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칼럼(lb) 2012-01-19   3467

[복지는 권리다-장시간 노동] 10년 넘게 ‘세계 1위’… 특별한 이유 있었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고용노동부에 ‘근로개선 계획서’를 제출했다. 핵심은 근로시간을 감축해 신규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이지만 관심은 관행화된 장시간 노동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로 모인다. 잔업·특근이 많은 엔진·변속기 공장 등 일부 생산라인의 근무 형태를 현행 ‘2조 2교대’에서 ‘3조 3교대’로 변경하고 의장라인 등은 점차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다.
 
이러한 전환이 현실화 된다면 장시간 노동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 노동관행이 획기적으로 변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 이러한 노동시간의 감축은 노동자들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함은 물론, 파생효과로서 설비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연간 노동시간, 한국 세계 1위…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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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1인당 연간 노동시간 ⓒ 고정미 노동시간


2010년을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세계 1위였다. 이를 주간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평균 42시간이 넘는 것으로 칠레,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OECD 국가 내에서는 10년 넘게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현안 가운데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된 지 오래다. 따라서 최근 발표되고 있는 핵심 제조업 내 장시간 노동관행의 축소 조정 계획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시간의 역사적 감축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가장 큰 이유는 경기변동에 대한 비용 조정의 한국적 메커니즘이 갖는 특징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경기변동에 따른 시장수요의 부침에 대응해 생산과 서비스의 물량을 조정해야 할 때, 인력을 통한 방식보다는 노동시간을 통한 조정을 주로 택했다. 즉, 경제 상황이 좋아 생산물 수요가 증가할 때 노동력을 신규채용하지 않고, 기존 노동력의 절대 노동시간을 증가시켜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활용해 왔다.
 
이는 기업에게 노동비용 절감, 노동력 활용 유연화 그리고 생산설비 활용 효율화 등의 효과를 제공했으며, 노동력에게는 임금 상승 기회를 줬다. 아울러 경기 후퇴의 시기에 기업에게는 인원감축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와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의 기회를 부여했다.
 
두 번째 이유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노사의 담합으로써 이는 앞서 설명한 노동력 활용의 한국적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핵심 제조업 노사는 임금과 노동시간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관행화 해 왔다. 즉, 이러한 패턴은 노동자들의 고임금 추구와 사용자들의 시간을 통한 노동력 조절 전략간 이해가 일치한 결과로, 이는 양측 모두에게 최적의 이익을 제공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했다.
 
현재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절대 임금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노동시간 감축에 동의하지 않으며, 사용자도 전환 비용 및 시간 조정의 추가 비용 탓에 노동시간의 감축에 소극적이다.
 
요컨대, 많은 핵심 제조업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타인의 고용 가능성을 확대할 수 있는 노동시간 감축을 선호하기 보다는 ‘현금의 양’을 극대화 하고자 하며, 노동자들에 의한 장시간 노동의 자발적 수용은 기업에게 최소의 비용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 개선… 사회복지 결핍 탓에 더 어렵다.
 
장시간 노동의 관행이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마지막 이유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처한 사회복지의 결핍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대표적인 복지후진국이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 가운데 사회임금(교육, 의료, 주택 등 사회적으로 공급되는 재화)의 비중은 200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8%를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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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ECD 주요 회원국 사회임금(사회복지서비스) 비중 ⓒ 고정미 사회임금 비중
 

OECD 평균 사회임금은 32% 수준이며 사회임금 비중이 가장 높은 스웨덴의 경우 48.5%에 이른다. 요컨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복지 가운데 사회적으로 공급되는 비중은 매우 낮으며 대부분을 기업과 가족이 제공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기업복지의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따라서 취업 여부는 개인의 후생복지를 결정하는 관건이며 임금은 생계와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신의 ‘현재’ 삶의 질을 희생하더라도 가급적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근로자들에게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을 수용하는 근로자들의 선택 이면에는 이러한 문제가 내재한다.
 
요컨대, 노동시간을 통한 생산조절, 임금과 노동시간의 교환 그리고 취약한 사회복지 시스템은 장시간 노동관행의 개선을 어렵게 하는 세 가지 핵심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단축은 규범적 차원의 이슈로서 더 이상 개선을 미뤄둘 일이 아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 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그리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당장에 필요한 것은 연장근로의 최대 허용 범위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53조)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아울러 연장근로의 범주에 휴일근로를 포함함으로써 과도한 초과노동의 유혹을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간 계좌제, 휴일·휴가의 확대 등도 적극적으로 모색해 봐야 한다. 아울러 현안이 되고 있는 주야 맞교대를 포함한 교대제의 전면 개편 또한 노동시간의 단계적 축소를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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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권순원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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