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히어로 FGI ④] "우리가 참 초라한 세대가 됐다"

[영상]취약한 사회안전망에 갈 곳 잃은 노인세대

 IMF 이후 비정규직 및 저임금 일자리의 비중 증가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취약계층의 노동·인권실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와 <오마이뉴스>는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동을 말할 수 있는 <우리 사회 노동히어로가 말한다> FGI(Focus Group Interview)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 시대 노동 히어로가 말한다> 네 번째 FGI(Focus Group Interview, 표적그룹 인터뷰)가 2일 저녁 참여연대 3층 중회의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 이경태  고령노동자
 
 "사실 일자리가 없어요. 완전 고령사회가 되고 나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야겠어요?"

각자가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답답함은 2일 저녁 참여연대 3층 중회의실에 모인 모든 이의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네 번째 노동취약계층 FGI(Focus Group Interview)의 주인공 '고령노동자'를 위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약 20년 내에 한국은 '고령화 사회'(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에서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로 진입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일본의 경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36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일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속도에 비해 우리나라는 IMF 이후 평균 55.2세라는 조기 정년제와 명예퇴직이 보편화되고 있다. 수입이 중단된 그들에게 본격화된 지 고작 20여년 밖에 되지 않는 국민연금 등 부실한 사회안전망은 그들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과거와 같이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면 된다'는 논리는 이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난 1일 서울시는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 결과 서울 시내에서 20년 후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청·장년(15~64세) 인구가 3.2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부담스런 미래'를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55세 이상 고령노동자들을 위한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에게 열린 일자리는 아파트 경비직이나 주차 안내 등 극히 일부 직종뿐이다. 그래서일까 이날 모인 이들 대부분의 직업도 '아파트 경비'였다.

수입도 없고 국민연금도 부족… "우리가 참 초라한 세대가 됐다"

▲ 황재하(64. 가운데)씨는 "아파트 경비가 '감시적·단속적 노동자'로 승인돼 최저임금법에도 적용받지 못하고 용역업체로부터 저임금·고용불안 등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이경태  고령노동자
 
과거 조선소 등에서 용접을 했던 김호연(60)씨는 퇴직 이후 아파트 경비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이 있었지만 나이가 든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고, 재취업을 위한 노동청의 교육 역시 그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씨는 "공무원들이 사진이나 찍고 해서 몇 명 교육했다는 보고서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중식이나 얻어먹었지"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씨는 "기술만 있고 힘만 있으면 취업이 됐던" 과거를 그리워했다.

"예전에 공단에서 사람을 뽑는다 하면, 시급에 상여금, 4대 보험 가입 조건에 통근버스까지 붙여서 광고가 떴는데 요새는 안 그렇다. 그저 월 얼마 주겠다는 내용만 있다. 경기가 안 좋고 노동임금이 비싸다 보니 일을 주는 곳이 없다. 우리 전에 선배들 같은 경우는 자식한테 가면 됐지만 이제는 시대가 그렇지 않다 보니깐…. 우리가 참 초라한 세대가 됐다."

역시 현재 아파트 경비원을 하고 있는 김택육(61)씨는 국민연금만으로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정년퇴직한 55세 때 조기연금을 탔다. 퇴직 후 막막했는데 조기 연금을 타면 그나마 구직까지 좀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기연금은 이후 김씨의 발목을 붙잡았다. 5년 먼저 탄 연금은 이후 본 연금에서 25%가 깎인 금액으로 지급됐다. 김씨는 같이 퇴직한 동료보다 반절이나 적은 액수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부은 연금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에 놀랐다. 조기연금으로 인해서 국민연금이 이렇게 깎일 줄 알았다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에서 이에 대해서 홍보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아파트 경비'… 그러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 2007년 4월 30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명일동 H아파트 참사 현장. 경비원 허모씨는 부당해고에 항의하며 분신자살했다. 
ⓒ 오마이뉴스 장윤선  
 
험난한 구직과정을 거쳐 찾아낸 '아파트 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백화점 보안근무, 아파트 경비 등 총 8년 동안 경비직을 경험한 황재화(64)씨는 "실제로 우리가 받아야 할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부조리를 이들 역시 퇴직 이후 제2의 직장에서 경험하고 있었다.

