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개혁 2006-11-20   1908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③] “전태일이라면 로스쿨 도입에 동의했을 것”

최순영 교육위원에게 드리는 편지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의 개혁을 위해 지난 10년간 논의되었으며, 2003년부터 운영된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마침내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로스쿨 제도임에도,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의 심의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회의원들에게 로스쿨 제도 도입에 필요한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를 개혁하는데 동참할 것을 설득하기로 하여 15일부터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 편지는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의 전태일이라면 로스쿨 도입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순영 의원님.

노동자, 농민 그리고 서민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이어져온 의원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로스쿨 제도도 서민들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룰 국회 교육위원회에 소속된 최 의원님께서 지난 11월 16일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를 통해 로스쿨 제도 도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셨습니다.

최 의원님의 입장을 무례하지만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로스쿨은 변호사 인원을 늘이자, 전문성을 갖게 하자는 것이 취지인데, 둘 다 현행 제도에서 가능하고, 현재의 사법고시 준비 비용보다 많은 등록금을 받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도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 의원님의 위의 명제에는 동의합니다. 로스쿨을 도입하지 않고도 사법시험 합격정원을 늘이면 당연히 변호사 인원을 늘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변호사들은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또 로스쿨 등록금이 1년에 2천만 원이라는 등 4천만 원이라는 등의 예측들은 물론 근거가 없지만, 아무리 낮춘다고 하더라도 2천만 원 내지 4천만 원으로 예상되는 로스쿨 3년간의 등록금 합계는, 고시학원의 하루 학원비인 1만2천 원에 합격까지의 평균 수강일수 782일을 곱한 금액인 9백40만 원대와는 틀림없이 차이가 있습니다. (학원 수강일수는 평균 6년동안 6개월만 주 5일 수강한다고 가정하였음).

취약계층의 부담은 많이 늘지 않고 취약계층출신 변호사 숫자는 더 늘어날 것

그러나, 로스쿨 등록금이 사법시험 준비비용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책정되더라도 변호사들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및 농촌 가정 출신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로스쿨 제도는 현재보다도 사회취약계층 출신 변호사 숫자를 높일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로스쿨은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쿼터(quota)제도를 실시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명이 정원인 로스쿨이라면 5명 정도의 자리는 사회취약계층 출신 지원자들 사이에서만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로스쿨인가 기준안에 대한 논의를 지켜볼 때 현재의 대학입시에서 정원 외로 행해지는 1%대의 농어촌특례입학 보다는 훨씬 더 높은 수준이 될 것입니다.

아직 로스쿨 도입 법률이 통과되지 않아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9월 발표된 인가심사기준안에서는 인가심사기준을 100% 충족하기 위해서는 입학생중 취약계층비율이 5% 이상이어야 한다고 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높은 비율로 사회취약계층을 우대하는 입시특례제도나 특별채용제도는 없습니다.

둘째, 로스쿨은 장학금 제도를 실시할 것이며 역시 로스쿨인가 기준안에 대한 논의를 고려해보면, 인가경쟁에서 만점을 받고자 하는 학교들 기준으로 전체 학생의 20% 정도가 장학생이 될 것이며 이중에서 80% 정도가 사회취약계층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16% 정도의 로스쿨학생은 등록금을 내지 않는 사회취약계층 출신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숫자를 사회취약계층의 범주에 포함시키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정도 비율이면 상당히 다양하고 많은 수의 사회취약계층 출신자들이 최 의원님이 걱정하시는 ‘고비용’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로스쿨 제도의 이념은 최 의원님과 민주노동당의 주장에 깔린 그것보다도 더 진보적입니다. 최 의원님은 등록금이 너무 높으면 가난한 사람들의 입학기회가 줄어드니 기회의 평등을 위해 로스쿨 제도를 반대하십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는 사회취약계층에게 기회의 평등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학생 선발에 있어서 특별히 우대를 하고 있어 ‘결과의 평등’까지도 일부 보장하고 있습니다.

최 의원님은 “농민들을 위해 로스쿨 합격생을 지역별로 안배해야 한다”거나 “로스쿨을 각 도와 광역시에 하나씩 둬야 한다”라는 주장도 하셨지만 “현 제도는 이런 것이 안 되니 로스쿨 자체를 반대한다”는 주장의 서론일 뿐입니다. 지역균형발전이나 농업진흥도 중요하지만 사회취약계층 보호도 시급한데 하나씩 순차적으로 보완해나갈 수는 없을까요?

