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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회위원회    차별없는 노동을 위해 노동정책대안을 제시합니다

  • 칼럼
  • 2013.02.04
  • 2256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4월30일 창립 20주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2012년 총·대선 국면 산별노조운동 점검 좌담회'에 이어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를 주제로 연중 캠페인을 진행한다. 캠페인에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가 함께한다. 연석회의에는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연중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연속기고에서 한국 노사관계 개혁을 위한 산별노조운동 전면화와 초기업 노사관계로의 재편을 제안한다.

 

연속기고는 매주 월요일 게재되며, 산별운동에 관심 있는 현장 노사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연속기고가 마무리되면 책자로 발간한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산별운동 진단과 제도화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다.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관련기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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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33] 경제민주화와 산별노조운동

 

 

내가 감히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대해 왈가왈부할 처지는 못 된다. 유신시대에 구로공단에서 야학을 하던 학창시절부터 최근 희망버스 집회에 이르기까지 가끔 머리 숫자 하나 늘려 준 것 외에는 특별히 기여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신장하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노동운동에 헌신한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할 따름이다.


하지만 현재 노동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중심세력으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노동운동의 위기를 예측하고 이를 돌파할 새로운 운동노선의 핵심은 산별노조운동이라고 생각해 왔다. 릴레이 기고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최근 산별노조운동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확산되고 있어 사뭇 기대를 가져 본다.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시작된 이후 석 달 동안은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상 가장 뜨거운 투쟁의 기간이었다. 수천 건의 파업이 일어났고 새로운 조직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개발독재체제의 와해와 더불어 개발독재의 최대 희생자였던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유학 중이었던 나는 멀리서 이 소식을 들으며 투쟁의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벅찬 감격을 느꼈다.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상징되는 소외되고 힘없는 자들의 처절한 저항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사회변혁을 꿈꾸고 기획하는 강력한 대중운동이 돼 가고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실망했다. 한 가지 통계가 눈에 확 들어왔다. 87년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80년대 내내 기업규모에 따른 임금격차가 감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증가한 것은 노동운동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기업별노조가 임금인상 투쟁에 집중하다 보니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왜곡시키는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 큰 폭의 임금인상을 얻어 낼 수 있는 대기업노조는 잘나갔고, 경영상태가 신통치 않은 중소기업노조는 힘을 쓰기 어려웠다. 노동자의 대동단결과 평등과 정의를 추구해야 마땅한 노동운동이 오히려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국제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확대는 임금의 평등화를 초래한다는 정형화된 명제가 한국에서는 반대로 뒤집혀 버린 것이다.


단순히 경제학자로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별노조주의와 경제투쟁 위주의 투쟁노선은 노동운동 자체의 구조적 약화와 진보적 정체성 상실로 이어질 터였다. 나는 사실 이런 걱정 때문에 89년 겨울방학에 일시 귀국했을 때 노동운동계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 몇 분과 또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후배들 몇 명을 만나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나를 더욱 실망시켰다. “혁명을 위해서는 조직의 힘을 길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임금인상 투쟁을 앞세워야 한다”는 식이었다. 극단적인 혁명이념을 내세워 보수적인 운동노선을 정당화하는 기묘한 상황이었다.


노동운동은 90년대에 정체기를 맞았고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제도정치권 진출이라는 성과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참으로 민망한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된 이유가 이념성을 상실하고 조직 이기주의에 함몰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한국 노동운동이 진보적 변화의 주축세력으로 성장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성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목전의 이익을 좇는 것이 아닌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중심으로 이 땅에서 노동으로 먹고사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산별노조운동이고 경제민주화운동이다.

 

경제민주화의 가장 핵심적인 고리는 임금격차 완화이고, 이를 위해 산별노조운동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최대 문제로 거론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다. 그런데 대다수 중소기업에서는 정규직이라고 해도 임금수준·고용안정·복리후생 등이 워낙 낮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 노동시장 분절의 선은 대기업 정규직과 그 나머지 전체를 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 못지않게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를 줄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산별교섭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산별노조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과 차별해소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시장의 불평등 문제는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의 핵심이다. 87년부터 노동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대기업들은 한편으로는 임금을 올려 주면서 노조를 무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대한 고용을 회피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자동화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아웃소싱과 사내하청 등을 이용했다. 그 결과 대기업 고용은 감소하고 중소기업 고용이 크게 증가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생산성 격차와 임금격차가 날로 확대됐고, 국제적으로 유례없이 그 격차가 벌어졌다. 이 격차가 워낙 심하다 보니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청년들이 어떻게든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하는데, 대기업 일자리는 자꾸 줄어드니 일자리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대기업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많은 청년들이 노동시장 주변부를 맴돌고 있고, 소위 ‘이태백’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의 부족은 자영업 과잉과 이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의 빈곤 문제를 낳고 있다.

 

내가 일자리 문제를 얘기하면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고, 중소기업에서는 일손을 구하지 못해 난리라고 항변한다. 내 대답은 간단하고 효과적이다. “사장님은 아드님이나 따님을 사장님 회사에 취직시키고 싶으신가요?” 내 자식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일자리를 남의 자식이 오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 일자리 문제가 양의 문제라기보다는 질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아무리 일자리의 양을 늘린다고 해도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자리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가 사회적 일자리나 인턴 등 일자리의 양을 늘리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런 일자리들이 매우 저급한 일자리였기 때문에 정책효과가 미미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임기 후반기에 양극화 문제를 강조하면서 ‘비전2030’을 발표했을 때 시장의 불공정, 특히 노동시장 불평등을 방치하고 복지를 확대해 양극화를 극복하겠다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당시 노동부 고위관료에게 양극화 문제를 강의할 기회가 있어 산별교섭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완전히 무시당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도 임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동반성장’을 강조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는 여야 후보 모두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의 폐해를 충분히 경험한 국민이 경제구조를 공정하게 만들고 성장의 혜택을 고르게 나누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경제성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히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만하다. 동반성장이건, 복지국가건, 경제민주화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전환의 한가운데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가 있으며, 이는 산별노조운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면 재벌개혁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물론 재벌개혁은 중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엄청난 격차도 사실 재벌 대기업들의 중소하청업체에 대한 착취구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재벌개혁으로 중소기업 임금을 올린다는 것은 연목구어다. 명실상부한 산별조직을 세우고 산별교섭을 확립해 임금 평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거꾸로 재벌 대기업으로 하여금 하청단가를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난해 대선 패배로 인해 진보진영이 ‘멘붕’에 빠졌다고들 한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진보는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진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구축해 놓은 소소한 기득권을 전부 내려놓아야 한다. 과거를 뼈아프게 성찰하고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는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본다. 개발독재하의 산업화 시대와 직선제민주주의하의 시장화 시대를 거쳐 이제는 참여민주주의와 경제민주화의 시대가 온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나 경제민주화는 권력자가 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나서 쟁취하는 것이고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 내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각 부문운동과 연대해 경제 전체를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이며, 정의롭게 만들기 위한 경제민주화운동에 나서야 한다. 산별운동과 노동자 경영참여를 진전시키고, 협동조합운동과 결합하며, 복지국가 건설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 글은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의 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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