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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감시紙
  • 1996.12.01
  • 836
단평

‘한건주의’ 수사, 춤추는 언론

편집부

지난 7월 16일자 서울신문에는 「좌경조직 14명 구속/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내용은 경찰청 보안국이 대학가 좌경세력인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소속원 11명을 국가보안법위반(이적단체 구성)혐의로 구속하였고, 국군 기무사도 현역병 3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수사 중이라는 것이었다. 경찰이 발표한 구체적인 혐의는 “이들이 지난 94년 9월 영남대에서 대학가 좌경조직 핵심 주동자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21세기 연합』을 결성하고 기관지 ‘진보’ 등 2백여가지 문건을 통해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해 왔으며, 의회ㆍ군대ㆍ행정기구 등 국가 주요기관내에 혁명진지를 안정적으로 구축하여 노동자계급에 의한 사회주의 사회실현을 목표로 하는 강령을 채택했다“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중앙일간지가 이러한 발표내용을 거의 그대로 보도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11월 24일자 서울신문에는 7월 16일자 기사와는 도저히 양립될 수가 없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즉 「서울대 총학생회장 비운동권 복학생 당선」이라는 제목하에 “지난 8월 연세대에서 폭력시위를 주도했던 한총련주류인 민족해방(NL)계열의 과격ㆍ폭력노선에 반기를 들고 ‘한총련 개혁’을 내건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의 후보가 39.9%의 득표율로 다른 4명의 후보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같은 신문에 실린 이 두 기사는 하나의 학생단체가 불법적인 “이적단체”인 동시에 평화적인 “비운동권단체”이라는 너무도 상반된 판단을 보여주고 있어 읽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러나 아무리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불과 4달사이에 어떻게 이적단체가 비운동권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한편 11월 25일자 조선일보는 “「21세기 연합」은 … 문민정권이 출범함에 따라 학생운동에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들은 그동안 학생운동을 주도해 온 주사파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화염병 폭력시위를 자제하자고 주장, 운동권 과격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통일문제에서는 남북한을 동시 비판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 9월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에는 북한의 공식해명을 요구했었다.”고 보도하였으며, 11월 23일자 한국일보도 같은 취지로 보도하였다.

이러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친북도 아니고 폭력으로 국가를 전복하려는 의도도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입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결성된 학생단체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성향을 가진 공개적인 학생단체의 존재가 국가의 존립ㆍ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단체를 이적단체로 보는 것은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민주주의의 근본원리를 뿌리에서부터 부인하는 것이며, 우리사회에서 “진보”내지 “사회개혁”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적행위”라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경찰청이 발표한 구속자 중 5명이 훈방 내지 구속취소로, 나머지도 제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로, 기무사에 의해 구속된 3명도 기소유예로 모두 석방되었다. “용두사미”의 전형적인 예다. 경찰은 국가보안법을 남용하였고 일부 언론은 정확한 사실확인 없이 경찰의 발표만으로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하는 무책임한 부실보도를 한 셈이다. 수사기관이 시시때때로 발표하는 이러한 수사결과와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언론에 의해 무고한 학생이나 시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언론이나 수사기관이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 그리고 일관성을 가졌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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