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04-04-02   1128

<안국동窓>샤말 타파의 추방이 뭐 그리 급하단 말인가

내가 아는 어떤 이보다도 맑은 눈을 가진 샤말 타파(네팔 출신의 미등록이주노동자)씨가 끝내 출국을 당했다. 나는 지난 겨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그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강제추방 저지와 전면 합법화를 주장하며 농성중이었고, 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절박함만 있을 뿐, 무력하기만 한 방문객이었다. 그나마 ‘면피’라도 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딜 담요 한 장이라도 사주고 싶어하는 참여연대 간사들의 성금 봉투였다. 그는 거의 노숙에 가까운 농성을 수십일째 이끌고 있던 터라 매우 지친 듯했지만, 우리를 보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수줍은 모습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30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그의 맑고 수줍은 표정, 소 눈망울처럼 착해 보이기만 하는 그의 눈을 잊지 않고 있다. 저임금, 열악한 근무환경,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지내온 이주노동자들에게 정부가 ‘토끼몰이식’ 단속과 강제추방 외에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해하던 그의 작은 목소리에서 전해지던, 소박하지만 단단한 그의 신념을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편협한 우리 사회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샤말 타파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이주노동자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계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한결같이 충격적인 사실들 뿐이었다. 인권단체들의 격렬한 반발 때문에 중지된 법무부의 ‘그물총’ 단속, 가스총을 동원한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위협, 보호소에 수용된 이주노동자들의 독방 감금, 이십여일이 넘는 단식자들의 병원진료 거부… 샤말 타파의 전격적인 강제 추방도 많고 많은 반인권적 탄압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법무부의 입장에서 보면 샤말 타파는 단지 불법 체류자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격적 사면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추방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31일간의 단식농성으로 지칠대로 지친 샤말 타파를 심각한 내전으로 신변 안전이 불투명한 네팔로 추방하는게 그리 급한 일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용납할 수도 없다.

오늘(4월 1일) 오전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전화를 걸어 온 샤말 타파에 따르면, 그는 강제 출국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새벽 2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갑자기 잠을 깨워 공항으로 데려가기 전까지도 그에게 강제추방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임금 체불 문제로 소송을 진행중이었고, 보호소의 인권탄압과 관련하여 인권위에 진정을 내 놓은 상태였다.

이미 법무부는 지난 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체불임금과 산재로 피해를 당한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출국유예 및 보호일시해제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다른 사례를 통해 부당한 권리 침해에 대한 구제조치가 종결되기 전까지는 강제퇴거 명령을 집행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권고한 적이 있지만, 샤말 타파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샤말 타파가 수개월에 걸친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을 이끌었던 농성대표단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보복조치가 취해진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법무부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법무부의 샤말 타파 강제 추방 조치가 더욱 납득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이주노동자의 권리보호 단체들의 샤말 타파에 대한 보호일시해제 요청에 관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그의 소송 자료를 제출받기까지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법무부와의 협의는 3월 23일 국무총리 면담 이후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음 날 그를 추방시킬 작정이었다면 보호일시해제 검토를 위한 서류는 왜 요청했으며, 그 서류는 어디에 사용하려 했다는 말인가?

샤말 타파 이전에 강제 추방된 비두가 본국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홍콩행 비행기를 타고 출국한 샤말 타파가 카투만두에 도착해서 도대체 어떤 처지에 놓일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른다. 9년 가까이 내전이 진행중이라는 네팔에서 정부군과 반군 모두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는 샤말 타파가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 권리 활동 때문에 극심한 인권상의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 분명할 뿐이다.

샤말 타파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은 그동안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상의 약점 때문에 임금체불, 사기 피해, 산업 재해를 당하면서도 제대로 권리 구제를 받지 못한 채 욕설과 무시, 구타 폭행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묵묵히 버텨오다가, 법무부의 ‘인간사냥’식 아니 ‘짐승잡기’식 강제 단속에 걸려 무방비 상태로 추방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국을 제2의 고국으로 여기며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에서 땀을 흘린 이주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궁색한 답변조차 제출하고 있지 못하다.

정부는 8월에 시행될 고용허가제의 안착을 위해서도 현재 불법체류자로 불리우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단속ㆍ출국조치와 관련한 전향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그간의 인권유린에 대해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법개정을 포함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제2의 샤말 타파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와 동료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던 샤말 타파가 지금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또한 한국에 있는 그의 친구들이 그에 대한 걱정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누가 그의 신변보장에 확실한 답을 줄 것인가?

박영선(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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