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참가기>“재미있는 프로그램 없나요?”

사회초년생이 노동절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날

4월 28일부터 지리하게 내리던 비가 밤사이 뚝 그쳤다. 경기도 이천에서 참여연대 평간사 엠티가 있어 새벽 5시까지 밤을 꼴딱 세우고 5월 1일 노동절 아침, 비가 닦고 간 하늘은 그지없이 청명했다. 못다 잔 잠으로 차에서 졸다 정신을 겨우 챙겨 오후 2시에 여의도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전경들이 입구 길목부터 줄 맞추어 ‘딱딱하게’ 반겨주었다. 하긴 날도 맑은데 그들도 철창버스 안 보다는 햇살이 좋겠지 생각하며 광장에 들어섰다. 이 날을 휴일로 보내는지 여의도광장은 수 천명 대회참석자 말고도 일반인들로 가득했다.

롤러블레이드 묘기자, 커플로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들, 농구시합팀, 가족소풍팀 등은 112주년 세계 노동절 대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왁자한 그곳에서 즐기고 있었다. 그런 동안 무지하게 큰 스피커들은 가열찬 노동가요를 부르짖고 있었다. 이미 오후 1시부터 광장 구석구석에서 연맹별 사전대회가 진행 중이었나 보다.

참여연대는 깃발을 중심으로 몰려 있다가 단상 왼쪽 편에 자리를 잡고 두 줄 종대를 맞춰 앉았다. 앉았다 일어났다 대열 맞추기를 대여섯 번 하니 문화공연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와 장애인들이 단상 위에 올랐다.

▲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주장한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
박경석 대표는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죽을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이주노동 역사가 11년이 되었지만 이주노동자에 대한 억압적 차별은 여전하다, 노동자는 하나이며 억압받는 자들은 우리 모두의 친구 아니냐며 함께 투쟁하자”고 외쳤다. 마지막으로 민중투쟁가의 세대교체를 꿈꾸는 듯한 신인그룹(?) ‘ZEN’의 현란한 춤과 노래가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본대회의 식전행사였다. 이윽고 본대회가 시작된다는 소리와 함께 나는 건네 받은 열댓 개의 전단지를 읽다가 졸다가를 반복했다. 지도부, 내빈, 참가조직 소개 후 연사들의 허스키한 목소리의 개회사, 연대사, 투쟁사를 듣고 있자니 햇볕은 너무 뜨겁고 목은 말라왔다. 꼼짝없이 4시간 동안 줄맞춰 앉아 가끔 힘차게 투쟁가를 부르면서도 손이 탈까봐 소심하게 뻗어대었고. 대회는 가열차기엔 이미 너무 더위를 먹었던 것 같다.

▲ 이날 공연을 선보인 그룹 ZEN
아직도 내가 노동자인지 아닌지 확신은 없지만(참여연대엔 사주가 없으니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입장과 그래도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하니 생존권을 위해 싸워야하는 틀림없는 노동자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무지하게 피곤한 집회임에는 틀림없었다.

노동자의 단합이라는 의미에서는 참 뜻깊고 소중한 시간인데 단합한 만큼 만족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노동절이라 간만에 노동 안 하려고 모였는데, 틀에 박힌 진행에 ‘장시간 땡볕에 앉아있기 노동’을 했으니 투철했던 투쟁정신도 혼미해질 것만 같다.

내년 노동절대회에는 민주노총에서 재미난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연맹별 꼬리잡기 대회나, 문선대 가락에 맞춘 강강수월래나….

▲ 따가운 봄볕 속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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