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히어로⑤] 입사 첫날 출근 못한 까닭은 ‘잡상인 출입금지’

장애인노동자 저임금 당연시… 취업문조차 닫혀 
 

 

 

IMF 이후 비정규직 및 저임금 일자리의 비중 증가로 소득불평등과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취약계층의 노동·인권실태는 악화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와 <오마이뉴스>는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동을 말할 수 있는 <우리 사회 노동히어로가 말한다> FGI(Focus Group Interview)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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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명의 장애인들이 10일 저녁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우리사회 노동히어로가 말한다> 마지막 FGI(Focus Group Interview)에 참석해 장애인 노동환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 이경태  장애인
 
"대학까지 나왔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집에 있어야 하다니, 내 존재감과 정체성을 잃어 버리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김아무개·30·골형성부전증)

"출근 첫날. 양복을 차려입고 출근했다. 그런데 경비 아저씨가 막아섰다. 당시 휴지나 고무장갑 등을 팔러오는 장애인들이 많았는데 나를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회사 동료가 사무실에서 나올 때까지 30분이 넘도록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강현욱·55·뇌병변장애)

 

10일 저녁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우리시대 노동히어로가 말한다> 마지막 FGI(Focus Group Interview)에 모인 이들은 모두가 비장애인과 함께, 그리고 차별 없이 일하기를 갈망했다. 노동하고 싶어 했다.

 

장애인과 직장 다니느니 수십억 내는 사회

장애인들이 '불편한' 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능력과 경력에 상관없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17년 전에 50인 이상의 사업장일 경우 전체 근로인원 중 2%를 장애인으로 고용하게 돼 있는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17년째 그 2%는 달성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올 국정감사 중 주목할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4일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의 요구로 노동부가 제출한 상시 근로자 1천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한 '2007 민간부문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에 따르면 삼성전자·LG전자·우리은행·신한은행 등 대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차라리 수십억 원의 부담금을 내는 쪽을 택했다. 이런 기업들의 수는 대상 사업체의 78%로 10곳 가운데 8곳이었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한국노동연구원 등 12개 공공기관은 지난 4년간 단 한 명의 장애인도 채용하지 않았다. 사회는 수십억 원의 돈까지 스스로 부담하면서까지 장애인들을 직장 동료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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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욱(55. 왼쪽)씨는 "회사가 비장애인들이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싼 임금으로 부리기 위해 장애인들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 이경태  장애인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오영철(37)씨는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오씨는 당장 몸으로 노동을 할 수 없어 공부를 다시 해 대학교까지 졸업했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의식이 그나마 열려 있을 것 같은 장애인복지관에 두 번 정도 이력서를 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오씨는 "계속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노동 시장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 같아"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강현욱씨도 "백방으로 이력서를 넣어도 전부 다 떨어진다, (취직이 된다면) 운이 좋은 거다"라고 잘라 말했다. 강씨의 첫 직장은 "사진을 스캔으로 밀어 시디로 굽는" 일이었다. 일당은 2만5천원. 그의 말대로 백방으로 이력서를 넣어 얻은 첫 직장이었다.

강씨는 "(일반 기업들이) 기존 직원들이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싼 임금에 부리기 위해 장애인들을 고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장애인들이 취직을 할 수 있는 사업장의 조건 중 하나'로 규정했다.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는 경우에도 장애인들의 취직이 제한받기는 마찬가지다.

"이 모든 필요조건이 충족됐을 때도 비장애인과 다른 면접이 진행된다. 예전 직장에서는 비장애인은 서류 전형 1번, 면접 1번에 합격이 됐는데 나는 면접을 3번 봤다. 내 이력서 사항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지' 여러가지 테스트를 하더라."

질행성 시각 질환을 앓고 있는 고재혁(31)씨는 24살 때 집안 사정으로 대학교를 휴학하고 사회에 처음 뛰어들었다. 그리고 2년 사이에 10여 가지가 넘는 '알바'를 경험했다.

