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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14년 12월
  • 2014.12.01
  • 1808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


김미경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참여사회 2014년 12월호(통권 217호)

 

그녀가 쓴 책 『브루클린 오후 2시』를 편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내가 몸으로 실천하지 못할 일은 말하지 말자, 생각하면 말로 하지 말고 실천하자라는 강박증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거대 담론들을 내 입으로 얘기하는 것보다 개인적인 일상사와 연결해 궁리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걸 더 즐겼다. 그러니 내 삶은 늘 더뎠다.’
그녀가 표현한 그대로 그녀의 삶은 더디다. 그러나 더디게 성장했기에 그녀의 삶은 밑동부터 단단하다. 그녀와의 만남은 속까지 알차게 여문 가을열매 한 알을 이 사이에 넣고 씹을 때의 느낌, 딱 그랬다.

 

1억 년 후의 화가
국어교사, 여성문화운동가, ‘여성신문’ 편집장, ‘한겨레신문’ 기자, 뉴욕한국문화원 리셉셔니스트(안내원),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그리고 화가. 화려한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녀의 현업은 생뚱맞게도 ‘화가’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 그녀의 그림들을 먼저 만나고 그 그림 때문에 친구가 된 내 입장에서 보자면 되레 그녀의 전직들이 더 생뚱맞게 느껴진다.


“올 2월에 아름다운재단을 그만 두었어요. 지금은 말 그대로 전업화가예요. 원래부터 그림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구요. 한겨레신문 기자 시절 박재동 화백하고 사내동호회 ‘한겨레미술반’에서 가끔씩 그림을 그리는 정도였죠. 전남편이 미술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미국에 있을 때 한국문화원에서 일하며 그림을 많이 접하기도 해서 이래저래 그림과 화가들에 둘러 싸여 살긴 했는데 정작 내가 화가가 되리라 진지하게 맘먹은 적은 없었어요. 그냥 막연히 다음 생애, 농담처럼 1억 년 후엔 나도 화가가 되리라 그랬었죠.”


‘낯선 곳에서 시작한 두 번째 삶’이란 부제가 달린 7년 동안의 미국생활. 시민단체의 무거운 자리를 맡아 다시 돌아오게 된 한국. 그리고 옥상에서 단박에 날아가 버린 1억 년.


“어느 날 아름다운재단 옥상에 올라갔는데, 그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멀리 인왕산과 그 아래로 오목조목 들어앉은 한옥들의 지붕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어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무작정 그리기 시작했죠.”


숨을 멎게 하는 풍경. 그 풍경 하나에 빼앗긴 마음은 곧 회오리가 되어 그녀의 삶을 휘젓기 시작했다. 2012년 봄, 우연히 아카데미 느티나무 드로잉반 전시회에 갔던 날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전시된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수강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를 본 순간, 내 그림으로 엽서를 만들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랬죠.”
그길로 드로잉반에 수강신청을 하고 수업료를 깎아준다는 말에 참여연대에 회원 가입도 했다. 재단 일을 하면서도 주말엔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 일과 그림 사이에서 쉼이 없는 생활을 하다 쓰러진 적도 있었다.


“재단 일도 왕성하게 하려면 퇴근 이후에도 사람들 만나고 술도 마시고 후배들도 살뜰히 챙기고 해야 하는데, 시간이 나면 자꾸 그림만 그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두 개의 욕망이 부딪히니까, 일은 일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양쪽 영역에 대한 죄책감만 늘어가고. 재단 일과 그림을 병행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그림 그리는 사무총장’이 되기로 결심했죠.”


재단 후원자들에게 그림을 그려 선물하기도 하고, 캠페인이 벌어지면 그와 관련된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했다. 보육원 아이들의 식비를 현실화하자는 ‘나는 불평등한 식판에 반대합니다’란 캠페인 때는 식판의 밥알들을 하나하나 그려 넣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과 그림 사이의 절충은 실패했다.

