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05-10-16   1988

[판결비평문] 수사는 흠결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사기관 책임성 강화한 대법원 판결들

지난 9월 대법원 3부(재판장 이용우, 주심 박재윤, 이규홍, 양승태)는 살인 용의자에 대한 출국정지 연장 조치를 하지 않아 도주하게 한 검사의 과실에 대해 원심을 깨고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고, 이 보다 앞서 6월에는 대법원 1부(재판장 고현철, 주심 강신욱, 김영란)가 경찰의 잘못된 교통사고 초동수사로 가해차량의 운전자로 몰린 사망자의 유족들에 대해 역시 원심을 깨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각 사건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앞의 것(2003다29517 2005. 9. 9 선고)은 대학생 조씨를 살해한 혐의로 지목된 용의자 패터슨과 에드워드에 대해 검찰이 에드워드만을 살인죄로 기소했으나, 그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유족들이 다시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검사가 패터슨의 출국정지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국정지 연장 조치를 하지 않아. 그가 미국으로 도주하자, 이에 대해 조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사건이다. 그리고 뒤의 것(2005다8774 2005.6.23 선고)은 운전자 양씨가 몰던 승용차를 타고 가다. 최초로 현장 출동한 경찰이 도로변에 떨어져 있던 손씨의 신발을 운전석에 올려놓았음에도 운전자의 운동화가 운전석에서 발견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작성한 허위의 수사보고서와 양씨의 진술을 근거로 사망자 손씨를 가해운전자로 잘못 결론 내린다. 이에 대해 손씨의 유족들은 초동수사를 한 경찰관과 양씨를 증거조작 및 위증 혐의로 잇따라 고소한다. 사건발생 5년 뒤에서야 양씨가 실제 운전자라는 사실을 검찰 및 재판부로부터 인정받은 뒤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사건이다.

수사기관의 고의적인 불법행위뿐만이 아니라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해서까지 수사기관의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이전에는 없었다. 이번 판결을 통하여 명시적으로 수사기관의 주의의무가 무엇이라는 것에 대해 한계를 그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후 수사의 책임성을 높혀 국민의 권리 보호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발전된 판결들이라 비평판결대상으로 삼았다. (편집자 주).

수사 과실에 대한 국가배상책임 인정한 판례는 최초

공무원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함으로 인하여 국민이 손해를 입었다면 직무위반과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국가가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경찰, 검찰 공무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었을 때 국가나 관련 수사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몇 안 되는 수사기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수사과정에서 벌어지는 불법체포, 자백강요, 폭행, 가혹행위 등과 같은 고의로 인한 불법적인 인권침해에 국한됐다. 이러한 소송은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이 있다면 – 형사 유죄판결이 없는 경우에는 주로 밀실에서 행해지는 수사기관의 불법수사에 대한 입증의 어려움이 매우 커 소송에서 손해배상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은 별론으로 하고 –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데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수사의 착수에서부터 마지막 처분이라 할 수 있는 공소제기 또는 불기소처분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사와 관련을 맺는 피의자 또는 피해자 및 고발인, 참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그 주변의 가족을 비롯한 이해관계인들은 수사기관의 잘못으로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수사기관의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례는 없었다.

국민의 기본권 두텁게 보호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수사기관의 과실을 이유로 국가배상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수사기관으로 인해 침해받을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좀 더 두텁게 보호했다는 측면에서 한 단계 발전된 판결이라 하겠다.

살인 용의자의 출국정지 연장조치하지 않은 검사 과실

국가배상책임 인정

우선 살인 용의자의 출국정지 조치를 연장하지 않아 도주하게 한 검사의 과실에 대해 국가배상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2003다29517 2005. 9. 9 선고)을 살펴보면 대법원은 검사가 현저하게 불합리한 방식으로 업무처리를 하는 바람에 살인사건의 매우 유력한 용의자가 영구적으로 도주할 의사로 출국했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시정할 뚜렷한 방안을 강구할 수조차 없는 피해자의 유족들로써는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 이 같은 검사의 과실은 유족들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정신적 손해의 발생과 관련 범죄피해자에게 있어서는 수사 중으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에는 잠재적 손해는 있을지언정 종국적인 정신적 손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하급심의 주장을 물리치고 대법원은 사실상 수사지체 내지 불가능 상황에서 결과적인 정신적 손해의 발생을 인정하였다.

