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산업재해 2011-07-28   4749

[언론기획] <산재보험은 희망인가> <중> 입증 책임 떠넘기기  

경향신문 참여연대 노동건강연대 공동기획

<산재보험은 희망인가> <중> 입증 책임 떠넘기기  

 

1964년 도입된 산재보험은 정부가 사업주에게서 보험료를 거둬 그 기금으로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에게 보상해주는 제도다. 그러나 승인절차가 까다롭고,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노동자가 져야 하며, 산재 인정 기준도 엄격해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보장성 수준도 낮아 현행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안전망으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3회에 걸쳐 산재보험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기획을 싣는다.

 

“과로로 인한 심근경색인데”… 환자가 업무 연관성 밝혀야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라나 주엘(41)은 지난해 9월 경기 남양주시의 부품제조 공장에서 기계로 나사를 깎는 작업을 하다 심장에 심한 통증을 느껴 새벽 2시에 병원에 실려갔다. 추석을 앞두고 주문이 폭주해 3주째 휴일 없이 야간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의사는 급성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수술을 받고 25일간 입원했다. 병원비는 회사가 부담했다.

 

주엘은 입원 기간 중 회사에서 해고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퇴원한 뒤 회사에 찾아갔을 때다. 생활비와 2차 수술비가 막막해진 그는 지인의 소개로 서울경기인천지역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찾아갔다. “외국인도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나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현행법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역시 산재보험 대상에 포함하고 있으며, 해고 후에도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산재보험을 적용받으려면 급성심근경색이 무리한 야간근무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술, 담배는 어느 정도 하는지’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등을 물었다. 회사 측은 “평소 건강이 안 좋았던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였다. 그를 도운 박문순 노무사는 “심근경색은 산재 항목이지만 업무상 관련성을 입증하는 일이 어려워 산재 승인을 받기 어려운 질병”이라고 말했다. 라나 주엘은 사고 발생 5개월 만인 지난 1월 산업재해 요양승인을 받아 2차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jpg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의 ‘서울경기인천지역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서 윤선호 노무사(가운데)가 산재보험 신청 문제로 찾아온 이주노동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총칙에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할 목적으로 제정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의 승인 절차가 까다롭고 재해와 업무의 연관성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60명가량이 일하는 인천의 대기업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ㄱ씨(41)가 단적인 예다. ㄱ씨는 2009년 작업 도중 손가락이 기계에 빨려들어가는 사고를 겪었다. 급히 수술을 받아 손가락이 잘리는 것은 면했지만, 의사는 “최소 1주일은 아무일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ㄱ씨는 외상을 입었기 때문에 산재 승인을 받기 쉬운 처지였지만, 회사는 “산재 신청을 하면 해고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결국 통증을 참고 계속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청업체의 경우 산재율이 높아지면 원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산재보험 대신 공상처리(회사가 대신 치료비를 내주는 것)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강모씨(61)는 산재요양 신청을 포기하고 건강보험으로 치료한 경우다. 2년 동안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강씨는 지난해 7월 양쪽 어깨가 아파 일을 그만뒀다. 강씨는 주변 요양보호사들이 산재신청 불승인 판정을 받는 것을 보고 신청 자체를 포기했다. 대신 실업급여를 받아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쪽을 택했다. 강씨는 “결정까지 서너달이 걸리고, 승인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산재 신청을 하느니 내 돈으로 치료하고 빨리 취업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세사업주도 산재보험을 이용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경기 김포시에서 5인 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장모씨(58)는 “조그만 공장으로서는 산재보험료도 상당히 부담이 된다. 내가 다쳐도 그냥 내가 처리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불법체류자라고 무조건 잡아가기 바쁘니, 공장을 운영하려면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는) 숨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재 피해자 가운데 실제 산재보험 혜택을 받는 비율은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준 가천의과학대 교수는 2008년 ‘국가안전관리 전략수립을 위한 직업안전연구’ 보고서에서, 2006년 건강보험 치료항목을 분석한 결과 산재에 따른 치료 건수는 100만1445건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정작 그해 산재보험 신청 건수는 7만9675건이었다.

 

강성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은 지난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산재사고 사망률은 3배이지만 손상률(피해율)은 5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이 자료를 근거로 “사망 외의 산재 손상(피해)에 대해선 산재 신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실제 산재사고는 정부 공식 발표의 15배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경향신문 기사 원문보기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