 

참여사회 2014년 12월호(통권 217호)

화가 김미경이 그린 서촌옥상도


동네를 그리다

“나름 일과 그림을 병행해보려고 노력했는데도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어요. 급기야는 원형탈모까지 생기고 자궁에도 문제가 생겨서 수술까지 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죠. 일을 그만 둘 때 왜 걱정이 안 됐겠어요? 현금을 쌓아놓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당장 월급이 없으면 생활이 힘들어질 게 뻔한데. 그래도 몸이 너무 아프니까 벼랑 밑으로 뛰어내리게 되더라구요. 근데 희한하게 지금은 하나도 안 아파요.”


질문에 답을 하면서도 그녀는 틈틈이 자신의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것, 파일에 차곡차곡 정리해둔 것, 수첩 한쪽에 스케치해둔 것들이 줄줄이 불려 나온다. 이건 언제 그린 거고, 이건 누구한테 주려고 그린 거고, 이건 누구네 옥상에서 그린 거고……. 양 볼에 홍조를 띠어가며 연방 설명을 늘어놓는 그녀를 바라본다. 온몸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가리키던 길. 그 길에 서 있는 지금, 그녀는 행복하다.


“돌아보면 대학시절에도, 사회에 나와 일을 하면서도 늘 사회적 자아에 짓눌러서 지냈던 것 같아요. 사회변혁을 위해, 사회적 자아를 위해 개인적 자아는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거죠. 그런 삶에 익숙해져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도 못했는데, 미국에서의 삶이 그 벽을 무너뜨린 거죠.”


낯선 타국에서 그녀는 더 이상 사회운동가도 기자도 아니었다. 사회적 자아가 왕성하게 활동할 공간도 없었고 그럴 필요 또한 없었다. 바로 그 순간, 평생 내밀한 곳에서 숨죽이고 있던 목소리 하나가 말을 걸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를 따라 그녀는 화가가 되었다.


“처음엔 뭘 그려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보자, 그렇게 옥상에서, 길거리에서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 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와, 똑같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수억 개의 사물들 중에서 결국 내가 선택한 것들이 그림으로 옮겨지는 거죠.”


꿈꾸던 대로 그녀의 그림들은 엽서가 되었다. 오래된 도시의 풍경들 앞에 소박한 제목이 달린다. ‘백 살 할머니의 집’, ‘비 오는 날’, ‘여름’, ‘아현동 기타’……. 그녀의 눈과 손을 통해 윤곽이 잡히고 색이 입혀진 세상을 바라보며 난 작은 종이 몇 장으로도 충만해질 수 있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한번은 아파트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경찰에게 쫓겨난 적도 있어요. 옥상에서 이상한 사람이 지도를 그리고 있다고 주민이 신고를 했대요. 청와대 근처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했고요. 옥상에서, 길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왜 그렇게 이상한 걸까 생각해 보니 요즘은 동네를 그린다거나 길가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기 때문인 거 같아요. 다들 작업실 같은데서 그리니까. 제 그림이 이 시대에 의미가 있다면 그런 부분이 아닐까 해요. 동네의 풍경, 옥상의 풍경을 그리는 것, 우리에게 익숙한 삶을 그리는 것…….”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을 통해 풍경을 바라본다. 그녀가 그림으로 옮긴 풍경 안에 무언가를 담았다면 그것은 이전부터 그녀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하얀 도화지 위로 구불거리며 지나는 선들, 그 위에 담긴 화가의 마음 한 자락을 읽는다. 손끝부터 따뜻해져 온다.

 

참여사회 2014년 12월호(통권 217호)

 

무엇이 나의 존엄을 지켜주는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그리고 가난해지는 것을 감내할 용기, 이 두 가지가 중요하죠. 대부분은 당장 일을 때려 친다고 해서 곧바로 절대적인 가난에 맞닥뜨리진 않아요. 현금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주위에 유무형의 여러 자산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용기를 내는 게 더 쉽지 않겠어요? 제 주변만 봐도 저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저보다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인 경우가 더 많아요.”


