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산업재해 2003-11-20   1108

<김창엽의 건강세상만들기> 야만의 세계화와 이주노동자의 인권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단속이 한창이다. 이 때문에 벌써(11월 17일 현재) 2명의 이주노동자가 자살하고, 중국 동포들의 단식농성도 이어지고 있다. 누가 이들을 자살과 농성으로 내몰고 있는가.

행정적으로는 구구한 주장과 변명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사실 이번 일은 단지 행정적인 조치와 이에 따르는 당사자들의 반발이라는 차원으로 보기 어렵다. 이주노동자를 보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이 빽(?)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조치를 감행할 수 있었겠는가. 또 이주노동자들의 항의를 어찌 으레 있을 수 있는 피해당사자의 단순한 문제제기라고 볼 수 있겠는가.

외국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타성은 유별난 바 있다. 유전적으로 35가지 이상의 혈통이 섞여 있다는 것이 명확한 마당에도 5천년 역사의 단일 민족이라는 신념은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단일민족이니 아니니 하는 민족주의를 논할 생각은 아니다.

문제는 인권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체류와 추방에 관련된 문제는 근본적으로 인권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사회 전체의 인권의식과 인권보호 수준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에 비하여 답은 너무 간단하다. 우리는 가끔 에둘러 답을 찾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적어도 이 문제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의심할 바가 없다. 핏줄을 달리한다고 해서 반인권적 처우를 받아도 되는 경우란 없지 않은가. 이미 역사적으로 폐기선언을 받은 천박한 인종주의가 아닌 바에야.

이주 노동자의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요즘도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사실 나도 텔레비전을 보다 가끔 눈물을 찔끔거린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들의 아픔과 처지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들은 볼 때마다 빼다 박은 듯이 사정이 한결같다. 임금체불에 인권침해, 차별과 멸시가 이어진다. 돈도 돈이지만, 몸이 상하고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노동자로 올 정도니 젊은 축이고 건강한 편이었을 터인데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노동환경이 좋을까, 산재니 보험이니 하는 제도가 충실할까, 건강을 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객관적인 자료가 있나 싶어 인권위원회의 최근 보고서를 뒤져보았다. 생각보다 건강상태가 더 나쁘다. 작년 말에 천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3명에 한 명 꼴로 사고성 재해를 당했고, 47.3%가 병으로 직장을 사흘 이상 쉰 경험이 있었다.

주로 3D 업종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사고도 사고지만, 처리는 더 한심하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건 12.7%에 지나지 않고, 전액 개인부담도 27.2%나 된다.

사고와 질병에 방치되던 이주노동자 인권이 이제 강제추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관적인 것은 이렇듯 한심한 인권보호 수준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새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인권적 처우가 우리의 의식 속에 매우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를 보는 눈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우리’에게 잠시 필요한 ‘도구’. 도구는 생산 능력이 없어지거나 대체물이 생기면 더 이상 쓰임새가 없다.

그러나 이런 도구적 인간관은 이주노동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이런 시각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보는 일상적인 인간관으로 이미 정착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는 인간을 도구화,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물결이 바야흐로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정이 뻔한 이들의 추방과 질병, 사고를 당연하게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사실 이들에게 추방이나 사고가 무얼 의미하는지는 명확하다. 우선 반인권적 강제추방 조치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자살로서 저항을 하고 있는 마당에 경제적 이해관계나 행정관리상의 어려움을 운운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남아 있는 이주노동자 문제도 심각성은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한가지 문제가 이들의 건강에 대한 보호조치이다. 사실 건강 문제를 혼자 해결하라고 떠넘기는 것은 문명사회의 도리가 아니다. 아니 이건 ‘도리’에 앞서 이미 국제사회의 ‘규범’이다. 국제노동기구는 80년 전에 이미 근로자의 재해보상에 대해서는 내·외국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협약을 체결하였고, 우리나라도 진작 비준했다. 이를 지키자면 산재보상에 관한 한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올 4월부터는 ‘UN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이 발효됐다. 아직 비준한 나라가 아주 적고 우리나라도 적극적이지 않지만, 이 협약에 명시된 내용은 두고두고 새로운 국제규범이 될 것이다. 협약은 불법체류를 포함한 모든 이주노동자가 사회보장과 긴급의료에 대한 권리를 고용국가의 국민과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도 건강권을 비롯한 기본적인 인권을 누릴 권리가 있고, 우리 사회는 어떤 경우라도 이를 보장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이는 불법체류 여부, 피부색, 국적 같은 것에 관계없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기본권이다. 입장을 바꾸어 보면 미국, 일본의 수많은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주노동자는 뭐니뭐니 해도 한국경제의 험한 틈을 모두 몸으로 메우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윤리이자 경제다. 그리고 진정한 세계화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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