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칼럼(jw) 2004-06-07   1139

<안국동窓> 사개위, 개혁의 주체 혹은 대상?

[대법관제청에 관한 건의문]에 대한 비판

사법개혁은 과거 권위주의적 통치가 법의 이름으로 사법의 권위하에서 정당화되었던 아픈 경험을 청산하고 그 법과 사법을 국민의 것으로 되돌림으로써 최근 20년래 계속되어 온 우리 국가의 민주화과정을 일단락짓는 최소한의 요청이다. 그래서 사법개혁은 새로이 출범한 참여정부에 제기되는 최대의 국민적 요구사항이었고, 사법개혁위원회는 이러한 국민적 개혁 드라이브를 구체적인 개혁대안으로 수렴하고 실천하는 기구로서 상정되고 또 그만큼의 역할이 기대되어 왔다.

하지만, 사법개혁위원회는 그 설치나 구성의 과정에서부터 타협적, 개량적 국면으로 일관함으로써 이러한 국민적 기대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더니 급기야 최근 사법개혁위원회가 내어놓은 대법관제청절차에 관한 건의문은 이 위원회의 존재의의에 대하여조차 회의하게 만들고 있다.

이 건의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 중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하여 개혁적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머리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이에 관한 실천적 대안이 추상적 수준에서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냥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으로 넘어갈 만하다. 문제는 현재의 대법관제청과정이 어떠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임시미봉적 수준에서라도 그것을 치유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인식론적 토대를 확보하여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조금의 반성과 고민도 엿보이지 않는 “구체적 건의안”부분이다.

우선 건의안은 대법관제청자문기구의 구성에 관하여 종래의 법원 및 법조의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패러다임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법관의 인사절차를 법조관료의 승진심사 정도의 수준에서 설정함으로써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에 의한 시민사회의 대표로서의 대법관 선출이라는 사법민주화의 본래적 의미 자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원외의 법조대표로서 현역의 법조인-법무부장관 및 대한변협회장-을 두 명이나 포함시킴으로써 권력분립의 이념이나 이익충돌금지의 원칙이 지향하는 법정신에도 부합하지 않은 셈이 된다. 더불어 한국법학교수회장을 법학교수의 공식적 대표로 인정하고 있는 사법개혁위원회의 대담성에는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국민일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덕망 있고 경험이 풍부한 인사 3인”의 경우 역시 사법개혁위원회의 무성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덕망과 경험있는 인사’를 누가 어떻게, 어떠한 절차를 통하여 선발하는가는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대표 1명이 들어가고 아니고의 문제보다는, 텅빈 머리로 줏대없이 법원측 아젠다에 휩쓸려 버리고 마는 쓰레기통모형의 위원회구성을 막을 수 있는 방책 그 자체가 진정으로 사법개혁위원회에 주어진 숙고의 과제인 것이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자문기구가 가지는 그나마의 대표성마저도 무위로 돌리버리는 사법개혁위원회의 무비판성(혹은 낮은 의식수준)이다. 건의문은 “대법관제청자문기구는 심의과정 자체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으나”라고 단언한다. 자문기구의 심의과정이 공개되지 아니하는 것은 단순히 그 후보자의 프라이버시보호라는 사익적 차원을 넘어서는 중대한 공익적 하자를 야기한다. 즉, 그것은 자문기구에 참여하는 위원들 특히 법조단체 또는 시민단체의 대표로서 참여하는 위원들이 자신을 파견한 단체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함을 의미하고, 따라서 그들이 외형상으로는 대표성을 갖는지는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하등의 대표기능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대표로 만들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법학교수들의 대표로 참여하는 위원이 A, B, C 등 3명의 후보자에 관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면 그것을 다시 법학교수들의 단체로 가져와서 그 단체 구성원들의 평가와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그 다음 회의에서 그 위원은 자신의 의견이 아닌 법학교수들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명단의 공개는 법학교수들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수렴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공개원칙을 사법개혁위원회가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음은, 개혁을 위한 사법개혁위원회가 오히려 자문기구의 민주성을 스스로 부인하고 그 과정에서 개혁을 향한 국민적 요구를 왜곡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자문기구의 구성원들이 대법관제청에 관하여 심의하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심의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그에 대하여 시민들이 어떻게 판단하는가라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대법관의 제청과정에서 시민들과 긴밀한 의사소통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나아가 그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열린 절차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사법개혁위원회가 진정으로 모든 역량을 다 소모하면서까지 강구하여야 할 핵심적 개혁과제이다. 하지만, 지금의 사법개혁위원회는 이러한 개혁의 과제 자체에 대한 적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안건들을 그냥 그때 그때의 미봉책으로 다수의 의사를 수렴하는 듯한 외관을 마련하고 그것으로서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때워 넘기고자’하는 인상만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문기구의 위원을 비롯하여 그 밖의 개인이나 단체 누구라도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제청 대상 후보자를 추천하거나 대법관 제청에 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는 식의 립 서비스이다. 이는 사법개혁위원회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 헌법상의 청원권에 의해서 그리고 민원제출의 절차에 의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사법개혁위원회가 모를 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추천이나 의견제시의 법적 효과에 대한 하등의 제안도 없이 단순히 추천/의견제시의 기회마련 자체가 커다란 개혁의 대안인 것처럼 부풀리고만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난에 대하여 사법개혁위원회는 나름의 변명이나 반박의 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보기 나름으로는 이 글의 비판이 뜸금없는 혹은 과잉의 것일 수도 있다. 그 소재가 너무도 국지적인 것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개혁위원회의 면책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난 해 10월에 출범하여 그 활동기간의 절반이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냥 들어보기나 하자는 식의 공청회 두 번 정도 한 것 외에는 아무런 활동성을 내어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업무의 구체적 성과가 없음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개혁대안을 놓고 시민들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음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사법개혁위원회가 실로 최초의 결실로 내어 놓은 것이 이번의 대법관제청에 관한 건의문이고 그 내용이 개혁의지는 송두리째 누락되어 있는 공허함뿐이라는 점에서 차라리 분노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비판문의 당/부당의 문제나 그에 대한 사법개혁위원회의 방어전략의 성공여부가 아니라, 과거 권위주의적 정권의 옆에서 혹은 그 한 요소가 되어서 국민위에 군림하였던 우리의 사법부를 근저에서부터 청산, 쇄신하고 진정으로 국민의 사법이 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효적인 개혁대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가로 사법개혁위원회가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를 위한 우리의 기다림을 사법개혁위원회는 지금부터라도 하나 하나씩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한상희(건국대 법대 학장,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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