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산업재해 2011-07-26   4253

[언론기획] <산재보험은 희망인가> 삼성 백혈병 산재 판정까지… 유족들의 힘겨운 ‘4년 싸움’

경향신문 참여연대 노동건강연대 공동기획

<산재보험은 희망인가>

 

1964년 도입된 산재보험은 정부가 사업주에게서 보험료를 거둬 그 기금으로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에게 보상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승인절차가 까다롭고,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져야 하며, 산재 인정 기준도 엄격해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보장성 수준도 낮아 현행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안전망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3회에 걸쳐 산재보험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기획을 싣는다.

 

  “‘네 병은 너 때문이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씨의 백혈병 발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기흥사업장에 입사한 황씨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숨진 것은 2007년 3월. 아버지 황상기씨(56)가 딸의 병이 ‘직업병’이라는 걸 인정받는 데는 4년이 걸렸다.

 

황상기씨는 2007년 6월 삼성반도체에서는 처음으로 산재요양 신청을 냈다. 이전에도 백혈병으로 사망한 경우가 있었지만 유족들은 “운이 나빠 걸린 질병”인 줄로만 알고 직업환경적 요인으로 발생한 질병이라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황씨가 ‘직업병’을 의심한 것은 딸과 2인1조로 일한 이숙영씨 역시 2006년 8월 백혈병으로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기흥사업장에서만 백혈병으로 5명이 사망했다.

황씨는 처음에 회사 관리자에게 산재 처리를 해달라고 했다. 회사는 “개인 질병”이라며 “돈을 주겠다”고 했다. 황씨는 거부했다.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보험 신청서 양식에 ‘사업주 날인란’이 있어 접수하기도 전에 사업주의 회유나 방해 등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에서 사회보험제도 혜택을 받는 건데, 사업주 날인란이 왜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당장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 접수가 끝나면 재해조사를 해야 한다. 청구권자가 재해 당사자라 하더라도 어떤 물질에 어떻게 노출되었는지 알기는 힘들다. 1991년부터 온양 반도체공장에서 5년 이상 일한 김모씨의 경우 반도체칩 이물질 제거용으로 사용한 세척제 이름조차 몰랐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 그 세척제가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트리클로로에틸렌은 독성물질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주 관리하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바탕으로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정한다. 이종란 노무사는 그러나 “대부분 사업장은 작업환경 측정을 할 때 작업장을 깨끗이 치우기 때문에 유해요인이 저평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역학조사 과정은 ‘사업주 편의’ 위주로 진행된다. 역학조사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제출한 목록에 근거해 과거 발암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사업주와 사전에 합의한 날짜·시간에 현장에 들어가 공기 중 농도를 한 번 재본 정도에 불과했다”며 “예전에 없던 환기장치가 생기고 개인 보호장구를 지급한 상태에서 공기 중 농도를 측정한 뒤 ‘허용기준 이하이므로 업무 관련성이 낮다’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황상기씨의 호소로 대책위 ‘반올림’이 꾸려졌고 반올림은 2008년 4월 추가로 5명의 백혈병 피해노동자를 규합해 집단 산재 신청을 냈다. 현재까지 총 18명이 산재요양 신청을 했으나 16건은 불승인됐고, 2명은 판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 노무사는 “재해조사 과정에서 당사자와 당사자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참여하고 현장검증을 불시에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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