"능력이 좋아서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실직을 여러 번 한 것이다. 업주가 가만히 지켜보면 겉으론 멀쩡한데 간단한 홀서빙을 해도 손님이 지목하는 것을 제대로 못잡아내는 것이다. 눈여겨보면 내 행동이 이상하단 것을 알게 된다. 알게 되면 곧 '그만 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전에는 내가 시각장애인이란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세상에 대해 알게 됐다."

 

장애인복지관에도 채용 안돼… 대졸 학력에 일당 2만4천원 허드렛일

정작 취직에 성공한 이후에도 장애인들이 겪는 차별과 열패감은 계속됐다.

강씨는 프로젝트를 입안하고 기획한 상태에서 상사로부터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대신 프로젝트를 발표하도록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장이 프리젠테이션 발표 하루 전날 불렀다. 사장이 내게 '이건 중요한 문제다, 은행의 높은 임원들이 보는 것인데 모 대리에게 내일 발표를 시키도록 해라'고 말했다. 일은 내가 다했는데…. 이런 분위기는 항상 경험하던 것이다. 내가 일은 다했지만 일선엔 안 내세운다. 장애인을 흡사 안 좋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김희찬(36)씨는 "회사가 장애인을 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의무 고용으로 받는 지원금으로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면접 때도 그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묻는다"고 했다.

 "회사에 나와 같은 분이 한 분 더 있었다. 그런데 비장애인 중 여직원 한 명이 우리 둘을 불러 장애인 등급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을 늘리기 위한 조치였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등급을 바꾼 뒤 내 삶을 책임질 수 있냐'며 항의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 속상했다. 우리를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껴서 판단하고 있다."

회사가 고용한 장애인에 대한 적정한 업무영역을 모르거나 아예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업무를 배정하기도 했다.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김아무개(30)씨는 사무직을 지원했지만 출근한 당일 업무내용이 달라져 있었다. 고객상담역이었다. 김씨는 "평생 전화기와 컴퓨터와는 떨어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며 씁쓸해 했다.

"나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애인들한테는 주는 일이 다 비슷하다. 비장애인 경우에는 인사팀과의 상당을 통해서 업무를 바꿔주기도 하지 않나? 그렇지만 장애인은 아무리 자신이 원하더라도 갈 수 없다. 장애인의 적성과 능력을 보는 시스템은 없다. 나는 국가의 보조를 받는 장애인이 아닌 한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세금을 내고 싶다."

"일은 내가 했는데, 발표는 비장애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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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지난 7일 오후 마산 삼각지공원에서 장애인활동보조 예산 삭감에 항의하며 집회를 연 뒤 거리행진을 하려다가 경찰이 막아 충돌이 빚어졌다. 
ⓒ 윤성효  장애인
 
이들은 장애인 노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한 것으로 사회 인식의 변화를 꼽았다. 장애인을 외계인처럼 생각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서는 노동 환경의 변화, 제대로 된 법 집행은 꿈 꿀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강씨는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시행령이 각 지자체로 하달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전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야 법도 제대로 간다"고 지적했다.

특히 강씨는 "옛날 '왜 우리집에 저런 애가 나왔을까' 하는 인식이 차별을 낳고 편견을 낳는 것"이라며 "교육과정과 일상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분리시키는 배제책과 장애인은 항상 보호받고 동정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의 변화 없이 장애인의 노동환경 변화는 힘들다"고 말했다.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인 이상호(42·소아마비)씨는 "외국의 경우에도 장애인 노동자 문제가 해결되면 여성 노동자 문제 등 다른 취약 노동계층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장애인 노동자 문제를 전체 노동자 시장 안에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동안 진보진영 내에서도 장애인 문제에 대해 별개의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범노동계, 그리고 진보 시민사회단체 내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끄럽게도 공공기관, 장애인 복지기관에서조차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 상태다. 이는 장애인의 목소리가 비장애인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이 잔혹한 분리와 배제의 카테고리는 변화하기 힘들다. 생각해봐라. 여성가족부 장관을 남자가 하면 누가 이해하겠나."
 

2008.10.15 09:25 ⓒ 2008 OhmyNews 이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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