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2월 2014-12-01   6161

[여는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참여사회 2014년 12월호(통권 217호)

 

미세권력을 묻는다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의 『성의 정치학』은 그녀가 미국의 대학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글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다. 1970년에 출간된 이 책은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의 사상적 원조가 되었고, 급기야 밀레트의 얼굴은 미국의 주간지 타임Time의 표지로 다루어질 정도가 되었다. 『성의 정치학』이 이렇게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것은 그녀의 도발적인 문제제기 때문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새로운 사조의 탄생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성의 정치학』은 헨리 밀러의 유명한 소설 『섹서스』에 실린 정사장면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를 통해서 밀레트는 사랑을 매개로 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관계에서도 어떻게 미시권력이 작동하는가를 제시하려 하였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 맺음에서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었다. 즉 남성은 지시하고, 여성은 이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1차대전 이후 많은 국가에서 여성은 교육을 받을 권리, 소송을 할 수 있는 법적 권리, 노동할 수 있는 권리, 경제적 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정권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은 여전히 해방되지 못하였는가를 질문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일상생활, 심성, 행동방식, 관행 등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미시권력 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여성의 진정한 해방은 가능하지 않다는 정언이었다.

 

급진적 페미니즘은 성차별의 종식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성성, 사랑의 개념, 결혼, 가족제도가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성은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사랑은 자신의 무력한 상황을 간파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여성이 만든 자기방어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 중 보다 급진적은 그룹은 이성애적인 성제도가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고 보아, 대안으로 동성애를 표방하고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위계구조가 없는 조직을 추구했고, 그 일환으로 조직은 15~20명을 넘지 않아야 하고, 공식적인 직책을 추첨으로 결정하고, 경험이 없는 회원에게도 직위가 골고루 배분되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지향하였다. 서구에서 68학생운동에서 70, 80년대 신사회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급진적 페미니즘이 내세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고, 정치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는 서구에서 새 여성운동이 일어나는 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신 사회운동 전반에 ‘사생활의 식민지화’ 문제를 제기하는 동력이 되었다. 물론 이들의 실험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근본주의적 문제제기나 실천이 그들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거나,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상실하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너 자신을 돌아보라”

 

세월호의 비극이 터졌을 때, 나 역시 울고, 분노하고, 싸워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에게 이제 진실로 필요한 것은 문화혁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을 어찌 시작할지는 나도 암중모색중이다. 나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말 잘 버텨냈고, 잘 싸웠다고 경탄하고 있다. 이를 지원해온 우리 시민운동의 힘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법 제정이후 서서히 이 엄청난 사건을 잊어가고 있고, 그래서 ‘예전에 비해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는 개탄이 주변에서 들리기도 한다. 세월호의 비극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패의 고리와 구조적 모순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싸워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의 심성mentality이나 관행, 노동윤리 등을 둘러싼 자기비판과 대안 모색을 시도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서구의 68학생운동에서 등장하였던 앞의 구호는 우리에게 대안문화운동이나 일상생활의 혁명 그리고 운동의 도덕성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과 실험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는 정의롭게 산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도덕성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난 11월 15일 운영위원회에서 성차별문제를 참여연대 내규에 추가하기로 하였다.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인권침해에도 우리가 더욱 감수성을 갖자는 의미일 것이다. 나아가서 한국처럼 일상생활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감수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명품 열풍, 극단적으로 상업화된 여가문화, 왜곡된 결혼문화나 장례문화, 패거리문화 등. 물론 참여연대는 문화운동을 담당하는 단위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도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개혁과 실천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할 전환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성(gender) 평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로 일했다. 참여연대에서도 젠더문제와 ‘사적 세계에서의 혁명’의 열기가 일어나기를 꿈꾸고 있다. 내 스스로도 우리 사회 ‘주류’의 심성을 가진 것이나 아닌지를 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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