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08-01-29   897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4] 균형도, 배려도 없는 노사정책이 더 해롭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새 정부의 기조 및 정책의 골간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내는 편지’ 제하의 공개편지를 통해 새 정부가 각 분야에서 역점을 둬야할 중점 사항 등을 정리해 10여차례에 걸쳐 내보낼 예정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그 네 번째 글은 조효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부위원장(창원대 사회학과 교수)이 썼습니다.

이명박 당선인께.

대선이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고 신정부 출범이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부처별 업무보고와 정부조직 개편 작업, 공약 이행방안 등을 통해 정부정책에 전례 없는 변화를 예고해왔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정부의 경제 살리기와 효율 중심의 정책방향에 큰 기대를 하는 반면, 독선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당선인의 경제공약과 대선 이후 보여준 행보에서도 명확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선인은 당선 후 가장 먼저 기업인들과의 만남을 가졌고, 차기정부가 ‘친기업적(business friendly)’ 정부가 될 것임을 공언해왔습니다. 이는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로 투자환경을 개선하면 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창출될 것이라는 논리에 기초한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선인은 노사분규가 기업투자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만큼 새 정부에선 준법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노동계와의 소통이나 대화가 제대로 될까 하는 걱정은 많은데, 급기야 민주노총과의 만남은 주변에서 보기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깨져버렸습니다. 민주노총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당선인측에서 갑작스럽게 제시했던 것이 약속이 깨진 이유인데, 이 일로 새 정부와 노동계와의 대화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친기업적 정부…노동과는 친하고 싶지 않나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역시 교육정책과 관련해서는 연일 급진적인 개혁과제와 처방을 쏟아낸 데 반해, 사회적 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해법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외면으로 일관했습니다. 인수위원회에는 노동관련 전문가가 포함되지 않았고, 노동정책 방향에 대한 신정부의 입장이 명료하게 제시되지 않아서 아예 노동정책이 없는 건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었고, 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에 많은 우려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아직 취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노동정책의 윤곽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오직 규제완화와 투자활성화,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만이 강조되면서, 노동정책은 독자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경제정책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판단입니다. 새 정부가 사회갈등의 조정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사회정책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친기업적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은 특히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노동보다는 기업에 편향되어 있고 경제정책을 위해 노동사회정책이 희생되거나 종속될 것이라는 인식은 노사간의 권력관계나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노사관계의 중요한 규제자이자 관리자라는 점에서, 어느 일방의 요구와 이익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노사로 하여금 대화와 적절한 타협을 유도하기보다는 공권력을 활용한 힘겨루기와 극한투쟁을 유인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노사관계에서 정부가 노사 어느 일방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공정하고 중립적인 중재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정부가 기업의 투자환경 개선만을 강조하고 사회갈등에 대한 공정한 조정이나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사회정책을 외면한다면, 노사간 권력관계는 왜곡되고 제도적 창구를 통한 이익대변에 한계를 느낀 노동자들의 극한투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노사관계에서 힘의 균형, 공정하고 중립적인 규제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노사협력은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정부의 노동사회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노사갈등이 격화되는 현실적인 조건을 꼼꼼하게 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일자리 창출만 강조…노동정책 아예 없는 건 아닌지

이 당선인은 투쟁일변도의 노동운동이 합리적, 생산적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노동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업의 동반자 의식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서 노사협력과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노동운동이 어떻게 가능한지,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성찰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당선인께선 준법정신이야말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드는 근본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간 신뢰를 되찾는 것입니다. 노사간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고, 심지어 게임의 규칙인 법을 신뢰하기보다 극한적 투쟁을 선호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사간 신뢰의 회복은 단기적으로 가능한 것이라기보다 오랜 경험의 축적을 필요로 하며, 여기에는 노사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노사관계가 심각한 사업장은 사용자들의 노사관계 관리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사관계가 발전하고 노사간 신뢰가 회복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노사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이 규칙을 공정하게 관리하는 심판자가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과도하게 친기업적인 태도와 정책은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방해하고 노사 당사자로부터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새 정부가 강조하는 성장과 효율을 위해서도 노동사회정책에서 균형과 공정성을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건전한 노사관계 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치밀한 고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은 크게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올해 7월부터 비정규직 보호법의 적용대상이 100인 이상 중소기업으로 확대되면 노사관계에서의 부작용이나 갈등이 보다 격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도 신정부는 아직까지 사회양극화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선인께선 투자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일자리는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재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실업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에 관한 것이고, 근로빈민의 문제이자 사회적 차별의 문제입니다. 이랜드나 대형마트와 같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이 자영업자들의 일자리를 보다 부실한 일자리로 대체하고 비정규직 양산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장과 투자로 해결못하는 비정규직 문제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계의 현안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이고 젊은 세대들의 미래에 관한 문제이며, 우리사회가 앞으로 어떤 형태의 사회로 나아갈지 비전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단순히 성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는 대단히 안이한 발상입니다. ‘기업은 수지가 안 맞으면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는 주장은 맞지만, 기업은 아무리 이윤이 높아도 제도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경기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고용형태의 근본적 변화라는 구조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신정부는 성장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성장과 투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우리사회의 해체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장과 효율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많은 국민들은 이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성장과 효율만으로 노사관계와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비정규직 문제와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회적 합의와 신뢰 형성이 전제되지 않은 성장은 갈등을 초래하고 효율은 소외를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신정부는 성장과 효율이 목적한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균형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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