지금보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에 대한 공포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어차피 그림만 그리며 먹고 살 수는 없는 거고, 저도 생계를 위해서 틈틈이 교정도 보고 룸메이트도 들이고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래요. 아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무총장으로 있던 근처 빵집에서 일하는 게 좀 그렇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미국에 있을 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괜찮아요.”


17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가게 된 데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지만 편집장을 맡고 있던 잡지가 잘 안 되면서 사표를 낸 게 결정적이었다. 패배자가 되어 쫓겨 가는 것만 같았던 그 시절,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존엄’에 대해 물었다.


‘무엇이 나의 존엄성을 지켜주는가? 리셉셔니스트 공간에 앉아 전화를 받으며, 청소를 하며, 커피를 나르며 나는 이 생각을 참 많이도 했다. 나는 무엇인가? 나의 존엄은 어디에서 지켜지는가? 리셉셔니스트 미경이는 과연 존엄한가?’


이 뜨거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녀의 책 『브루클린 오후 2시』에 고백처럼 쓰여 있다.
‘이제 새롭게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천둥벌거숭이로도 존엄할 수 있는 내 속 존엄성의 알갱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자가 아니어도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신문사에 다니지 않아도 늘 세상사를 기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픔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새로 시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아이에게 평소 무슨 이야기를 해주냐고 묻자 그녀는 별로 해준 게 없다고 했다. 그저 엄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기 나름대로 배웠을 거라고만 했다. 그녀의 대답에 가슴에 새겨두었던 문장 하나가 생각났다. ‘엄마가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은 자신의 직관에 대한 믿음이다.’


“세상일의 결정적인 순간에 정치적으로 용감하지는 못 했지만 내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는 용감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일상 속에서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했고요. 저는 적어도 말이 삶을 앞지르는 사람으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
토요일 아침. 모처럼 두 딸 아이와 함께 느긋한 아침을 먹는다. 밀렸던 얘기들이 오가는 시간, 아이들이 이번에는 어떤 사람하고 인터뷰를 했냐고 묻는다. 김미경, 그녀는 어떤 사람인가.

 

‘여성woman의 어원은 늑대wolf에서 유래했다. 여성과 늑대는 선천적으로 사랑이 넘치고 적응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 그러나 이 둘은 수세기 동안 약탈당하고 매장돼 왔다. 늑대가 미개지를 파괴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어온 것처럼, 여성 또한 그 본능을 말살하고 정신 속의 밀림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중에서

 

여성 안에 숨겨진 야성의 다른 이름 ‘늑대.’ 대부분의 사회는 여자아이에게 일정한 모습을 기대하고 가족 혹은 집단의 가치관을 따르며 순종적으로 자라길 바란다. 촘촘히 짜인 세상의 그물에 걸려 여성의 야성은 그렇게 사그라진다. 그녀가 말하던 ‘개인적 자아’는 아마도 늑대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용기를 냈던 그녀. 삶의 굽이굽이마다 그녀가 토해냈을 늑대의 깊은 울음. 그리고 그렇게 늑대의 호흡으로 그려진 그녀의 그림들.


그녀가 누구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녀는 ‘신성한 어머니 늑대의 완전한 힘을 물려받아 자신 안에 갇혀 있던 늑대 같은 원초적 에너지를 해방시킨, 반쪽 사람이 아닌 존엄한 늑대족’의 후예라고, 나는 그렇게 답할 것이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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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경씨는 딸이 둘인거죠? '그녀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이 문장 다다음 문단에 바로 '두 딸아이'가 나와서 헷갈려요. 소개보니 알겠네요!! 

  • profile
    아 미갱이가 기사나왔다고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글이 이거였군요. 어쩌면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서 한 사람의 본연을 꽤뚫어 보셨는지. 미갱이도 이런분을 만난게 복이고 모라고요? 호모아줌마데스? 이분도 취재원 제대로 만나셨네...사고(?) 제대로 쳤네요. 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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