"용역업체인 경우에 아파트 경비들의 수입은 형편없다. 휴일도 없이 24시간 격일제로 근무를 해도 자치관리인 아파트에서 일하는 이는 200만원을 넘게 받고 용역관리인 아파트에서 일하는 이는 98만원밖에 못 받는 경우도 있다. "

황씨와 같은 일이 가능한 이유는 아파트 경비직이 '감시적·단속적 노동자'(이하 감단직)이기 때문이다. 감단직은 최저임금법의 기준도 받지 않는다. 감단직은 최저임금의 80%만 받도록 되어있다. 경비원, 검침원 등과 같은 감시적 노동자와 아파트 건물의 전기·냉난방 기술직 등 단속적 노동자들은 다른 일반 노동자처럼 노동의 강도가 세지 않거나 업무가 연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경비들은 24시간 맞교대를 하면서 일요일 등 휴일에도 일을 한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거기다가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도 없다. '악덕 용역업체'는 여기다가 '휴게시간'(3~8시간)을 넣었다. 휴게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치지 않으면서 실제 지급해야 할 월급에서 제하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맛본 부조리함과 인간적인 모멸감

▲ 한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눈 내린 아파트 마당을 청소하고 있다. 
ⓒ 윤대근  
 
용역업체는 이 휴게시간을 다른 식으로도 악용했다. 황씨는 "휴게시간에 근무지를 이탈하지 못하게 하면서 경비들이 졸거나, 신문을 보는 등 딴 짓을 하면 이를 불성실로 트집 잡아서 계약 만료 전에 쫓아낸다"고 말했다.

"일부러 계약기간을 짧게 해서 4대 보험이라던가, 퇴직금·연차 등을 안 주려고 하는 거다. 1년이 지나면 명의를 바꾸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계약 당시 맺었던 고용승계를 합법적으로 피해나가는 거다."

아파트 경비만 10년을 한 오구환(60)씨도 '용역업체' 이야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용역은 있어서는 안 될 업체다"고 말했다. 오씨는 경비직을 하면서 현장에서 경비들을 관리·감독하는 반장, 주임까지 경험해봤다. 주임을 맡았을 때 그는 업체로부터 멀쩡한 이를 자르기 위한 지시를 받았다.

"그 사람이 시말서를 쓰게 만들라고 하더라. 속으로 끙끙 앓았다. 시키는 것을 하지 않으면 잘리는 식이다. 자리 이동시키고, 눈치 주고 자진해서 그만두게끔 만드는 이들이다."

용역업체의 '착취' 외에도 인간적인 모멸감도 함께 경험했다. 감단직 업무와는 상관없는 화단정리, 음식물쓰레기통 세척, 제설작업뿐만 아니라 전단 돌리기, 장 본 것 들어다 주기 등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황씨는 "아파트 주민 한 사람이 자식과 같이 가다가, 아이에게 '너 말 안 들으면 저 경비 아저씨처럼 된다'고 말했다"며 "경비를 사람으로 안 보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그래도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은 '아파트 경비'였다. 이 시대 고령노동자에게 허락된 일은 너무나 적었다.

김호연씨는 "우리 같은 나이에 힘 그리 크게 들이지 않아도 되는 단순라인작업도 할 수 있을 듯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최근 직장에서 퇴직하고 구직활동 중인 곽형탁(61)씨는 "찾아간 자리마다 젊은이들이 다 있었다"며 "나라에서 좀 (우리를) 배려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황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요소요소 투입이 되면 좋지만 현재 우리 상황에 맞게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나, 이력서 들고 가면 읽지도 않고 안 된다는 말부터 나온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2008.10.07 15:29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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