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비정규직 2002-06-09   1517

비정규 노동, 갱신거부와 사유 동시에 엄격히 제한해야

비정규 노동자 보호입법을 위한 토론회 “법원의 보수성도 걸림돌”



‘한국통신의 직원으로 근무한다는 것은 안정된 직장이요, 고임금의 전문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계약직 노동자에게 한국통신은 꿈이자 절망이었다. 한국통신은 3개월마다 혹은 6개월, 1년마다 노비문서같은 재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만 생존이 유지되는 직장이었고, 남들이 모두 쉬는 국경일에도 썰렁한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야 하는 장시간 노동의 현장이었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소식지 ‘힘내라 봇대야! 2000.4.21’ 중에서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확산된 비정규 노동은 노동자의 고용불안, 노동조건 저하, 노동기본권의 제약 등과 함께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낳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해 7월 설치된 노사정위원회 내 비정규근로자 대책특별위원회(이하 비정규특위)는 그동안 논의되었던 기간제, 파견근로, 특수고용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공익안을 발표한 바 있다.

7일 국가인권위원회 강당에서는 위 공익안의 내용과 문제점을 다룬 시민3단체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참여연대가 “비정규 노동자 보호입법의 올바른 방향과 내용-회근 노사정위원회 입법논의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날 토론회에서 김선수(민변 노동위원회)변호사가 주제발표를 맡았다.

또한 권두섭(민주노총 법규차장)변호사가 보조발제자로, 정홍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 노진귀 한국노총 본부장, 이광택 경실련 노동위원회 위원장과 조형수 워커힐 명월관노동조합 위원장이 토론자로 참가하였다.

김선수 변호사는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 보호입법의 올바른 방향”이라는 발제를 통해 비정규근로자의 본질적인 특징과 취약점은 근로기준법상의 해고제한규정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여 고용불안에 시달린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규정의 실질적 보장을 비정규근로자 문제해결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그는 이날 △기간제근로에 대한 올바른 대책마련 △사유제한방식(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기간제근로를 인정하는 방식)에 의한 기간제근로의 규제 △근로자파견의 원칙적 금지 △근로조건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로서의 사용자개념 확대 등을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우선 공익안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언급하는 형식으로 발제를 진행했다. 비정규특위의 논의내용으로 삼은 것은 공익안과 함께 지난 3월 18일 비정규특위의 ‘기간제근로에 관한 토론회’ 자료였다.

사용자의 일방적 근로관계의 종료를 규제하는 방안= 우선 앞의 토론회에서 소개된 세 가지 안을 살펴보면, 1안에서는 계약갱신이 거부된 경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갱신거부의 정당성에 대해 다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 김선수 민변 사무총장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근로계약기간의 설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고 제한없이 가능하다는 전제아래 계약갱신거부를 규제하는 형태를 띠고 있어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했다.

권두섭 변호사 역시 “사유제한을 하지 않고 단지 갱신거부만은 제한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기간제 고용을 확대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고착화시킬 뿐이라고”고 말했다.

2안에서는 기간제근로 계약은 계약기간의 만료로 인하여 종료됨을 원칙으로 하되, 정당한 이유없이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현행법의 해석을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되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기간제 고용이 2년 이상 지속된 경우 고용계약을 일방적으로 단절할 수 없고 2년의 기간 내에 체결된 근로계약의 기간, 반복갱신 횟수 등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내용의 3안을 두고 김 교수는 2년에 도달하기 전의 해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호기능도 수행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 규정과 서면명시의무규정 방안= 기간제근로에 관하여 동일사업장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을 규정하고, 기간근로계약 체결시 계약기간 및 갱신여부, 임금 등기타의 근로조건에 관한 사용자의 서면명시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원칙의 선언에 불과하다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대책이 함께 마련되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 역시 사용자의 비정규직 사용의 유인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지만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서면명시의 경우 근로계약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근로계약기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 23조의 개정방안= 근로기준법 제 23조를 개정하여 “근로계약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일정한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은 일정기간(예시: 1년, 2년 또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 방안이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원칙규정을 설정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위의 원칙규정은 예외를 무제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기간을 현행 1년에서 2년 내지, 3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심각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며 근로계약기간의 장기화를 인정할 경우 사용자는 사실상 정규직을 기간제화함으로써 기간제근로를 보편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기간제근로에 관한 공익안 검토자료’가 지닌 특징은 앞의 토론자료에서 검토되지 않았던 사용에 관한 규제방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공익안에서 기간제근로의 사용은 △사업의 성격상 일의 기간이 정해진 경우 △출산, 육아휴직, 질병 등으로 대체근로가 필요한 경우 △근로자가 개인적 사유로 인하여 기간을 정하는 경우 △기타 사회경제적으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간제근로의 사유제한방식은 반드시 필요

