로 이사를 간다고 하니, 앞으로는 나아질 것 같다.



배심원석에 앉은 6명은 남자가 4명, 여자가 2명이었다. 법원행정처 형사정책심의관실 판사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대 3명, 30대 1명, 40대 1명, 60대 1명이었다(60대 배심원은 사실 예비배심원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단계였던 배심원 평의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직업분포는 회사원 2명, 학생 1명, 자영업 1명, 주부 1명, 무직 1명이었다. 다양한 분포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피고인의 상태에 대한 검사와 변호인의 팽팽한 대치



배심원들이 평의에 들어간 뒤, 국민참여재판에 진행과정에 대한 소감을 취재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검사의 모습. 청주지검 영동지청 근무중이며 피고인을 기소한 검사이다.
재판장이 배심원에게 국민참여재판의 진행방식과 배심원들의 역할, 주의할 점 등을 설명하고 난 뒤, 검사와 변호인의 최초진술이 진행되었다. 이어서 검사와 변호인은 오늘 재판에서 각자의 주장을 어떤 방식으로 입증할 것인지 등 앞으로의 계획을 배심원들에게 설명했다.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 같은 절차를 거치고 나니, 오늘 재판에서 다룰 사건과 쟁점을 머릿속에 그림그릴 수 있었다.



다음으로 검사와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신문절차가 시작되었다. 검사측에서는 사건을 수사한 영동경찰서의 형사를 불렀고, 변호인은 피고인의 아버지와 피해자의 둘째 아들을 불렀다. 변호인은 피고인이 정신적으로 비정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증인으로 불렀고, 피해자 가족이 피고인의 선처를 바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피해자의 아들을 증인으로 불렀다.


검사측이 부른 형사에 대한 검사의 질문이 끝나면, 변호인이 반대신문을 벌였다. 변호인이 부른 증인에 대한 신문은 그 반대 순서로 진행되었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는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증인들에 대한 신문은 그냥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변호인과 검사간의 대치가 팽팽했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이에 반해 검사측은 피고인의 정신지체3급은 다만 지능발달이 지체되었을 뿐이지 환각이나 환청 등을 겪는 정신질환이나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검사는 피고인이 먹는 약은 갑상선기능저하를 막는 약이 뿐이고 이 약을 며칠 먹지 않더라도 나타나는 증상은 정신질환이 아니라, 몸이 매우 피곤해지는 정도뿐이라 했다.


이에 반해 변호인은 피고인은 그동안 내과나 재활의학과에서 진찰받은 게 전부이지 정신과 진찰은 아직 받은 적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내과에서도 정신과 진찰을 받을 것을 권했다는 점을 반박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검사측은 술을 여러 병 먹었지만 서너 시간 넘는 장시간동안 나누어 마셨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건을 더 정확히 파악하게 해준 배심원들의 질문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우려중의 하나는 배심원들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까 하는 점이다. 배심원들이 증거로 제시된 주장이나 자료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궁금한 점이 있는 상태로 재판을 마치면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중간에 배심원들은 재판장에게 질문지를 전달하고, 질문내용이 부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재판장이 판단하면 재판장이 배심원을 대신해서 증인에게 질문할 수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이런 장면이 네 차례나 있었다.



3번 배심원은 증인으로 출석한 영동경찰서 형사에 대한 증인신문 마지막 단계에서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지문이 발견되었는지 여부를 질문하였다.



2번 배심원과 4번 배심원은 피고인의 아버지에 대한 신문을 끝내기 전에 재판장에게 질문지를 제출했다. 재판장이 대신 읽어준 질문 내용은, 피고인이 평소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거스름돈을 받는 일에 문제가 없는지, 식사준비같은 것을 혼자서도 하고 식기세제를 이용해 설거지도 하는지 등등 피고인의 평소행동과 정신적 상태를 묻는 것이었다.



또 피고인의 선처를 바란다는 피해자의 아들에게도 배심원들은 추가 질문을 하였다. 1번 배심원과 4번 배심원은 재판장을 통해 선처를 바라는 구체적 이유가 무엇인지, 피고인과 피해자가 사건 전에도 다툰 적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재판의 막바지 단계였던 피고인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는 3번, 4번, 5번, 6번 배심원이 질문지를 제출하였다. 그들은 피고인이 술 때문에 병원진찰을 받은 적이 있는지, 술은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 등을 물었다.



이 질문들은 검사나 변호인도 각 증인들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사건의 내용과 배경을 이해하는데 아주 적절한 질문이었다.





