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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1996.12.01
  • 1053
이것만은 고치자

사법통계의 허와 실

한상희(경성대 법학 교수)

현상의 서술방식을 명사적인 것과 동사적인 것으로 나눈다면, 미세한 차이만을 가질 뿐인 현상들을 굳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구획하고 단언하고자 하는 방식이 전자에, 어떠한 기성의 준거에 사상(事象)들을 고착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방식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진리/허위, 선/악의 명명법과 같이 중간적 존재가 누군가의 기획에 의하여 배척되어 버리는 배제의 논리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인간생활의 다양한 모습들을 일도단언적으로 규정하는 통계는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통계가 취함과 버림이라는 재단(裁斷)의 도구로 변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면, 그 통계의 마술은 지배와 권력의 욕망에 유용한 ‘정당화’의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부통계처럼 『사법연감』도 이러한 단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통계기법상의 미숙이나 이해부족인지, 또는 별도의 통계목적 내지는 활용방안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료로써 1년간의 사법실태들을 보고자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통계자료의 존재의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자료의 1996년판을 보기로 하자. 사건별, 지역별 등 명확한 구분이 가능한 변수에 대한 빈도수는 어쨌든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간이나 금액, 형량 등과 같이 연속적인 변수에 대하여는 너무도 간단한 구획적 사고가 드러난다. 예컨대, 민사본안사건 소송물 가액별 통계자료는 그 구간 자체가 500만원단위에서 천만원, 2천만원, 5천만원, 1억원, 2억원, 5억원, 그러다가 귀찮은지 아예 10억원 이상의 단위로 뛰어 버린다. 이로써는 인구나 소득의 분포에 따른 제소성향의 여하에 대한 분석은 포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구간의 상승에 따라 빈도수가 급감하는 것은 사실이고 이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대로 참고 읽어 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기간이나 형량이 이런 식으로 1개월단위에서 1년, 2년, 5년, 15년과 같이 가속도를 붙여서 처리됨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예컨대, 민사본안의 제1심 합의사건에서 평균 7.1개월만에 판결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그 계산방법을 보면 실측치가 아니라, 펄펄 뛰어 다니는 구간들의 중간값으로 계산한 결과임을 ‘선언’하고 있다. 과연 이런 계산법이 타당할 수 있는가? 중간값의 대표성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 법원의 심리가 일정한 기간을 단위로 진행되는 현상은 여기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으며, 현재 관심의 대상인 집중심리제의 효과는 이 자료에서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이며, 예외적인 사건들이 이 평균값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인신구속은 전통적으로 사법작용에서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사법연감에서는 죄명별 영장발부통계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법원별로만 분류되어 있을 뿐이다. 법관 1인당 부담건수도 마찬가지이다. 지방법원 평균 본안사건 786.7건을 처리하고 있는, 초인적 능력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당 몇 번의 심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법원에서는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홍보차원의 통계에 그칠 뿐, 한 해의 형사사법실태의 동향은 파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법연감은 우리의 사법에 관하여 손쉬운 자료획득이 가능한 유일한 통계집이다. 그것이 있기에 대충 일관만 하여도, 변호사법위반사건에 대한 집행유예 대비 자유형의 선고비율이 강력범을 제외한 여타의 그 어떠한 형사범보다 높음을 알 수 있고, 쉽사리 왜 이런가? 라는 의문을 떠올리고 또 그 원인을 규명해 보고자 시도해 볼 수 있다. 통계는 추상화와 일반화를 목표로 하는 만큼, 통계속에 숨어 있는 미세한 인간사를 반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때문에 현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얼마든지 양산될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한다. 그런 만큼 그 통계를 바탕으로 별도의 분석과 평가를 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사법연감의 통계자료들이 단순히 사법부 홍보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바람직한 사법정책의 수립을 위한, 보다 전문적인 분석과 평가의 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보다 ‘과학적’이고 ‘독자지향적’으로 체계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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