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08-12-08   2100

[통인동窓] 다문화사회의 그림자


글쓴이: 임운택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계명대 사회학과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이하여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다문화사회에서 이주민의 인권보호와 증진’에 관한 국제회의를 주최했다. 참가자들은 회의 마지막 날 송출국과 유입국의 국가인권기구가 국제협력을 통해 이주민 인권을 더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서울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그러나 같은 날 검찰과 경찰, 출입국사무소 직원 200여명으로 구성된 국가공권력은 “불법체류 외국인 밀집지역이 슬럼화되고 외국인 범죄의 온상이 된다”는 이유로 단속에 나서 이날 하루 동안에만 무려 100여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연행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러한 편견을 잘 알고 있는 국제인권회의는 이번 서울가이드라인을 통해 ‘이주민을 자국 내 일자리를 빼앗는 침입자 또는 사회적 불안요소로 간주하기보다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법무부는 현재 22만여명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를 연말까지 20만명 수준으로 감소시키겠다는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일 심산이다.

최근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일련의 정부 정책을 보자면 심히 우려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9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는 현재 대부분 기업들이 10여만원을 부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숙박비, 식대를 이주노동자 본인이 부담토록 관계법령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잔업과 특근을 빠짐없이 하더라도 월평균 100만원에서 110만원 정도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숙식비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결정은, 어차피 코리아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서 일하려는 노동자들이 줄서 있기 때문에 마른 수건 쥐어 짜듯 해도 괜찮다는 생각인 듯하다.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임금, 장시간의 비인권적 처우를 받아가면서 기꺼이 노동력을 제공해주고 있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심히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가 이주노동력에 대한 반인권적 태도를 방조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과 관련하여 볼 때, 비정규 노동의 합법화, 이주노동력에 대한 차별정책은 반지성주의와 경제적 물신주의에 기초한 철저한 계급정치의 산물이다. 일찍이 브레히트는 “물 속에서 상어의 자유는 작은 물고기에게 죽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정부가 기업인들에게 생산성 향상에 매진하게 하지 않고 인건비 감축을 선사하려 하는 한, 현행 고용허가제 틀 내에서조차 인권침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50년에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의 비율이 9.2%에 달하리라는 예측은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일련의 정책과 지난 몇 년 동안 강조된 다문화정책을 비교해보면 더더욱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100여년의 해외이민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반추해보면 대단히 역설적이다. 이미 한국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문제는 한국 사회의 발전적 재구성이라는 차원에서 재인식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주노동 문제는 한 국가 내의 문제인 동시에 국가간(송출국과 유입국)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동시에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들어온 개인의 욕망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또 노동과 자본이라는 계급적 문제인 동시에 인종문제이기도 하며,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노동시장의 재편 혹은 구조조정의 문제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문화적 관용 혹은 배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한 점에서 현행 고용허가제는 노동허가제로 시급히 전환되어야만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 2008년 12월 5일자 기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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