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07-06-25   728

<안국동窓> 제2의 6월 시민항쟁을 염원하며

올 6월, 우리 사회에 민주화를 안겨준 1987년의 시민항쟁 20주년을 맞아 이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당시를 회고하면 아직도 철권통치의 제5공화국을 무너뜨린 길거리의 함성이 귓전을 때리는 듯한 젊은 시절의 옛 추억들이 떠올려진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되었던 민주화의 역사가 20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벅찬 기억으로 민주주의를 되뇌기보다는 그 형해화에 더 우려하게 되고, 고통어린 ‘민중’의 재등장에 주목하는 자조의 목소리가 적잖은 게 현실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2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는 민주화를 통해 온 국민들이 주인되는 참민주주의 세상을 열어가기 보다는, 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이 차별과 불안에 시름하도록 만드는 소위 ‘20대 80’의 양극화 사회로 변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의 급증과 노동시장 분절화에 의해,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자들과 다수의 중소기업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 간에 소득 및 근로조건 격차가 날로 확대되어 왔다. 500인 이상 대기업과 비교하여 10~29인 규모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수준은, 1993~97년 사이에 70~73%였던 것이 1998년 이후 급감하여 2005년에는 60% 미만으로 떨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복지격차 역시 1990년대 전반기부터 벌어지기 시작하여 1990년대 후반기 이후 현재까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1990년대에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노동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것과 더불어,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비정규노동자 수가 급증하여 우리사회의 고용구조가 크게 악화되었다. 1992년 당시 전체 임금노동자의 42.6%에 달했던 임시직과 일용직 노동자의 비중은 1998년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5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2001년 통계청 실태조사에서 737만명(전체 임금노동자의 55.7%)이었던 비정규노동자의 규모는 2006년에는 847만명(55.0%)으로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동일 조사에 대해 상이한 추계방법을 적용하는 정부 발표 비정규직 고용규모 역시, 2002년의 384만명(27.4%)에서 2006년의 546만명(35.5%)으로 늘어났다.

지난 20년의 민주화 역사는 한편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해 군부독재에 의해 지배되던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이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외압과 관료-재벌-언론의 국내 권력복합체에 의해 지지되는 시장독재의 등장을 통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심각히 왜곡ㆍ퇴행하였다. 이는 1987년 이전에 개발독재에 의해 강압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및 복지수준이 하향 평준화됐던 것에 비해, 그 이후 정치민주화와 더불어 대기업 조직노동과 중소기업 비정규ㆍ미조직노동 간의 근로삶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노동양극화의 추세에서 단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요컨대, ‘민주화와 양극화의 쌍생아적 동반관계’라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 탄생된 소위 민주정부들은 우리사회 노동양극화를 제어하기보다는 오히려 촉진시키는 데에 한 몫을 해왔다. 김영삼 문민정부는 세계화정책을 통해 경제개방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함으로써 노동양극화를 가속화하는 선행조건을 만들었다. 김대중 국민정부는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정책을 전면 수용ㆍ추진함으로써 사회불평등과 노동양극화의 현실조건을 공고히 하였다. 또한 노무현 참여정부는 이전 정부들로부터 크나큰 빚으로 인수받은 사회경제적 양극화 정책이슈를 뒷전에 둔 채 지난 5년 동안 정쟁에 사로잡혀 민생문제를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민심이반을 자초하여 보수세력에게 더없이 좋은 정권교체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 소위 민주정부들은 개발연대와 마찬가지 ‘경제성장 지상주의’의 정책담론에 사로잡혀, 성장-분배 또는 경제효율-사회형평의 선순환을 구현하는 사회민주개혁모델을 도외시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수용-지향함으로써 결국 노동양극화의 확대재생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요즘, 한미FTA의 재협상과 비준을 둘러싼 열띤 논쟁이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는 연말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그들만의 요란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미FTA이든 대선이든 노동양극화를 치유하고 일하는 서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해줄 것으로 전망되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방향의 정치경제적 변화를 전망케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는 지난 20년의 민주화를 통해 불평등과 차별을 확대재생산하는 시장독재의 권력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1987년의 6월 시민항쟁으로 군부독재의 폭정을 물리치고 민주화의 시대를 쟁취하였듯이, 현재 우리 국민의 다수를 고통스럽게 압제하고 있는 시장독재를 극복하고 일하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진정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 20년 지난 오늘 다시금 ‘시민사회운동의 대장정’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병훈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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