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06-09-14   975

<안국동窓> 뱀꼬리의 참여정부 노동정책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의 근간을 이루어온 노사관계 선진화로드맵을 둘러싸고 전개된 주요 장면들을 에피소드 삼아 엮어보면 다음과 같은 연속극을 연출해볼 수 있을 것이다.

(1막) 2003년 9월 4일 노사정위원회 본회의에 노무현 대통령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 권기홍 장관이 참여정부의 노사관계 개혁 청사진을 공개 천명하고 그 핵심 과제로서 제도 선진화를 위한 정책추진 로드맵을 공표한다.

(2막) 2005년 1월 26일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노동관련 당정협의에서 “노사관계를 보다 안정된 틀로 정착하고 노사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는 올해 이뤄야 할 중요 과제”라고 강조한다.

(3막) 2006년 3월 15일 노사정 대표들은 서울 은행회관에서 제4차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어 “노사관계 로드맵 처리 방향 및 내용에 대해 논의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힌다. 이날 노사정 대표자회의에는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금수 노사정위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한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안 재논의 등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의에 불참한다.

(4막) 2006년 6월 21일 민주노총이 뒤늦게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합류하면서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정부안, 노동계안, 사용자안 등 총 40개 항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의견이 일치된 것은 실업자 조합원 자격, 부당노동행위 등 25개항으로 거의가 현행유지이다. 나머지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은 것은 직권중재, 필수공익사업, 대체근로, 긴급조정, 부당해고, 경영상해고,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 등 15개항이다.

(5막) 2006년 9월 10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예외조항과 기업단위 복수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결정해 시행 시기를 다수 미루더라도 현행 법대로 연말까지 입법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노사정 합의 시에는 3년까지 그 시행을 유예할 수 있다고 밝힌다.

(6막) 2006년 9월 11일 오후 1시께 노사정위에서 민주노총이 빠진 채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상수 노동부 장관, 조성준 노사정위원장이 참여한 가운데 긴급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소집, ‘조건 없는 3년 유예’를 수용키로 했다고 노사정 대표자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밝힌다. 이들은 이를 두고 ‘노사정 대타협’이라고 강조한다. 노동부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이견을 보이기보다 대승적인 차원의 합의를 이뤄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한다.

“괜한 들러리만 섰구나”

감동스런 ‘노사정 대타협’으로 결말짓는 노사관계 로드맵의 줄거리에서 우리는 그 감동에 공감하기보다는 씁쓸한 웃음과 괜한 울분이 묘하게 교차하는 썰렁한 느낌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그 에피소드 장면들에 더러 직-간접적인 조역으로 간여했던 사람들에게는 정부의 배신행위에 대한 울화가 더해질 것이다. “괜한 들러리만 섰구나” 하는 자괴감과 함께 말이다.

출범초기 요란스럽게 노사관계 개혁의 로드맵을 운위하던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이 지난 9월 11일에 슬며시 그 용머리를 감추고 뱀꼬리의 자태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참여정부는 로드맵의 핵심쟁점이라 할 수 있는 사업장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 무조건 향후 5년을 유예한다는 노·경총의 합의를 전격하였으며, 다만 그 유예기간의 2년 단축과 정부 추진의 일부 법개정 사항에 대한 노·경총의 ‘양보’를 그 반대급부로 얻어내었다. 그 결과, 이미 10년 동안 사문화되어온 두개 법조항은 빛을 보지 못한 채 3년을 더 썩게 되었고, 노사간의 민감한 이해관계 문제라는 점에서 지난 10년과 마찬가지로 3년 이후에도 또다른 노·경총 담합과 정부의 방조로 그 시행의 연기-무산이 되풀이되어 ‘법 조항은 있으되 시행되지 못하는’ 희귀한 현상이 지속되는 일까지 벌써부터 점치게 된다.

결연한 태도, 하루새 ‘대승적 타협’으로 돌변?