김 변호사는 기간제근로의 사유제한방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그 사유가 매우 추상적이고 기간제근로의 도입과정에서 절차적 제한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근로자가 개인적 사유로 인하여 기간을 정하는 경우’와 ‘기타 사회경제적으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에 대해 사용자에 의한 남용가능성과 해석과 적용의 한계를 각각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개인적 사유’가 왜 필요한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악용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경제적인 상당한 이유’는 전적으로 가치판단에만 맡겨둔 개념이라며 해석의 주체나 관점에 따라 광범위하게 허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기간제근로에 대한 올바른 규제방향으로 기간제 근로에 대한 사유제한을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보았다. 그는 “사유로 제한하지 않으면 결국 상시적 업무에 대해 기간제근로를 사용할 수 있게되고, 그렇게 되면 사용자는 언제라도 기간제근로를 활용하여 해고제한법리를 잠탈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사유제한방식으로 그는 기간제근로는 인정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추상적,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포괄적 규정방식’, ‘제한적 열거방식’, 이를 혼합한 ‘혼합적 규정방식’을 제기했다.

기간제근로에 대한 기타방안으로 그는 기간제근로의 연장과 반복갱신 또는 정당한 이유없는 갱신거부에 대한 효과적 규제, 기간제근로의 사용시 정규직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는 절차 등을 제시했다.

파견근로의 현황에 대해 ‘광법위한 파견근로자 및 불법파견에 대한 사실상 무규범 내지 방치상태”라고 지적한 김 변호사는 “파견대상업무 이외 업무를 위한 파견, 도급이나 사내하청 등의 형태를 띤 위장도급 등 광범위한 불법파견이 만연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근본적 대책으로 ‘파견법 폐지’를 주장했다.

파견법을 존치시켜야 한다면 불법파견에 대한 방치상태를 규율할 수 있는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사용자개념을 재정립함으로써 근로조건의 결정에 대한 실질적인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와 노동조합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인정하여 그에 상응한 노동보호법이나 노동단체법 등의 노동법상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법원의 보수성은 또다른 걸림돌







▲ 권두섭 민주노총 법규차장
권두섭 변호사는 특수고용직 (학습지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레미콘 운송기사 등)각 유형에 따른 판례의 태도를 평가하면서 법원의 보수성을 지적했다.

특수고용직의 노동성(근로성)을 부정하고 있는 법원에 대해 그는 “고용형태의 다양화를 반영하여 법원의 전향적인 입장변화를 바랬으나 최근의 흐름은 과거 판례의 태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며 “집단적 권리에 인색한 법원의 보수성이 문제해결의 또다른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특수고용직과 관련한 공익안에 대해서도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조치로 생각된다. 다만 이 방안을 채택하는 것 역시 근로자 개념에 대한 입법적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편, 이광택 위원장은 변화하기 어려운 법원의 보수성과 노동법에 대해 비전문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들어 판례의 해석론에 회의를 두었다. 또한 유사근로자, 준근로자 등의 새로운개념은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해석론의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입법론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는 대신 조직화를 통해 비정규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운동론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정홍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은 국가복지차원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사회보험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비용과 관리운용의 문제라 보고 적용의 확대를 위한 법적장치의 미비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한 선두적 논의를 위해 시민단체가 앞장설 것을 요구하는 한편, 보험료를 체납한 사업장에 대한 처벌기준 강화, 영세사업장의 비용부담구조의 해결을 주문했다.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사업장 단위가 아닌 직종단위로 가입을 신청하자는 주장은 다른 토론자들로부터도 동의를 이끌어냈다. 정 위원은 무엇보단 “고용안정화와 정규직과의 동일대우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사회보험제도가 재설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조형수 워커힐명월관노동조합위원장
이날 논의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해준 조형수 씨는 “기간제 노동자들은 계약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며 “비정규특위는 대책마련에 있어 사유제한을 반드시 명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워커힐 명월관 노조는 99년 11월에 만들어졌지만 워커힐 노조와의 복수노조시비로 설립이 쉽지 않았다. 설립신고를 진행하면서 2000년 7월에는 일용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이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바뀌었”단다. 계속된 설립신고시도 중에 계약해지 이유로 간부 11명이 부당해고를 당했고 현재 회사는 일부는 정규직으로, 나머지는 용역, 아르바이트, 계약직으로 “다양하게” 갈라놓았다. 그는 “반복되는 계약 속에 갖게되는 정규직화의 희망은 언젠가 닥칠 계약해지 통지서 한 장에 절망으로 바뀐다”며 “기간제 노동은 착취의 재생산을 보장케하는 노동파괴, 인간파괴”라고 못박았다.

이날 토론회를 이끈 조진원 한국비정규센터 사무국장은 “비정규보호방안의 입법까지는 노사정위원회 합의도출과정이 남아있지만 합의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라며 “남아있는 많은 단계들마다 노동조합의 압력과 시민단체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입법만능주의에 기울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운동을 통해 실질적인 결과를 맺도록 하자”며 이날 토론회를 마무리지었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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