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6-11-15   1485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①] “일본 로스쿨,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안상수 법사위원장에게 드리는 편지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의 개혁을 위해 지난 10년간 논의되었으며, 2003년부터 운영된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마침내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로스쿨 제도임에도,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의 심의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회의원들에게 로스쿨 제도 도입에 필요한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를 개혁하는데 동참할 것을 설득하기로 하여 오늘(15일)부터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첫 편지는 김창록 경북대 법대 교수의 ‘일본 로스쿨 제도의 진실과 오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상수 의원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계시기도 한 안 의원께서 로스쿨 문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소식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기에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편지를 띄웁니다.

법사위에 회부되는 법률안의 처리에 관해 법사위원장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적지 않은 만큼, 안 의원께서 로스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시는지가 로스쿨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법사위원장이신 안 의원께, 특히 ‘일본 로스쿨 실패론’을 내세워 로스쿨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려서 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국의 ‘일본 로스쿨 실패론’

한국의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 로스쿨 반대론자들의 상투적인 주장 중 하나가 “일본의 로스쿨은 실패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로스쿨을 도입해서는 안된다라고 그들은 단언합니다. 그런데 안 의원님, 과연 일본의 로스쿨은 실패한 것일까요?

로스쿨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대략 이렇습니다 : 1) 일본 로스쿨의 법학기수자(2년 코스) 졸업생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된 첫 번째 신사법시험의 합격률은 48%에 머물렀다. 2) 게다가 법학미수자(3년 코스) 졸업생이 배출되는 내년 이후에는 합격률이 20-30%로 내려갈 것이다. 3) 이렇게 합격률이 내려가게 되면 학생도 교수도 시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로스쿨에서는 충실한 강의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되고, 고시학원이 다시 번성하게 될 것이다. 4) 그렇게 되면 “시험이라는 점(點)을 통한 선발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한 양성”이라고 하는 로스쿨제도의 목표는 달성될 수 없게 될 것이다. 5) 따라서 일본의 로스쿨 제도는 실패한 것이다.

로스쿨 반대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언뜻 듣기에는 그럴 듯합니다. 일본 로스쿨제도의 현상적인 문제점의 일면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주장에는 일본에서 로스쿨제도가 도입되게 된 맥락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현재의 문제점의 의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결과 ‘실패했으면 좋겠다’라는 주관적인 희망사항을 ‘실패다’라는 객관적인 사실판단으로 비약시키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 대해서는 눈 감은 채, 자신의 마음에 드는 현상만을 취하고, 원하는 방향으로만 논리조작을 해서, 마음에 드는 결론만을 도출해내는, 너무나도 얕고 얇은 사고방식인 것입니다.

일본 로스쿨제도의 진실

안상수 의원님.

일본 로스쿨제도의 ‘진실’은 이렇습니다.

일본인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냉전체제의 종언ㆍ세계화의 진전ㆍ구조적인 경기침체라고 하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그러한 시대 변화 속에서, ‘21세기에도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할 경우 경제대국의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라는 위기의식에 내몰린 일본인들은,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의 주도 아래 국가의 틀 전체를 근본적으로 새롭게 짜는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우선 정치개혁, 행정개혁, 지방분권의 추진, 규제완화 등의 경제구조개혁, 정보공개제도의 확립 등을 추진했으며, 그 일련의 개혁을 마무리하는 “최후의 핵심”으로서, “사전규제형 사회로부터 사후구제형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부터 시작된 그 사법개혁의 핵심이, 바로 “사람”을 길러내는 법률가양성제도의 개혁, 즉 로스쿨제도의 도입이었습니다. 요컨대 일본의 로스쿨제도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21세기에도 경제대국으로 살아남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전면적인 국가개혁의 핵심인 것입니다.

다만, 일본의 로스쿨 제도는 완벽한 형태로 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일본의 로스쿨론자들은, ‘작은 법조의 특권’이라고 하는 기득권에 터잡은 반대론자들의 저항에 굴복하여, 낡은 제도의 일부를 남겨두기로 타협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남겨지게 된 낡은 제도의 핵심이 바로 정원제 사법시험이었습니다. 만장일치의 방식을 취했던 일본의 사법제도개혁심의회가 그 의견서에서, “시험이라는 점(點)을 통한 선발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한 양성”을 위해 로스쿨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선언하는 동시에, “2010년경에는 신사법시험 합격자수의 연간 3,000명 달성을 지향해야 한다”라는 제안을 내놓았던 것은, 바로 그러한 타협의 표현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물론, 일본의 로스쿨론자들은, “실제로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법조인의 수는 사회의 요청에 기초하여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신사법시험 합격자수를 연간 3,000명으로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적으로 가능한 한 조기에’ 달성해야 할 목표이며, 상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라는 단서를 붙여, 로스쿨제도의 이념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을 마지막까지 기울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정원제를 전제로 하는 사법시험의 틀을 유지시키는 이상, ‘2010년 3,000명’이라고 하는 숫자는 결국은 ‘상한’으로서 기능하게 될 소지가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일본의 로스쿨제도는, ‘과정’과 ‘점’의 어설픈 동거, 다시 말해 로스쿨과 정원제 사법시험이라고 하는 원리적으로 충돌하는 두가지 요소의 불편한 혼거를 원초적인 한계로서 껴안은 채 출발했던 것입니다.

