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노사관계 2003-07-02   1389

떡은 떡인데 그림의 떡 ‘네덜란드식 노사모델’

정부 노사관계 개혁구상에 노사 양측 회의적 반응

최근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이 대결로 치닫고 있는 노사문제에 대해 네덜란드식 노사모델 추진의사를 밝히자 노동계는 진의 파악에 골몰하고 있고, 재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사 관계자들은 대체로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정부 구상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나온 이정우 실장의 네덜란드식 노사관계 구상은 “노사의 유불리에 관계없이 노사관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편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직후에 나왔고, 조만간 근본적인 노사관계 개혁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힌 점에 미뤄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와 준비에 관계없이 네덜란드식 노사모델은 아직은 ‘그림의 떡’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먼저 노동자의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의 불비가 지적되고 있다. 장상환 민주노동당 정책위원장은 “대결양상으로 치닫는 노사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네덜란드식 노사관계를 구상한 정부의 방향 설정은 옳지만 주택, 교육, 의료 등 삶의 모든 영역을 임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임금양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기업 역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노동시간 단축을 생산성 향상으로 커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문제는 노사정 합의체제를 뒷받침할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다. 네덜란드 노사모델의 성공 배경에는 노사정 합의를 정책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당시 집권당이고 지금은 제1야당인 사민당의 정치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과거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사항이 정부 각 부처와 국회를 거치며 번번이 무산되거나 왜곡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노사정 합의기구가 재구성된다면 정부의 의지에 따라 그 위상을 과거 DJ정부의 노사정위원회보다 높은 차원으로 가져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계 입장에서는 현재 노 정부가 취하고 있는 각종 경제 및 노동정책과 태도에서 그런 신뢰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강우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법과 원칙의 이름으로 공권력을 앞세우고 있는 정부가 갑자기 네덜란드식 노사모델을 언급한 것에 대해 그 진의가 의심스럽다”면서 “정부가 순수한 네덜란드식 모델보다는 대처리즘과 네덜란드식 모델의 조합을 도모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모순되는 두 기조 사이에서 노동계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적 정책과 의지가 없다는 점도 정부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 장 위원장은 “사회복지를 확충하기 위한 비용은 결국 자산소유자에 대한 과세강화 등을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는데 법인세 인하 방침에서 보듯 정부 방침은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세 번째는 노사 양측의 수용의지다. 노동계는 정부의 구상이 임금동결과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정책만 수용케 하려는 것은 의도가 아닌 지 의심하고 있다.

노동계의 경우 노사정 합의체계의 위상과 사회안정망 확충에 대한 정부 의지에 따라 오히려 환영의 뜻을 밝힐 가능성도 크지만 재계 입장은 강경해서 설득이 어려워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최재황 홍보실장은 “네덜란드의 경제위기는 오일쇼크라는 외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반면, 지금 우리의 경제위기는 노조의 강경투쟁으로 인한 노사불안이 가장 큰 원인인데 노조의 경영참가를 허용하는 것은 강경노조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며 “지금 노조가 임금동결을 받아들일 도덕적 책임감이 있는가?”라며 정부 구상에 반발했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초반 국내외적인 상황으로 인한 극심한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노사정 3자가 사회경제협의회(SER)로 불리는 합의틀을 만들어 양보와 타협을 통해 경제 재도약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합의체제 속에서 노동조합은 임금동결 또는 삭감,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받은 대신 기업에게는 노조의 경영참가를 수용하고, 고용안정과 일자리창출에 노력할 의무를 지웠다. 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눔으로써 사회적 통합력을 높이는 데도 노사정의 양보와 타협이 이뤄졌다. 정부 역시 SER의 노사정 합의사항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장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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