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6월 2014-06-03   1087

[특집]얘들아, 가만히 있지 마

특집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얘들아, 가만히 있지 마

 

박현희고등학교 교사

 

 

참여사회 2014년 6월호

 

세월호로 인해 절절하게 깨닫는 것이 있다면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걸 가르쳐야겠다. “가만히 있지 마, 얘들아.” 가만히 있지 않으려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남에게 결정을 맡겨두고 가만히 있으면서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은 결국 재난을 부른다. 이상하지 않은가?

 

전원 구출의 터무니없는 오보를 우리는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승객들은 모두 구명조끼를 입거나 구명보트를 탄 채로 바다에 둥둥 떠 있고, 헬기나 배가 와서 이들을 하나하나 건져내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던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는 우리에게 엄청난 재난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기적 같은 생환을 보여준다. 화산이 폭발해도, 비행기가 폭발해도, 대기권 바깥의 우주에서 우주선이 고장 나도 주인공은 살아남았다. 이후 우리 앞에 전개된 현실은 이 상상이 얼마나 근거 없는 낙관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은 얼마나 선택적으로 발달해 왔는가. 우리는 하늘에서 지상의 목표를 정확하게 조준하는 무기나 까마득히 먼 곳에서 날아오는 적의 비행물체를 감지할 수 있는 레이더가 개발된 지는 오래 되었지만, 물에 빠진 배에서 사람을 구해낼 수 있는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아야만 했다. 우리가 믿었던 기술의 발달은, 실은 자본과 정치가 필요로 하는 기술의 발달이었을 뿐인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 기술이 어디에 복무하는지 성찰하지 못한 채 연구를 계속하고, 어떤 연구를 해야 정말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되는지 물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학을 과학자의 전문 영역이니 과학자에게 맡겨두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그동안 전문가를 키워내는 교육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인문계와 실업계를 나누고, 문과와 이과를 나누고, 전공을 세분했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니 복잡한 문제들은 관료나 정치가들에게 맡겼다. 그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그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배에 관해서는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전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지시에 따랐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말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내 생각이 옳은 것인지 믿음이 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일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싶어진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면서 만들어진 문명과 시스템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비극이 어디 세월호에만 있는가. 용산에도 있고, 쌍용자동차에도 있고, 밀양에도 있고, 강정에도 있다. 우리의 삶은 총체적이니 우리가 마주치고 판단해야 할 문제도 총체적일 수밖에 없다. 과학자에게도 역사 공부가 필요하고, 사회학 전공자도 과학을 알아야 한다.

 

몸도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한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움직일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 보았는가? 나는 그 높은 배에서 뛰어내리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뛰어내릴 수 있었을까? 그 배에 탔던 아이들은 할 수 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느라 몸을 쓰는 것을 잊어버렸다. 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몸,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몸, 이게 움직일 줄 아는 몸의 힘이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물 밖으로 끌어올린 것은 기계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잠수를 감행한 잠수부들이었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는 원래 가만히 있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질서와 훈육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꼼짝 못하게 하기 전에는 말이다.

 

박현희

바다에서 조난당해 벵골호랑이와 함께 227일을 견디고 구조된 소년의 이야기, 소설 <파이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이 시대를 끝내 살아남을 실마리라도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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