이번 9.11 노사정합의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강변하는 정부의 입장은 매우 궁색하기만 하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노사정 대타협 선언문’에서 밝히듯이, 법시행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우려한다면 3년의 유예기간 이후에도 그 쟁점조항들의 법제화는 여전히 미루어지게 될 것이며, 지금 과연 이러한 법개정을 재고할 만큼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또한, 참여정부는 그동안 줄곧 노동정책의 핵심과제로 주창해온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의 핵심조항들인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해 노·경총의 ‘뚝심있는’ 담합행위에 백기 투항하듯이 굴복함으로써 스스로 노사관계 개혁의 일관성을 좇기보다는 현실 기득권에 타협-안주하는 한심스러움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더욱이, (앞의 연속극에서 연출되듯이) 지난 3년 반여 기간에 흔들림없이 제도개혁을 강조하던 정부의 정책기조가 하루 아침에 후퇴하게 된 사건에서, 더욱이 하루 전까지 관련 법개정의 강력한 추진의사를 밝히던 노동부장관의 결연한 태도가 하루새 ‘대승적 타협’이라는 옹색한 논리로 표변하는 모습에서 슬픈 코미디의 현장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편애와 의도적 배제

이번 9.11의 노사정 대타협은 그 협의과정을 통해서나 그 합의내용에서 정부가 한국노총-무노조대기업 사용자들을 편애하는 한편 민주노총과 조직대공장들 그리고 미조직 취약노동자들에 대한 전략적인 배제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우선, 정부는 민주노총의 강경한 원칙 고수를 문제삼아 아예 협상과정에서 제외시킨 채 한국노총과 경영계 대표만을 상대로 로드맵 입법협상을 전개하면서 노·경총의 협조를 구하려 함으로써 이들(특히 한국노총)의 압박에 손쉽게 무너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정부의 이번 타협은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산하의 대기업들과 공공부문에 대해 법적 제약을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또는 제한의 경우) 존치하거나 (필수공익사업의 확대 및 대체근로의 도입을 통해) 확대하는 대신, 삼성 등의 무노조기업들에 대해서는 사업장 수준의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노조 조직화의 부담을 덜어주었던 것이다.

특히, 정부는 이번 타협을 통해 최근 노사관계의 태풍 핵으로 등장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복수노조의 허용을 유예-연기함으로써 노동법에 의해 그들의 단결권을 박탈하는 ‘국제노동기준 미달’을 지속하여 노사관계제도의 선진화를 스스로 가로막는 자충수를 두어 이후에도 국내외 비판여론의 표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총 역시 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유예받기 위해 복수노조의 허용 연기를 비롯하여 공익사업의 확대 및 파업 대체인력 허용, 부당해고 벌칙 삭제, 정리해고 통보기간의 부분 단축 등과 같이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심각하게 영향 미칠 법조항들을 손쉽게 양보했다는 매노(買勞)행위에 대한 원성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아울러, 노조 조직체계의 산별화가 급물살 타고 있는 최근의 변화추세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거나 공무원·교원 및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노동권을 신장하려는 관련 법정비를 전연 고려치 않음으로써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절실하게 요구되는 제도개혁 현안들이 자신들의 이해관심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경총과 정부에 의해 배제되는 문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민주노총, 뱀꼬리에 휘둘리는 병약한 몸부림만 할 것인가

그동안 밀실 협상을 통해 성사된 이번의 노사정 합의사항이 곧이어 정부의 입법예고를 거쳐 국회로 이송될 예정이고, 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로드맵 합의사항의 입법저지를 위한 총파업 투쟁을 다짐하고 있어 뜨거운 추투(秋鬪)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노총과 현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대립적 갈등관계가 고착화되겠지만, 최근 조직 이완 등의 내부 문제를 겪고 있는 민주노총이 힘있는 투쟁을 전개치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로드맵 입법과정에서나 향후 노동정치의 핵심지위에 밀려나 ‘별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될 위험도 분명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경우, 정부는 이번 타협을 계기로 사실상 야심찬 용머리의 노동개혁구상을 포기하였지만, 한국노총을 주 파트너로 삼는 5자 협의구도를 유지하면서 임기 말까지 노사관계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뱀꼬리의 전략을 나름대로 추구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노동정국은 정부와 민주노총의 대결구도 여하에 따라 풀려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노총이 뱀꼬리를 움켜쥘 수 있는 강고한 투쟁력을 과시할수 있을지, 아니면 그 뱀꼬리에 휘둘리는 병약한 몸부림으로 그칠지에 따라 당장의 로드맵 입법과정과 내년의 노정구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이 칼럼은 레이버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이병훈(중앙대 교수, 노동사회위원회 준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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