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0월 2014-09-29   1229

[특집] 은폐·왜곡·조작 만연한 군사법제도

은폐ㆍ왜곡조작

만연한 군사법제도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사회 2014년 10월호 (통권 215호)

‘진짜사나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그것은 잊기 위해 기억하기를 강요한다. 요즘 군대가 여전히 퇴행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혹은 그 아픈 기억들을 스스로 부정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은 방송되고 시청된다. 그리고 ‘맞아! 우리도 저랬었지’라는 체험의 ‘공유’ 속에 시청자들은 시민이기를 거부당한 자신의 군대시절을 낭만적인 추억으로 변형하고 그 비인간적 고통들을 자신의 무의식 영역으로 추방해 버린다. 

그래서 ‘진짜 사나이’는 한국 군대가 우리 사회에서 갈라파고스 섬임을 증언한다.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군대는 여전히 21세기의 문명에 전혀 와 닿지 못하는 고립된 섬이다. 혹은 ‘진짜 사나이’라는 TV프로그램과 같이 낭만이 넘치는 가상현실로 재생산될 때에만 대중들의 일상생활과 접속될 수 있는 이방인의 세계로 전락해 있다. 

인권보장과 법치가 실종된 군사법제도

이 퇴행의 섬에서는 인권의 보장과 법치의 실현, 혹은 권력의 통제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군사적 특수성(그들은 자신들의 전근대적 후진성을 이렇게 명명한다)이라는 미명하에 폭력은 군 기강으로, 인권침해는 일사불란함으로, 그리고 자의적 권력은 지휘권으로 포장된다. 아직도 히틀러시절의 특별 권력관계라는 도그마dogma,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에 집착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곧 군사적 특수성의 요체인 양 눈속임하고, 그에 대한 치외법권의 특혜를 요구한다.  

그러나 현재의 군사법제도는 이런 적폐에 철저하게 무능하고 또 무력하다. 군지휘관의 통제에 복종하는 부속기관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법의 통제대상이어야 할 지휘관이 군판사를 임명하고 상명하복의 지휘체계에 종속되는 장교가 심판관이 되어 재판부를 구성한다. 판결조차도 ‘확인조치권’을 가지는 지휘관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거기다 군검찰이나 헌병도 마찬가지의 상태다. 한마디로 지금의 군사법체계는 지휘관에 의한, 지휘관을 위한, 지휘관의 그것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파행 속에서 수많은 범죄와 비리와 부정들은 군의 비밀성과 특수성이라는 미명하에 은닉되거나 은폐되며, 어쩌다 드러난 것조차도 조작이나 왜곡되어 ‘진실이 아닌 가공된 진상’만이 유통된다. 그리고 이 와중에 군사법체계는 그 본질을 상실하게 된다.

군사법제도 개혁논의는 이렇게 고립된 채 야만의 폭력으로 죽어가는 섬에 문명의 연락선을 대려는 노력과 상통한다. 그것은 군인에게 시민권을 회복시켜주고 군의 모든 영역을 법률의 규율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인권보장과 법치의 실현, 권력의 분산과 통제라는 현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통치원리의 실천을 담보하고, 군사적 특수성이라는 허위의식에 대항하여 법의 우위와 인권의 지엄함을 선언하는 최선의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다. 

군사적 특수성보다 법치 실현이 우선돼야

법치 실현과 문민 통제는 개혁논의의 지도이념이 된다. 군사적 특수성이 아니라 법적 규율과 법적 정의가 군 기율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그 법의 운용은 군 지휘권에 예속되어 있는 군인이 아닌, 재판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민간인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책은 군사법원과 군검찰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모든 군사사건을 일반 검사가 수사, 기소하며 일반법원이 재판을 맡아 유·무죄를 판단하게끔 하면 된다. 여기서 군의 특수성은 핑계거리가 되지 못한다. 군의 특수성은 입법과정에서 고려할 사항이지 사법적인 판단의 과정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군사문제라고 해서 재판에 필요한 법 지식과 기술이 일반적인 경우와 특별히 다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이나 프랑스를 비롯한 상당수의 국가에서는 군사법원을 아예 설치하지 않는다. 

군사법원의 관할권 축소는 이보다 보수적인 차선책이다. 군사법원은 오직 군형법 위반 사건만 담당하게 하고 일반형법 위반사건은 일반법원에서 담당하게 하는 안이나, 제1심사건만 군사법원이 담당하고 항소심사건은 일반고등법원에서 처리하게 하는 안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적어도 과도기적 조치로서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는 방안들이다.

다만 이 경우 군사법원과 군검찰의 문민화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신분이 보장되고 독립성이 확보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선언하고 있다. 군사재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군판사와 군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할 방책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을 민간인으로 임명함으로써 군사적인 지휘권으로부터 독립하여 군사법의 업무를 담당하게끔 할 필요가 있다. 군사법을 총괄하는 법무감을 사법부의 추천에 의해 민간인으로 임명하는 영국이 모범적인 선례다.

이런 식으로 군사법을 문민화하게 되면 군사법원이 굳이 군 내부에 존재할 이유는 없어진다. 그것을 사법부 소속으로 하거나, 혹은 권력분립원칙 위반의 혐의는 있지만 법무부(혹은 한정된 조건하에서 국방부)소속으로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렇게 군사법원과 군 검찰이 군 지휘관의 관할권 밖으로 벗어나면, 현재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관할관제도나 심판관제도는 자연스레 폐지된다. 특히 군사법원에 대한 지휘자의 개념으로 구상되어 있는 관할관제도는 그 존재근거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단지 참심제도형사사건 등에서 일반인이 법관과 더불어 판결에 참여하는 제도 도입논의가 일게 되면 그 한 부분에서 군장교가 참심으로 참여하는 제도도 더불어 고려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군 개혁 ‘의지’ 

그 외에도 배심제 도입이나 판결문 공개, 양형기준의 확립 등과 같은 방안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영장 없는 구금을 금지하는 헌법명령에 반하여 군인 징벌제도로 이용되고 있는 영창제도의 폐지는 시급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군 개혁을 향한 우리의 의지다. 

그동안 우리는 민주화의 기치를 내세우며 수많은 개혁 작업에 매진해 왔다. 그럼에도 인권과 민주와 평화의 요청이 군부대의 철조망 너머에서는 한 장의 종이보다도 가벼운 것이 되어 있음을 드러낸 최근의 사건은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한다.

실제 군 내부의 폭력과 가혹행위와 그에서 파생되는 각종의 사건·사고들은 전근대적인 가부장적·권위주의적 군사문화가 여전히 잔존하면서, 상명하복식 지휘권이라는 명분하에 각종 기득권들이 군 내부를 장악해 왔던 군사체제의 파행성에서 연유한다. 그러기에 군사법체계 개혁은 군 개혁의 작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민주적이고 인권 친화적인 군 체계가 이뤄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그 자체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다만 개혁에 대해 완강히 저항하는 군 수뇌부의 행태로 인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 지점이 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의지의 지속성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 그리고 실천을 향한 의지가 지금까지 군이나 정치권이 보여 왔던 ‘현실 추수주의’를 뚫고 나갈 때 더 이상 윤일병 사건과 같은 불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진정한 군 개혁의 기치를 일구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희

헌법을 전공하면서 민주적 법치의 실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법체제 개혁을 그 중심과제의 하나로 설정하고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와 함께 현실적인 실천방안들을 모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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