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1월 2014-11-03   995

[경제] 조락

조락凋落

정태인 경제평론가,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창립 준비위원

상투적이긴 하지만 가을비 내리는 소리엔 ‘추적추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이 비 그치면 곧 잔뜩 움츠려야 할 겨울이 오겠구나……. 가히 조락의 계절이다. 계절이야 돌고 또 도는 것이니 머지않아 아지랑이가 춤출 날도 올 것이다. 낙엽과 아지랑이가 반복되면서 삶은 마지막을 향해 한발씩 나아간다. 계절도, 내 삶도 가을이다. 그래서일까? 과거를 되돌아보며 한탄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한숨 쉬는 일이 잦다. 

세계적 경기침체와 수출주도성장의 종언

15일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 기준금리를 전월대비 0.25%포인트 낮춘 2%로 결정했다. 돌이켜 보면 한은 기준금리는 2008년 8월 말 5.25%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비난받을 때 경제성장률은 5%대였고 부동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임기 초반 3%에서 5%까지 금리를 올렸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가 터지자 이명박 정부는 서너 달 동안 3.5%p를 내렸고 2009년 2월에는 사상 최저인 2%가 되었다. 이후 2011년 6월 3.25%로 오른 금리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계속 내려가서 사상 최저 금리에 다다랐다. ‘내가 해 봐서 다 아는’ CEO 출신 대통령도, ‘한강의 기적’을 후광으로 당선된 딸도 경제를 포기하는 걸 넘어 망치고 있다.

금리인하가 발표된 날, 한국은행은 2014년 경제 전망치도 슬그머니 끌어내렸다. 작년 말,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며 호언장담하던 3.9%는 어느새 3.5%로 내려갔다. 지난 7년간 내내 그랬듯이 이번에도 소비와 수출 전망에서 틀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년 ‘내년에는 낫겠지’라는 희망 섞인 전망이 나왔지만 세계는 여전히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아예 디플레이션Deflation,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 걱정이고 일본의 아베노믹스Abenomics,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경기부양정책는 불과 2년 만에 좌초한 듯하다. 그나마 회복세라는 미국도 자산가격의 널뛰기에 기대고 있는 형편이고 우리의 마지막 보루 중국은 이제 7%를 넘기기도 힘겨워 보인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신화였던 ‘수출주도성장’은 막을 내렸다. 최근 최경환 부총리가 고백했듯이 “과거에는 주가 상승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대 살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소비가 늘어날리 없다. ‘소득주도성장’이 마지막 희망이지만 기업은 이윤 저하를 이유로 바야흐로 실질임금을 마이너스로 만들 기세다.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모든 지표가 급락은 아니더라도 ‘조락’을 가리키고 있는 가운데 장기적인 흐름은 더욱 비관적이다. 세계 전체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 나아가서 기회의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지난 30년간의 ‘시장만능주의’는 결국 금융에 의한 거품경제였다. 전후 30년간의 경제성장 속에서 자리잡았던 ‘세습중산층피케티’가 사라지고 있다. 이들은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의 농민처럼 ‘전층적 하강분해’를 겪고 있다. 이들이 ‘승자독식’의 투기게임에서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남은 미련 때문인지 예컨대 한국의 경우 1%에만 해당하는 종부세에 반대하고 사교육 중지나 대학평준화에 반대한다. 

>불평등의 경제사회적 위기와 더불어 생태위기 역시 초읽기에 들어갔다. 실로 지난 200년간  유례없는 고성장은 고품질의 화석연료 때문에 가능했다. 바위에 틀어박힌 가스까지 꺼내 쓰고 나면 더 이상의 성장은커녕 생존조차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된다. 불평등을 바로잡는 사회경제적 개혁의 수 백 배, 아니 수천, 수 만 배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낙엽은 새싹으로 다시 태어난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로 보고 냉정하게 필요한 개혁을 제시해서 열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젊은이들이 희망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시장의 사고방식market mentality, 폴라니부터 버려야 한다. 백해무익의 경제학을 완전히 바꾸든지, 아니면 차라리 없애야 한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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