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12-02-06   1258

[복지는 권리다-장시간 노동] “결혼식 다음 날 신혼여행? 난 야근했어요”

아는 사람이 결혼식 다음 날 신혼여행은 못 가고, 야근했어요.”
“소개팅 나가면, 즐거운 척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야근한 뒤에 그러는 게 힘들죠.”
 
대화마다 탄식과 안타까움이 흘렀다. 20~30대 젊은이들은 야근 탓에, 이성을 만날 시간조차 없다고 했다. 집과 직장만을 오고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이 계속되면, 결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혼해도 문제다. 신혼여행 대신 야근을 해야 하는 신혼부부도 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기혼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퇴근이 늦는 날이면, 저녁 때 아이들한테 전화가 온다. 저녁밥을 차려주지 못해, 미안함이 앞선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그러다보면 직장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다툼도 종종 일어난다. 힘든 노동으로 몸에 이상 신호가 오면, 곧 잘린다.
 
2012년 우리나라 장시간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노동시간이 단축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이 대통령이 처음 일자리 나누기를 언급한 2008년에는 신입 직원 초봉만 깎였다.
 
1월 31일 저녁 8시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의 한 막걸리집에서 장시간 노동자 3명을 만났다. ‘막걸리 토크’를 통해 이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아래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사화된 인터뷰 내용 전문입니다. 


 
“새벽 3시까지 일한 적도… 청년 실업 알기에 불평도 못해요”
 
– 다들 어떤 일을 하시죠?
김혜선(26, 가명, 이하 김) : “외국계 기업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일한 지 4년 됐어요.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려고 오전 7시 30분에 출근했어요. 그런데도 일이 많아, 참석이 조금 늦었네요.”
 
– 괜찮습니다. 한 참석예정자는 일이 생겼다고, 오늘 오후 갑작스럽게 불참을 통보했어요. 약속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장시간 노동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더군요.
송영옥(57, 이하 송) : “13년 동안 한국전력공사 의료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도봉구의 한일병원에서 배식하는 일을 했어요. 지난해 7월 장시간 노동 등 근무조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노조에 가입했더니, 올해 1월 1일자로 잘렸어요.”
최재혁(32, 이하 최) : “현재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전에 사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요. 사기업을 다닐 때는 정해진 시간(9시)보다 일찍 출근했었고, 야근도 적지 않았죠.”
 
– 외국계 기업은 야근 없을 것 같은데요?
김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원래 근무시간이죠. 하지만 오후 8~9시에 퇴근할 때가 많고, 새벽 3시까지 일했던 적도 있어요. 설 연휴 때 일한 적도 있고요. 요새는 대략 주 50시간 일해요. 그나마 주 60시간씩 일했던 지난해보다 낫네요. 야근수당은 꿈도 못 꿉니다. 그렇다고 불평도 못해요. 요새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아니까요.”
송 : “아침과 점심 배식하는 오전조에서 일하면, 오전 5시부터 오후 2시까지가 근무시간이에요. 하지만 4년 전, 급식 업계 1위인 아워홈이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추가 채용을 안 하다보니, 오후조 일까지 하게 됐어요. 오후 8시 30분까지 일하게 되는 거죠. 주 60~70시간 일하는 거죠.”
최 : “제 경우, 사기업에 다닐 때는 주말에 일을 할 경우에 대체휴무가 보장되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일만 하다보면, 연애할 생각도 없어져요”
 
– 장시간 노동을 하면, 건강 악화나 사회적 관계 단절 등의 문제가 나타나잖아요. 다들 어떠세요?
송 : “건강 문제가 제일 크죠. 밥솥과 같이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니까 다들 근육통을 달고 살죠. 디스크도 있고요. 어깨, 손, 허리가 아프니까, 매일 침 맞으러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손바닥 수술한 사람도 있었죠. 손에 힘을 쓸 수 없으니까 그 사람은 곧 잘리더라고요.”
김 : “평일에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는 게 제일 안타깝죠. 갑자기 업무가 내려오면, 잡은 약속도 취소해야 하니까요. 요가를 배우거나 영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요.”
최 : “친구 중에 자기 회사 주변에서 유산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본인들 주변 친구들은 유산의 경험이 없는데, 회사사람들이 유산을 하니까 회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더라고요.”
 
