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회위원회 노사관계 2012-08-10   1594

[언론기획]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7> 해고가 살인인 이유

 

참여연대와 프레시안은 6월 마지막 주부터 8월 말까지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라는 주제로 릴레이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번 칼럼기획은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각계각층의 사회 인사들이 다각적인 시선에서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칼럼은 매주 목요일마다 연재됩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곱번째 칼럼은 오늘(8/10) 연재되었습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께서 게재하셨습니다.

본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경영상 정리해고 비용, 왜 노동자가 짊어지나?

 

 

< 칼럼 전문 >

 

[쌍용차, ‘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해고가 살인인 이유

경영상 정리해고 비용, 왜 노동자가 짊어지나?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2009년 5월에 시작한 파업은 77일 만에 공권력으로 끝이 났다. 무려 두 달을 훌쩍 넘긴 파업을 끝내면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합의문을 작성했다.

 

그 합의의 핵심에는 파업의 주요한 이슈가 포함되었다: ‘농성 노동자 가운데 48%는 무급휴직과 영업직 전직으로, 52%는 희망퇴직 및 분사를 통해 감원하며 1년 경과 후 무급 휴직자는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근무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영업직으로 전직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영업직군을 신설하고 직무교육을 수행한다. 또한 무급휴직, 영업직 전직, 희망퇴직 등을 신청한 근로자들은 경영상태가 호전되어 신규인력 수요가 발생하는 경우 공평하게 복귀 또는 채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그동안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2009년 5월의 노사합의 이후 3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단 1명의 무급휴직자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9년 3만 5천대였던 쌍용자동차의 판매량이 2011년 11만 3000여대로 3배 넘게 늘었지만 휴직 및 희망퇴직자들의 원직 소환 소식은 전무하다. 그 사이 ‘의자놀이’에서 탈락한 채 길거리를 헤매던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그 가족 2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고된 조합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조합원 94명이 형사 처벌을 받은데 이어 수십 건의 민사소송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해고가 살인’라는 말에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성이 집약되어 있다. 비슷한 경제규모의 그 어떤 나라들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있어서만큼 일자리가 생계에 절대적인 곳은 드물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사회복지의 결핍이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 가운데 사회임금(교육, 의료, 주택 등 사회적으로 공급되는 재화)의 비중은 2000년대 중반을 기준으로 8%를 넘지 않는다. OECD 평균 사회임금은 32% 수준이며 사회임금 비중이 가장 높은 스웨덴의 경우 48.5%에 이른다. 요컨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복지 가운데 사회적으로 공급되는 비중은 매우 낮으며 대부분을 기업과 가족이 제공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기업복지의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따라서 취업 여부는 개인의 후생복지를 결정하는 관건이며 임금은 생계와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아울러 고정비용으로 묶여 있는 주택 대출이자, 자녀 학자금 등은 현재를 유보할 수 없는 조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잃는 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는 곧 생명이다.

 

다음으로 고용이 중요해지는 맥락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발달시켜 온 임금과 고용의 연계시스템에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구제금융으로부터 비롯된 노동시장의 제도적 개편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내부노동시장에 기반한 노동복지 시스템을 발달시켜 왔다. 내부노동시장 시스템에 기반한 고용구조는 기업특수적 기능(firm-specific skill)과 기업간 노동력 이동의 제한을 기반으로 발달했으며 이러한 조건에 기초해 근로자들의 임금은 특정 시기를 기준으로 결정되기 보다는 입직시점(Port of Entry)부터 정년까지의 임금합계(생애임금)에 기초해 책정되었다.

 

이렇게 결정된 생애임금이 고용의 전기간 동안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분되는 방식이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 결정 메커니즘이었으며 이는 근로자들의 장기고용을 전제로 제도화 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소득과 소비, 그리고 자산의 배분 등을 장기고용과 생애임금을 전제로 설계했다. 요컨대, 우리나라 기업의 고용관계는 노동자들의 삶의 위험이 특정 기업에 종속되는 일종의 ‘인질모형(hostage model: Williamson)’에 기초해 발달해 왔으며 기업들은 이러한 고용 및 임금 메커니즘에 기반해 성장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시장조건을 이유로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처분하는 것은 그동안 노사가 유지해 왔던 암묵적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며 근로자들의 입장에서 이는 치명적 배신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근로자들에게 고용이 중요한 이유는 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이다. 기업은 비용조절의 방법으로서 자유로운 해고와 고용조정을 경쟁력 유지의 핵심으로 주장하지만 이러한 조정의 방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동력 매매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완전경쟁시장이 존재해야 하며 고용계약이 이러한 경쟁시장을 통해서 성사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경쟁시장이 노동력 거래의 중심적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즉, 다수의 노동력 거래가 이러한 시장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노동력 교환의 주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근로자들의 경우 외부 취업기회가 적고 타 기업으로의 이동이 어렵다. 특히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대기업의 고용관계는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며 근로자의 고용조건은 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업내부의 교섭 등으로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 사람을 가두어 버리는 것과 같다.

 

요컨대, 취약한 사회복지, 임금과 고용의 교환 그리고 불완전 노동시장 조건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근로자들에게 해고는 삶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이상의 3가지 특성과 그에 기반한 고용시스템의 구축이 생산성 향상과 기업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 되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분별 한 해고는 장기적 차원에서 성장의 잠재능력을 훼손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경기가 어려운 국면에서 전통적으로 유럽과 일본의 기업들은 비용 관리 수단으로서의 노동자 해고를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다. 상대적으로 일거리가 많은 부서로 배치전환을 하거나 기업 내 다른 직종으로 일자리를 옮겨 고용을 유지한다. 그 마저도 어려운 경우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며 해고는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다.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독일의 폭스바겐과 BMW는 경기 불황기에 대비한 완충 시스템으로써 수백 가지의 노동시간을 통한 고용 조정 모델을 구축하고 있으며 근로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구비하고 있다. 시장형 고용조정 메커니즘이 가장 발달한 미국 기업들의 경우에도 대량해고는 재고용을 전제로 선택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해고의 방식도 엄격한 기준과 규칙에 따라 예측 가능한 방법으로 제도화 되어있다. 이러한 고용조정의 메커니즘은 미국 경제의 역사적 호황기이자 안정적 번영의 시기였던 ‘교섭경제(bargained economy)’ 시대에 근로자들이 직면할 수 있는 리스크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안전망들이었다.

 

이상의 사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고용조정 제도와 해고를 중심으로 한 기업의 고용관리 메커니즘은 매우 폭력적이며 무책임하다. 근로자들에게 책임이 귀속되지 않는 경영상의 이유로 선택되는 소위 정리해고의 비용은 전부 근로자들의 몫이다. 그 비용의 끝이 근로자들의 삶이다. 그러나 노동력의 건강한 재생산이 담보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기업이 유지되기 어렵다. 기업이 고용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고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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