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2002-05-07   2396

[16호] '사안별 특별검사제'의 의의와 한계

특별검사법(이하 특검법)이 도입되기 전 검찰과 집권여당은 여러 가지 특검제 반대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예컨대, 특검제는 미국에서도 실패한 제도이다, 특검제가 도입되면 특별검사가 정치화될 것이다, 특별검사가 권한을 남용할 것이다, 정당간에 자기에게 유리한 특별검사 임명을 위해 정쟁이 심화될 것이다, 소추기관이 이원화되어 검찰의 무력화가 초래될 것이다, 특검제 운영에 비용이 과도하게 많이 들게 될 것이다 등이 그것인데, 이러한 우려가 1999년과 2001년의 두 개의 특검법의 경험에서 현실화되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의 우려는 기우

사실 특검제를 둘러 싼 한국 상황은 특검법이 실효한 현재의 미국 상황보다는 특검법이 제정된 1970년대 말의 미국 상황과 유비(類比)되는 것이었기에 현재 미국에서 특검법의 실효가 한국에서의 특검제 도입불가의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별검사 임명을 둘러싸고 예상되는 정파간의 정쟁은 그 임명절차에서 대한변호사협회라는 중립적·전문적 단체의 추천을 삽입시킴으로써 애초에 봉쇄되었고, 특검팀 운영의 비용은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미하였다.

또한 특별검사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는 실제 현실화되지도 않았던 바, 이 우려는 검찰 자신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한 예단으로 보인다. 그리고 특검제가 특정 사건에 대하여 소수의 제한적 인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생각할 때, 특검제가 전국적인 강고한 조직을 갖춘 검찰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은 애초에 현실성이 없었으며, 또한 검찰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는 것은 특검제 때문이 아니라 검찰 자신이 과거 행적때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수사의 실효성과 관련하여 1999년 특검팀의 수사의 경우 검찰수사 보다 나은 성과를 낳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으나, 2001년 특검팀의 수사는 검찰수사와는 구별되는 분명한 가시적 성과를 낳았다.

사안별 특검, 과잉이 아닌 과소가 문제

오히려 사안별로 도입된 특검제는 그 '과잉'이 문제가 아니라 '과소'가 문제였다. '사안별 특검제'에서 드러난 몇 가지 문제점을 보자면, 첫째 특별검사의 수사대상이 매우 협소하게 규정되어 실체적 진실규명이 힘들었다. 사실 '옷로비 의혹사건'은 최순영 회장의 정관계 로비라는 '몸통'에서 파생된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이 '몸통'에 대한 수사는 애초에 봉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경우도 대검 공안부가 아닌 대전지검 공안부나, 노동부 등의 파업유도 문제는 수사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하여 2001년 특검법은 "이용호의 주가조작·횡령사건 및 이와 관련된 정·관계의혹사건"을 수사대상으로 하고 있어 특별검사의 운신의 폭이 크게 늘어났고, 이것이 수사결과의 차이를 낳았다.

둘째, 1999년 특검법의 경우 특별검사의 권한남용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여, 특별검사의 권한은 축소하고 의무는 강화되어 있었다. 특별검사의 중간수사발표가 금지되어 있었고, 특별검사의 수사협조 및 파견요청에 불응하는 관계기관의 장을 제재하는 방안이 없었다. 이에 반하여 2001년의 특검법의 경우는 1회에 한하지만 중간수사발표권을 부여하였고, 특별검사의 수사협조 및 파견요청에 불응하는 관계기관의 장에 대해서는 특별검사가 징계절차를 개시할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참고인에 대한 2회 이상의 출석요구 후에야 참고인에 대한 동행명령을 행사할 수 있게 했던 1999년 법과는 달리 출석요구 없이 바로 동행명령을 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상의 점 외에도 2001년 특검법은 기본수사기간을 30일에서 60일로 늘렸으며, 특별검사보도 1인에서 2인으로 늘렸다. 이러한 변화가 2001년 특검팀의 수사가 많은 성과를 낳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셋째, 특검팀의 구성의 문제이다. 이 점은 특히 '파업유도 의혹사건' 특검팀에서 발생하였는데, 검찰대상 수사를 현직 검사 및 검찰수사관이 담당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강원일 특별검사와 김형태 특별검사보 사이의 심각한 의견차이가 발생하여 김 특별검사보를 비롯한 여럿의 특별수사관이 특검팀에서 철수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특별검사의 임명시에 수사능력만이 아니라 기존 검찰조직과의 관계에서의 독립성 유지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1999년 특검팀의 경우 특검팀이 범죄혐의를 확인하고도 공소권을 행사를 스스로 포기하였다는 점이다. '옷로비 의혹사건'의 경우 특검팀은 수사결론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검찰에 수사기록을 넘겼으며,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경우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와 다른 결론을 내놓았음에도 구속피의자를 기소하지 않고 공소유지책임을 검찰에 미루었다.

검찰신뢰 회복에도 일조

이상의 점에서 볼 때 1999년 특검팀은 여러 제도적 제약과 경험부족 등 때문에 '절반의 성공'을 이루는데 그쳤으나, 2001년 특검팀은 보완된 제도와 축적된 경험 위에서 특검제 본연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본다. 특히 2001년 특검팀의 수사는 검찰수사가 떨어뜨린 국가공권력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기능을 하였고, 이는 권력형 범죄·비리사건 수사에서 검찰의 분발과 검찰조직의 혁신을 외부적으로 강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제 우리는 '상설적 특검제'의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이 사안별 특별검사법을 제정하는 것 보다, 상설적 특별검사법을 제정하면서 그 존속기간을 현정권과 차기 정권에 걸쳐 존속하도록 3년 정도로 잡고, 기간 종료 후에는 국회에서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을 채택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조 국 | 사법감시센터 소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