게다가 로스쿨제도는 사회취약계층이 아닌 학생들로부터 비싼(?) 등록금을 받아 학교를 운영하면서 사회취약계층 학생들에게도 똑같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므로 이는 ‘부(富)의 재분배’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최 의원님은 로스쿨 등록금이 연간 2천만 원에서 4천만 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인가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그 정도 수준의 등록금을 예상하는 법과대학은 현재 없으며 그렇게 말씀하신 근거도 솔직히 궁금합니다. 어찌되었거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취약계층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돈을 많이 걷어서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쓴다면 최 의원님과 민주노동당에서는 도리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변호사 증원의 요원함과 절실함 사이의 유일한 타협, 로스쿨

또 한 가지 제가 로스쿨 제도를 지지하는 이유는 변호사 증원은 절실한 과제이며, 로스쿨 제도가 변호사 증원을 보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변호사 증원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로스쿨 제도는 현재 상대평가인 사법시험 제도를 절대평가인 변호사자격시험 제도로 바꿀 것을 전제로 논의되어 왔으며 – ‘로스쿨 졸업생들이 사법시험을 다시 봐야 할 것’이라는 최 의원님의 주장은 오해인 듯 합니다 –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정하게 되어 있는 로스쿨 정원도 그리고 법학교육위원회가 정하게 될 로스쿨의 숫자도 항상 늘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로스쿨 제도는 변호사 증원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호사 인원을 늘이는 것이 ‘현행 제도에서 가능하다’는 최 의원님의 주장은 이론적인 가능성만이 있는 탁상공론일 뿐입니다. 현재와 같이 좌우를 막론하고 율사 출신의 정치인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고, 국민들은 법조인들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극에 달해 ‘나는 절대로 변호사 도움없이 살 것이니 사법개혁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라는 무관심에 빠져있는 시점에서 사법시험 정원이 늘어날 현실적인 가능성은 없다고 감히 단언합니다.

사법시험을 포함한 몇몇 직역군(群)들의 독점은, 적은 사람들이 각자 큰 이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작은 피해를 보는 이른바 “분산이익”의 문제 때문에 정책에 대한 공중의 정책선택(public choice)이 항상 왜곡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사법시험 정원의 증원은 정당들의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에서 밀려있을 것이며, 그 사이 ‘소수정예’ 법조인들은 선거를 통해 계속 국회를 장악하며 사법시험을 통한 독점을 공고히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왜곡을 파악하고, 최 의원님과 민주노동당을 포함해서 ‘사법시험 정원 늘이지, 로스쿨 왜하냐’라며 로스쿨 제도를 반대하는 모든 분들이 사법시험 정원의 증원에 힘을 모아준다면 모를까 말입니다.

로스쿨을 바라볼 때 국민의 의견을 그대로 좇을 것이 아니라, 개별 국민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전체 국민의 관점에서 개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해내야 할 것입니다. 최 의원님은 ‘로스쿨을 반대하는 법대교수들을 많이 만났다’라고 하셨습니다. 법대교수님들 일부는 3천명 정원이 안 되어서 반대하시고 일부는 개념적으로 원천적으로 반대하십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법대교수들은 로스쿨 논의 이전에 변호사 증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운동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최 의원님이 변호사 증원이 전체 국민에게 중요하지만 외면당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로스쿨을 반대한다는 법대교수들의 의견에 너무 의존하여 정책판단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변호사 증원은 그토록 절실하지만 그토록 요원합니다. 변호사 증원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유일한 타협안인 로스쿨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합니다. 혹자는 사법시험 정원을 법무부장관이 정하는 것과 로스쿨정원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정하는 것이 무엇이 다르냐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지면이 모자라 설명을 할 수는 없으나 로스쿨정원의 증대 가능성은 사법시험 정원의 증대가능성보다는 상당히 높으며 적어도 이 정도의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로스쿨을 도입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증원 가능성은 무망합니다.

최순영 의원님과 민주노동당에 요청드립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국민들의 인권보호에 국가가 적극적인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국민들이 알아서 자신을 보호하도록 한다는 명목 하에 변호사 숫자만을 늘여놓으려 하는 것은 ‘자유주의’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국가가 변호사 숫자와 교육내용을 통제하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제도를 통해 변호사를 양성하려 하지 않고, 변호사 직업교육을 ‘민영화’하여 시장에 맡기는 것도 ‘자유주의’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진짜 ‘자유주의’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 국민들에게 절실한 것이라면 자유주의이든 사민주의이든 어떤 꼬리표가 붙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적인 제도라 할지라도 구시대의 특권을 해체하거나, 과거에 짓밟혀 왔던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해주거나, 경쟁의 틀을 공정하게 다시 짜주는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공공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유주의’와 공공성의 영역을 좁히는 ‘신자유주의’는 명백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아니 한국이 아무리 사민주의를 지향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변호사 숫자가 필요하고 최소한의 법치주의가 필요합니다. 또 변호사들이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변호사 증원은 반드시 필요하고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그 목표에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로스쿨 제도를 지지해 줄 것을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민주노동당 내에 전태일 평전 읽고 눈물 한번 흘리지 않은 분들 없으실 것입니다. 전태일은 해방이나 혁명을 외친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노동조합 인정이나 동료 노동자의 복직이나 석방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해 분신하였습니다.

참으로 온건하기 그지없는 요구를 가장 과격한 방법으로 주창한 것이었고 처음 한동안은 어처구니없다고 받아들여졌고 후세대에 그 용기가 칭송되고 있습니다. 로스쿨 제도는 확실히 타협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얻어낸 타협인 만큼 필사적으로 지켜내야 할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11월 20일

박경신 드림

② “세상은 왜 로스쿨을 원할까요”

① “일본 로스쿨,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박경신(고려대 법대교수,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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