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산업재해 2003-07-03   1373

외로움보다 더 무서운 한국생활

베트남출신 이주노동자 치엔의 서울살이

트린 앙 치엔(Trinh Anh Chien) 베트남출신 이주노동자

내가 꿈꾸었던 한국,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발전된 나라, 기술의 발전, 로봇으로 움직이는 공장과 현대화된 사람들은 멋진 옷을 입고 일할 것이라고 상상했건만…

내가 처음으로 일하기 시작한 철강제품 제조공장은 나의 이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계에서 왱왱대는 끔찍한 소음과 검은 기름때로 공장은 더럽고 지저분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할 사람들은 약 200명 정도였는데, 그들 대부분은 마흔다섯이 넘은 아저씨들이었다.

도대체 한국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일하는 것인지, 이렇게 힘들고 고단한 일을 나이든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들도 기계에서 묻어 나온 검은 기름때로 얼굴이 검게 그을렀고, 현대화 된 기계 혹은 컴퓨터로 작업하는 대신 망치 몽키 삽 등의 도구를 사용해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작업해야하는 현실.

어쨌든 나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사 첫날 나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수업체에서 일을 하는 것은 정말로 나를 미치게 만든 것뿐이었다.

나는 나와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도 영어나 베트남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태였다.

당연한 것이,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언어교육도 우리는 받지 못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기술연수를 희망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연수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느냐, 혹은 얼마나 한국인과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수생은 순전히 누가 송출업체에 더 많은 돈을 내느냐에 따라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든 산업연수생은 한국에 도착해서 처음 3일간 중소기업협동중앙회 빌딩에서 합숙한다. 그 3일간이 한국에서 나와 같은 산업연수생이 받는 연수의 전부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런 말들이 3년 간의 직장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지만 우리가 한국어에 대해서 얻는 지식의 전부였다. 한국인 동료들과 나는 양쪽이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가 많아졌다. 시간이 지나서 한국말에 반말과 경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장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나에게 반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반말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거의 날마다 욕을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그 당시 그 아저씨들의 말을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나에게 욕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쁜 인간들, 일만 시키고 ‘일요일까지도 일만해야 하라고 내가 기계냐’고. 한국에 있는 동안에 한국문화와 한국직장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왜 교육을 시켜 주지 않는 것일까?

직장생활한 지 3개월이 될 쯤 그날도 나는 한국인 동료에게 심하게 욕을 먹고 심지어 사무실에 있는 조그만 총각에게 모욕을 당했다. 사실 그 사람들의 탓뿐 아니라 내가 조심하지 않는 탓도 있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 관리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는 나에게 “너의 나라에서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왔든 일류기업에서 일을 했든 이곳 한국에서는 별수 없이 같은 출발선상에 서야한다. 우리는 니들의 힘만 필요해, 한국말 따위를 배우려 하지말고, 열심히 일이나 해”라고 했다. 그 관리자의 말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서러움에 몰래 눈물을 흘린다.

베트남에서부터 언어에 많은 관심이 있었기에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힘든 일과로 지쳤지만 틈틈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내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 힘으로 엄청난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대화이다. 대화를 통해 마음이 편해지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지혜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도 나를 이해시키는 것도 힘들기만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한국인 동료들은 많았지만, 그들로 내게 열심히 지껄일 뿐이었고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런 정도였을 것이다.

연수생으로 있었던 1년 반은 정말로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했다. 배우는 것은 하나도 없고, 기계소리와 기름때에 범벅이 되어서 하루 일을 마치고 나서도 형제도 친구도 이웃도 없이 기숙사 안에서 혼자 앉아 있게 되었고, 이곳에 가장 고독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평소 남과 사귀기 좋아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나를 나약한 마음(주변에 있는 사람이 일부러 하는 게 아니라도)으로 가혹하게 괴롭혔다.

목숨이 살아있는 날까지 세상 사람들을 모두 나의 친구로 끌어들이고 싶은 나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렇게 인생을 포기할 수 없기에 나는 서점에서 한국어 사전을 몇 개 샀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나면 피곤하고 지쳤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한국어를 말하고 쓰고 또 한국인 친구들이 많지만,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가끔씩 뒷산에 올라서면 큰소리로 외치고 철없는 아이처럼 울었다.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나면 그래도 힘들고 외로운 한국생활을 하는데 작은 위안이 되었다.

‘아무리 나를 무시하고 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아직 나는 사람이야!’ 나까지 나를 포기 할 수 없다고 얼마나 굳게 다짐했던가. 그때 외로움보다 무서운 한국직장생활로 부산타워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저쪽 바다에 갈매기를 바라보며 다시는 이 땅에 내려오지 않고 넓고 푸른 하늘에서 내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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