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8월 2014-08-04   1047

[듣자] 모차르트가 가볍다고? 우리가 무거운 게 아닐까?

모차르트가 가볍다고?

우리가 무거운 게 아닐까?

 

이채훈 MBC 해직 PD

 

한때 클래식 음악은 ‘생존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겐 너무 한가한 여흥’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MBC 노동조합 초기였던 80년대 말,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죄책감 비슷한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할 수 없었다. 책에서 ‘칼 마르크스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좋아했다’, ‘북한에서는 쇼팽을 진보적인 음악가로 높이 평가한다’와 같은 대목이 눈에 띄면 “어, 이상하다?”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뿔 달린 사람이 어떻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 수 있을까? 하긴, 나도 뿔이 두 개 달려 있던 시절이었다.

 

이 편견에서 나를 구해 준 사람은 노동자문화운동연합 의장을 맡고 있던 시인 김정환 형이었다. 어느 날, 정환 형의 집에 방문한 일이 있다. 당산동 집 앞에 도착하니 어디선가 모차르트 음악이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다른 집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지 귀를 의심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사방을 꽉 채운 소리는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 G장조>였다. “아니, 노동자문화운동 하시는 분이 모차르트가 웬 말이요?”하고 물으니, 정환 형이 “노동자가 모차르트 들으면 안 되냐? 좋은 건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 나는 정환 형의 뻔뻔함(?)을 존경하게 됐고, 클래식에 대한 죄책감에서 조금씩 해방될 수 있었다.

 

25년이 흘렀다. 변하지 않은 것은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이고 변한 것은 클래식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다. 무한경쟁의 삭막한 세상에서 음악은 슬픈 사람을 위로하고 지친 영혼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클래식을 부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태도는 혐오스럽다. 불통의 나날, 기득권의 좁은 서클 안에서 현실을 외면하며 어떻게 음악의 선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음악계의 부조리를 나 몰라라 하면서 기계처럼 연주하는 음악에 인간을 담을 수 있을까? 인간 사랑이 가득한 천재 지휘자 구자범이 음악계를 떠났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그릇된 현실을 외면한 채 태연히 음악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장조 K.216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Mozart Violin Concerto 3을 검색하세요.

 

모차르트 음악은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더욱 강하게 위안을 속삭인다. 끝없이 상냥한 웃음을 건네며 삶을 사랑하라고 일러준다. 1악장 알레그로, 오케스트라가 첫 주제를 연주하고 모든 현악기가 도약하는 대목부터 행복감을 느낀다. 오보에와 호른이 연주하는 제2주제에 이어 순결한 현악기의 노래가 이어진다. 2악장 아다지오는 엄마 품처럼 따뜻하다. 2006년 다큐멘터리 <모차르트, 천 번의 입맞춤>에서 모차르트의 성장 과정을 묘사할 때 이 선율을 사용했는데, 평생 어린이처럼 순수했던 모차르트의 모습에 잘 어울렸다. 단조로 바뀌는 중간 부분은 ‘천사의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3악장 론도 알레그로는 천진한 어린이가 뛰노는 모습이다. 주제가 되풀이 나오고 사이사이 재미있는 악절들이 삽입된다. 현악 파트의 피치카토 위에서 솔로가 노래하는 대목이 매혹적이다. 아예 귀여운 동요가 나오는 대목도 있다. “♬도.도.도.레.미.미.미.도.레.레.레.시.도시도레도!♬”는 “♬밥.상.위.에.젓.가.락.이.나?란히나?란히나.란.히!♬”, 초등학교 1학년 때 배웠던 노래랑 거의 똑같다.

 

모차르트 음악이 너무 가벼워서 별로라는 분들이 무척 많다.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선율이 나오니 그럴 만도 하다. 한 친구의 고백, “말러 정도는 들어야 뭔가 있어 보이지, 모차르트는 좀…….” 날마다 경쟁하는 지식인 사회에서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바보 취급을 받기 딱 좋다는 것이다. MBC 대선배로 사장까지 하신 이긍희 화백님, “모차르트는 너무 가볍고, 베토벤은 다들 위대하다 하니 덩달아 좋아하기 싫고…….” 사람 얼굴이 다르듯 음악 취향도 모두 다르니 존중해야겠지만, 모차르트 음악이 꼭 가벼운 건 아닌데……. 

 

진회숙의 책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에 인용된 블루칼라 노동자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 모차르트 음악의 진가를 알게 됐다고 한다. 매일 힘겨운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모차르트 음악이 가당키나 할까? 진회숙은 말했다. “육체를 움직이는 노동은 삶의 본질이다. 노동을 하면서 겪는 육체의 고단함은 정직하고 본질적인 고통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바로 이 본질에 접근한다. 우리가 모차르트 음악을 가볍다고 여기는 것은 그 동안 비본질적인 것을 과도하게 짊어진 과체중의 음악에 짓눌렸기 때문이 아닐까. 이 모든 것을 가뿐하게 벗어던진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 때문에 ‘가벼움’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라울뒤피 <모짜르트 오마쥬> (1915)

놀라운 통찰이다. ‘모차르트 음악이 가볍지 않다’고 주장하는 대신 ‘우리가 너무 무겁다’는 한 마디로 설명한 것이다. 진회숙은 모차르트를 사랑한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 1877~1953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뒤피의 그림과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공통되게 발견하는 ‘산뜻함’을 예찬한다. 모차르트는 이 산뜻함으로 세상의 혼탁함을 헤쳐 나가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과부하의 고민을 벗어던지고 아름다운 세상에 눈뜨라고 속삭이는 게 아닐까? 

 

이채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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