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1995-07-27   2308

우조교 성희롱 사건 항소심 판결에 대한 의견서

연못가의 개구리에게 장난으로 돌멩이를 던져 죽인 소년의 이야기
—- 우조교 성희롱 사건 항소심 판결을 보는 우리의 입장 —-

7월 25일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재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의 현실과 그로 인해 침해되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 사회적 인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매우 중요한 재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재판장 박용상 부장판사)의 판결은 이러한 성희롱의 관행을 합리화하고 여성의 인권을 외면한 부당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충격과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이 판결은 성희롱의 개념을 ‘성적 괴롭힘’이라고 개념 규정하는 과정에서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 여성 운동에 대한 반감, 남녀의 역할과 그 사회적 실태에 대해 왜곡된 신념들을 드러내고 있다. ‘성적 괴롭힘’을 정의하면서 “교육상 또는 직업수행상의 필요에 의해 행해지는 신체적 접촉 또는 친밀감의 표시나 사회 관습상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언동”을 제외하고 “그 행위의 태양이 중대하고 철저하여야 한다”고 단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판단 기준을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남녀의 관계를 공동적 화합적 관계로 이해하는, 건전한 품위와 예의를 지닌 일반 평균인의 입장”에서 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판결 중에서 인정한 다음과 같은 괴롭힘은 어떠한가?

 

“원고는, 피고 신정휴가 1992.6.경부터 8.경까지 사이에 서울대학교 23동 108호 앞 복도 등에서 원고와 마주칠 때면 의도적으로 원고의 등에 손을 대거나 어깨를 잡는 경우가 많았고, 같은 해 8.경에는 22동 309호 실험실에서 – – – 원고의 머리를 만지기도 하고, 원고가 정식 임용된 동년 8.10경 단둘이서 입방식을 하자고 제의하기도 하고, 같은 무렵 23동 4층 교수 연구실에서 원고를 심부름 기타 명목으로 수시로 불러들여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몸매를 감상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였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뒤에서 당원이 채용하는 증거와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대체로 원고 주장과 같은 피고의 언동이 인정되나 – – -‘

 

항소심 판결 스스로 인정하는 이 정도의 내용도 교육상 또는 직업수행상의 필요에 의해 행해지는 신체적 접촉 또는 친밀감의 표시인가! 아니면 사회관습상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언동인가! 또는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적 화합적 관계에서 이 정도는 받아들이는 것이 여성의 운명이란 말인가! 더 나아가 건전한 품위와 예의를 지닌 일반 평균인이 이 정도는 ‘성적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할 것이란 말인가! 도대체 판결 이유의 모순도 모순이거니와 대한민국의 법관이 이토록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인 이성조차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오늘 이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성의 차별과 질곡이 이러한 지경에 당도한 이유를 알고도 남음이 있겠다.

 

재판부는 위 판결에서 또한 피해자가 손해의 발생, 즉 굴욕적 근로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실제상 피해자가 업무능력을 저해 당하였다거나 정신적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점을 주장 입증하여야 한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성희롱의 피해를 당한 여성이 간신히 힘과 용기를 내어 소송을 제기한 마당에 그가 입은 피해까지 입증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 성희롱을 한 사실을 인정하면 그런 피해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계속되는 입방식 제의, 육체적 접촉, 신체 감상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지 않을 여성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 가운데 재판 중에 심리 중인 미결수를 지칭해 “간첩놈”이라는 폭언을 해서 변호인단의 항의를 받는가 하면(경향신문 93년 5월 27일), 중고교생이었던 자녀 이름으로 경기도 가평에 3~4천평의 임야를 사들였고 (조선일보 93년 9월 9일),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어 경찰의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기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한 대표적인 오판 피해자인 김기웅씨의 항소심 재판을 맡아 그에 대해서 12년을 선고한(93년 9월 28일) 사실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94년 공직자 재산변동 조사결과에서 박판사는 1년에 2억4천9백여 만원의 재산이 증가해 총재산 17억3천8백여만의 재산을 가진 법관으로서 최고 재산증가액을 기록하는가 하면 박판사가 부산고법 제2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 중일 때에는 현대자동자 해고 노동자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항소심에서 선고를 늘려 선고를 한 반면(1992.4.30자 한겨레신문), 부산항 개항이래 최대규모인 77억원대 밀수조직 한라판 두목 윤성기씨에 대해서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를 선고해 석방해서 물의를 빚은 바 있다(1992.7.2자 경향신문). 또한 구속기소된 피고인의 구속 만기일을 잘못 계산하여 선고공판을 열지 못한 채 석방한 사실도 있다.(1993.3.4 동아일보) 더구나 지난 5공시절 언론자유를 질식시킨 언론기본법의 제정에 그가 관여하였다거나(1991년 7월 22일자 한국일보) 사립학교법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한 사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사건에서 노동자에게 불리한 판결을 함으로써 노동사건을 전담해 온 변호사들 사이에 널리 불만을 사 온 사실(예컨대, 파리바은행 박현옥씨의 해고무효확인 패소판결, 1991.2.1자 세계일보)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일련의 태도를 볼 때 우리는 박용상 부장판사가 과연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킬 법관으로서의 헌법의식과 공정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단지 여성이라는 남녀 대립구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의해 입을 수 있는 피해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볼 때 박 부장판사를 포함한 재판부 법관들이 인간성에 대한 몰이해, 성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편견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법관이 헌법상 보장된 사법권 독립을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나 동시에 국민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공정하고도 이성적인 세계관을 갖지 못한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지 않을 권리도 함께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인 인식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우를 범하는 것으로서 남녀를 떠나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시대역행적인 부당한 판결이라고 판단한다. 동시에 이 판결이 사실상 ’남성은 여성에게 성적인 모욕을 주어도 된다‘는 성희롱의 사회적 면죄부로서 작용해 우리 사회에 그나마 확보된 평등문화와 인간적 직장 분위기가 해쳐질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감히 단언컨대, 이 판결은 한 소년이 연못가에서 장난으로 던진 돌에 죄없는 개구리 무리들이 맞아 죽는 결과를 낳은 것에 다름 아니다. 단 하나의 판결에 의하여 우리 사회가 이토록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후퇴를 경험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판결은 마땅히 대법원에서 파기되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이 판결을 기화로 건전한 양식과 보편적 이성을 가지지 못한 법관이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보루에 남아 있을 수 없는 풍토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1995. 7. 27.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이화숙(교수, 경원대 법학)

jwc1995072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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