배심원들은 사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오후 1시.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제1호 법정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서있는 시민들. 학생과 경찰이 많은 수를 차지했다엉뚱한 질문 또는 검사와 변호인이 이미 확인해준 내용을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고 재판진행과정에 비춰봤을 때 적절한 질문이 있었다는 점은 배심원들이 재판에 매우 잘 집중하고 있었다는 점과 함께 그들이 재판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대구지법에서 있었던 첫 국민참여재판과 이날 청주지법에서 있었던 두 번째 재판에서 다룬 사건이 아주 복잡한 사건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두 사건의 재판정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두 사건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배심원석에 앉아있었던 배심원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걱정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시민들의 능력이 웬만큼 갖추어져 있다는 것도 있겠지만, 재판장과 변호인, 검사들이 배심원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만하면 얼마든지 국민참여재판은 가능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건의 개요와 상세한 내용을 조목조목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검사와 변호인은 한 순간도 판사석에 앉아있는 재판장과 배석 판사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증인과 배심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배심원들이 자기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재판장도 검사와 변호사가 한 말과 재판진행절차를 배심원들이 잘 이해했는지를 세심하게 확인하였다. 재판과정을 함께 보았던 충북대학교의 박광배 교수님(법심리학)은 ‘품위있는 재판’이었다고까지 높게 평가하였다. 배심원들이 혹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간중간에 배심원들에게 물어보고 궁금한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려고 재판장이 애썼다는 점을 칭찬한 것이다.





유태인의 이야기까지 나온 변호인의 최후 진술



오전 10시 30분부터 시작된 배심원 선정절차부터 계산해보면, 무려 8시간도 훨씬 지난 저녁 6시 50분. 징역 10년 형에 처해달라는 검사의 최후진술과 구형에 이어 변호인의 최후 진술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법정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모습처럼, 변호인은 배심원들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유태인 이야기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랍비여, 저 자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저 사람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저 사람의 부모의 잘못입니까?”. 이어서 15분쯤 진행한 최후 진술의 마지막을 변호인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마무리하였다. “배심원 여러분, 저 피고인이 정신지체 장애인이 된 것은 저 사람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저 사람의 부모의 잘못입니까?”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이어졌다. 재판장의 호출에 자리에서 일어선 피고인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만 세 차례 반복했다.



7시 15분. 배심원들에게 평의진행방식과 주의할 점 등을 차분히 설명한 뒤, 재판장은 변론 종결을 선언하고 배심원들은 평의실로 가기 위해 판사석 뒤 출입문을 통해 법정밖으로 모두 나갔다. 이제 예비 배심원으로 밝혀진 2번 배심원만을 제외하고 5명의 배심원들이 평의를 통해 유무죄를 정하고 양형을 토의할 것이다.



언제 평의가 끝날지 알 수 없기에 저녁도 먹지 못하고 방청석에서 기다리기를 1시간 20여분. 8시 35분에 판사들과 배심원들이 법정으로 돌아왔다.



재판장이 피고인에 대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이같은 재판부의 판결은 배심원들의 다수의견과 일치한다고 밝혔고 배심원들의 의견 중에서는 중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추측해보면, 징역 6년 이상을 주장한 배심원도 있었고, 그보다 조금 낮은 처벌을 원한 배심원도 있었던 모양이다.



마침내 재판이 모두 끝났음을 재판장이 선언했다. 이제 배심원들은 귀가할 수 있었다. 피고인은 다시 유치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방청객들도 모두 일어서서 귀가할 준비를 했다. 이 시각이 밤 8시 45분이었다. 배심원들도 판사들도 모두 수고한 두 번째 국민참여재판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재판이 끝나고 언론사 기자들이 배심원에 대해 취재하기 시작했다. 소감을 묻는 여러 기자들 앞에서 5번 배심원이 차분하고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장시간이라서 힘들었지만, 공정하게 재판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람차고 의미있는 하루였습니다”





동료 시민들과 대법원에 부탁드리고 싶은 것



앞으로 또 언제 어디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많은 시민들이 직접 방청해보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시민들이 감당하지 못할 제도가 아니라는 것을 방청경험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데 국민참여재판 일정을 알려주는 곳은 없다. 대구지방법원과 청주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최근 2차례의 재판은 그나마 전국 최초, 충청권 최초라는 의의가 있어서인지 각 지방법원 홈페이지에서 재판일정을 소개했고 언론에서도 미리 알려주었다.



그러나 계속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생소한 느낌을 빨리 없애기 위해서는 국민참여재판을 시민들이 많이 방청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대법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사건은 그 일정을 알려주는 코너를 대법원 홈페이지에 만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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