한국의 로스쿨 반대론자들이 주목하는 ‘낮은 합격률’은 바로 그 원초적인 한계가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에 다름 아닙니다. 로스쿨제도가 원래 숫자를 통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정원제 사법시험으로 숫자를 통제하려고 하다 보니, 자연히 낮은 합격률이라고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일본은 바로 그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부심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진행 방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로스쿨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에게 변호사자격을 주는 변호사자격시험제도를 도입하여 사법시험제도를 대체함으로써 로스쿨제도의 취지를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로스쿨과 정원제 사법시험 사이에 다시금 타협을 하는 것, 예를 들어 50% 이상의 합격률이 보장되도록 사법시험의 합격자 정원을 늘이는 것입니다. 셋째는 로스쿨이 정원제 사법시험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절함으로써 개혁이 실패로 끝나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은 그 중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를 둘러싸고 기존의 성과와 문제점을 단계별로 확인ㆍ점검하면서 조정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그 조정작업은, 적어도 2010년까지는 이어지면서, 각 주체의 노력에 따라 최종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안상수 의원님.

이러한 일본 로스쿨의 미래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시행 3년째인 지금 이미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법학교육과 마찬가지로 침체되어 있던 일본의 법학교육에, 다양한 전문과목이 도입되고, 리컬 클리닉ㆍ엑스턴쉽ㆍ모의재판 등 임상법학교육이 도입되고, 끊임없는 질의와 응답으로 이어지는 긴장도 높은 수업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일본의 로스쿨 학생들은 그러한 교육을 소화하기 위해 매일 늦은 밤까지 예습ㆍ복습에 전념하면서 법조윤리에 대한 관심과 법조직역에 대한 동기의식을 높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로스쿨 교수들 또한, 사회인을 포함한 다양한 학생들로부터 엄격한 평가를 받으면서, 매주 강의에 관한 교수회의를 열고, 방대한 양의 법률문헌과 판례를 갖춘 인터넷 교육연구지원시스템을 개발하고, 새로운 교재와 법학전문서를 출간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들 모두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로스쿨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대학의 법학교육과 법률가의 자격이 연계되고 법학교육에 경쟁원리가 도입된 결과 생겨난 질적인 전환인 것입니다. 일본 로스쿨의 교수와 학생, 그리고 일본의 법조까지도 인정하는 이러한 변화야말로 일본 로스쿨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당장의 낮은 합격률이 로스쿨의 교육내용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에는 그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본 로스쿨의 미래는 실패보다는 변화와 성공 쪽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일본 로스쿨 실패론’의 의미

안상수 의원님.

일본이 로스쿨제도의 도입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가, 일본의 경험에서 끌어내야 하는 것은, ‘일본은 로스쿨제도를 옳게 도입하지 않아 문제를 낳고 있으니 우리는 옳게 도입하자’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로스쿨제도를 옳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숫자를 사전에 통제하는 구습을 처음부터 털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일본의 로스쿨은 실패했다”라고 외치면서, 그것을 한국에서의 로스쿨제도 도입 반대의 논거로서 흔들어대고 있는 로스쿨 반대론자들의 행태는, 사태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일본이 예방접종을 도입하면서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상황을 내세워, ‘일본의 예방접종은 실패했으니 우리는 전염병이 아무리 번지더라도 예방접종을 도입해서는 안된다’라고 외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나아가 ‘일본 로스쿨 실패론’은 자가당착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로스쿨제도를 도입하려면 총입학정원의 통제라고 하는, 일본보다 더욱 강력한 방식으로 숫자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일본의 사례를 가지고 와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방식이 잘못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구나’라는 반성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장하는 대로 하니까 실패하지 않나, 그러니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자가당착도 유분수인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일본 로스쿨제도의 문제점에 주목한 것은,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조건 로스쿨 반대’를 위해서였기에, 그들에게는 그 모든 비합리와 비논리가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한국이 한 발 앞서서 로스쿨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던 1995년과 1998년의 단계에서는, ‘일본도 로스쿨 도입을 안하는데 한국이 왜 하느냐’라며 로스쿨제도 도입에 반대했습니다.

일본이 로스쿨제도를 도입하기 전에는 일본이 도입하지 않으니까 하지 말자고 하고, 일본이 도입한 후에는 일본이 도입했으니까 하지 말자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일본은 ‘무조건 로스쿨 반대’를 위한 구실일 뿐이니, 일본이 왜 로스쿨제도를 도입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는 애당초 관심밖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일본 로스쿨 실패론’과 일본 로스쿨제도의 진실 사이의 현저한 거리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한국 로스쿨 반대론자들의 지극히 얕은 의식구조입니다. 맥락과 과정은 무시한 채 ‘도 아니면 모 밖에 없다’라고 우기는 사법시험식 흑백논리,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면서도 그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몰이해,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앞뒤가 맞지 않은 주장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몰염치가 그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의식구조의 소유자가 다름 아닌 한국의 ‘법률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법률가’들과 함께 21세기의 격랑을 헤쳐나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본 로스쿨 실패론’이야말로 로스쿨제도의 도입을 통한 체계적인 법률가양성교육이 시급하고도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유력한 증거인 것입니다.

안상수 의원님

이웃 나라 일본은 21세기에 걸맞는 국가의 기본틀을 마련하기 위한 전면적인 개혁의 핵심으로서 로스쿨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보다 앞서서 로스쿨 논의를 시작했던 한국은 10년이 넘게 여전히 논의만 거듭하고 있습니다. 아니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제출한 로스쿨 법률안은 1년이 넘게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머물러 있습니다. 국가의 기본틀을 개혁하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할 정당들은 어떠한 ‘당론’도 제시하지 않고 있고, 국회의원 중에는 변호사들의 ‘일본 로스쿨 실패론’이라는 허상을 좇고 있는 사람들조차 있습니다. 일본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참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답답하고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회의 분발이 실로 절실합니다. 안 의원께서 앞장 서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법률가양성제도의 개혁을 이루어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2006년 11월 15일

김창록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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