– 젊은 직장인들은 연애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요.
김 : “남자를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겠더라고요. 야근 때문에 소개팅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 아예 못 잡죠. 소개팅을 해도 문제죠. 소개팅에 나가면 상대편이 하는 얘기에 대해 재밌는 척 웃어주고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일 많이 해서 피곤한 상태에서는 그런 연기를 할 에너지 자체가 없어지는 거죠.” 
최 : “하루 종일 일만 하다보면, 연애할 생각도 없어져요. 여유가 없으니까. 여자친구를 만나더라도 설렘보다는 내일 출근 걱정이 앞서거든요. 삶의 주도권을 일에 완전히 빼앗기는 것 같아 안타깝죠.”
김 : “연애 패턴도 바뀌는 것 같아요. 연인을 쉽게 만나기 어려우니까, 짧은 시간 안에 환심을 사려고 하죠. 자주 만나면서 감정의 교류를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비싼 레스토랑에 가거나 뮤지컬을 보러 가는 거죠. 또한 많은 선물을 주고요. 감정 교감을 하는 연애가 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워요.”
최 : “아는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는데, 다음 날 신혼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야근을 했어요. 회사가 일정만 내세우고, 신혼부부에게 전혀 배려를 해주지 않으니까요.”
 
– 기혼자들도 고충이 크겠네요. 
송 : “아무래도 그렇죠.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 들어가잖아요. 집에 들어가면 잠자기 바쁘죠. 일하는 엄마들한테는 저녁에 아이들이 먹을 게 없다고 전화할 때가 가슴이 아파요. ‘그냥 계란 프라이 먹어’라고 말해요. 특히, 가장인 엄마들은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에 안 갈 수도 없고 해서 정말 힘들죠.”
 
“이명박 대통령 말 믿을 수 없어… 본인부터 일 적게 해야죠”

–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노동시간 1위죠. 어떻게 하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요?
송 : “우선 많이 뽑아야죠. 회사는 비용 줄이겠다고 인력이 부족해도 안 뽑아요. 회사는 당장 비용이 줄어드니 좋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죠. 결국 서비스 저하로 이어지거든요. 아침에 출근하면 즐겁게 음식 만들고 배식하지만, 늦은 시간에는 힘들어서 그런지 얼굴도 굳어지고 배식하는 것도 짜증나게 되죠.”
최 : “비용 줄인다고 효율성은 높아진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보통 회사에서는 으레 야근하니까, 오전에 쉬엄쉬엄 일하잖아요. 반대로 필요한 만큼 사람을 뽑고, 야근 없애면 더 능률적으로 일해서 효율성이 더 높아질 겁니다. 그게 회사한테도 좋은 일이죠. 다들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까요.”
 
– 요새 기업마다 야근 못하도록 하잖아요. 효과가 있나요?
최 :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보통 회사에서 일주일의 한번씩 가정의 날이라고 해서 야근 못하도록 강제하는데, 결국엔 다음 날 일찍 출근하죠.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있으니까, 또 야근하거나 주말에 나와서 일하게 되죠.”
김 : “윗사람들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 회사는 미국에 본사가 있고 전 세계에 80개 지사가 있어요. 각 지사의 노동시간을 체크하는데 한국지사만 주 60시간이 나오니까 본사에서 패널티를 줬어요. 본사의 압박 때문인지, 최근에는 주 50시간으로 줄었어요.”
 
– 이명박 대통령이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겠다고 했잖아요.
김 : “사무직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인 것 같더라고요. 이명박 대통령도 말만 노동시간 단축하겠다고 하지 말고, 본인부터 휴가를 가든지, 적게 일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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