검사의 위법한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와 원고들이 겪게 된 정신적 고통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상당히 있는 것으로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경찰의 잘못된 교통사고 초동수사로 가해차량의 운전자 뒤바뀐 것에 대해 국가배상책임 인정

그리고 미흡한 초동수사로 교통사고 가해자를 운전자를 뒤바뀌게 한 경찰의 과실에 대해 국가배상인정한 대법원 판결(2005다8774 2005.6.9 선고)에서는 교통사고의 수사에 있어 초동수사 단계에서의 현장보존 및 현장상황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보고서 작성은 사고의 경위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더욱이 이 사건과 같이 운전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전제했다. 그런데 이 사건 초동수사 단계에서는 현장보존의 원칙을 어겼고, 또한 허위 수사보고서와 허위 실황조사서를 작성하여 사실이 왜곡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교통사고 가해자를 사망자 손씨로 잘못 판단하게 한 중요 원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행위는 수사과정에서의 위법한 행위이고, 검사가 사망자 손씨를 교통사고의 피의자로 판단하여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함으로써 사망자 손씨의 부모인 원고들의 인격적 법익이 침해되었다고 판시하여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수사기관의 위반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

이 사건 대법원 판례를 통해 형성된 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을 살펴보면, 수사기관의 가해행위의 범위는 ‘법령에 위반한’ 것이어야 하고 법령위반이라 함은 엄격한 의미의 법령위반뿐만 아니라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 신의성실, 공서양속 등의 위반도 포함되며 그 행위가 객관적인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범죄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 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로 인하여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법익의 성격은 공식적으로 수사기관을 통하여 진상규명을 할 기회를 사실상 상실하게 되거나 또는 이러한 진상 규명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침해당하게 됨으로써 겪게 된 정신적 고통이다. 이 때 피해자가 겪게 된 정신적 고통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격적 법익에 대한 침해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로 인하여 초래된 정신적 손해의 발생 여부에 관하여 먼저 범죄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있어서는 수사기관의 개별적인 처분 각각에 의하여 그 피의자나 피고인의 법익 내지 권리의 침해가 야기될 수 있다.

범죄 피해자에게 있어서는 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로 인하여 수사의 진행이나 형사재판의 개시가 현저히 곤란하게 되었다면 피해자의 유족들로서는 공식적인 방법으로 그 사건의 진상 규명을 할 기회나 진상 규명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사실상 박탈당하게 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범죄피해자의 자력구제를 허용하지 아니하고 국가만이 형사사법절차를 통하여 범죄자에게 형벌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하도록 하고 있는 현행 형사사법제도 하라고 하여 범죄피해자가 형사사법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잠시 감내하여야 할 정신적 고통에 불과할 뿐 이라고 볼 수 없고,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가 결과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는가에 대한 판단 여부는 일반적인 결과발생의 개연성은 물론 직무상 의무를 부과하는 법령 기타 행동규범의 목적, 그 수행하는 직무의 목적 내지 기능부터 예견 가능한 행위 후의 사정, 가해행위의 태양과 피해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수사기관은 최선을 다해 흠결없이 수사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봐야

물론 검찰이 기소 처분한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경우나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이 나중에 법원에서 유죄를 받은 경우 검찰 수사 과정상 당연히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판례의 태도는 이를 인정하는데 너무나 인색했다.

각자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자 주장하다 보니 수사기관의 합리적이며 성실한 수사진행에 대해서도 수사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한 처분이 내려지는 쪽에서는 무조건 불만을 쏟아내는 경향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최선을 다한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항변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수사기관 스스로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정확히 반영하면서도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수사기법을 통해 증거를 수집하고 그에 기반하여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지를 반문해 보아야 한다.

유사한 판결 잇따를 것으로 전망

수사과정의 투명성도 크게 향상 기대

최근에 내려진 두 대법원 판례의 경향에 따라 수사기관의 직무상 의무 위반행위로 인한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에 대한 일정한 방향과 지침이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의 경향이 확고히 정착되어 나갈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의 착수에서 마지막 처분에 이르는 과정까지 관련 수사관들의 고의로 인한 불법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성 부족, 불성실함 등에서 비롯된 과실로 인한 수사과정상의 잘못으로 인한 경우라도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향후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들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하급심의 경우에도 이 사건 대법원 판례의 선례를 참조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후속 판결들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동시에 수사관들도 “부주의하게 직무를 수행하면 도리어 피의자, 피해자 등에게 손해를 배상해 주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구나”하는 심리적 제약을 받게 되어 수사과정에서 직무상 주의의무를 더욱 세심히 기울여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아가 수사과정의 공정성과 전문성 그리고 성실성이 더욱 강화되고 수사과정의 투명성 보장도 크게 향상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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