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8월 2014-08-04   653

[읽자] 어쩌면 교황을 만날 수도 있겠습니다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8월의 책

이달 중순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에 온다. 지난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간 이후 25년 만의 교황 방한이라, 가톨릭을 넘어 사회문화 전반에서 관심이 높다. 게다가 이번 교황은 첫 예수회 출신이자 첫 남미 출신 교황으로 즉위 때부터 화제를 모았고, 이후에도 청빈하고 소탈한 개혁 교황의 행보로 종교계를 넘어 폭넓은 인기와 지지를 얻고 있다. 출판계에서도 때맞춰 관련한 책이 줄지어 나왔는데, 대체로 교황의 행적을 기록하거나 그가 했던 말을 담아낸 정도라, 그가 한국을 찾는 의미를 생각해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아직 교황이 다녀가지도 않았는데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실제로 교황을 만날 기회는 소수에게만 주어질 테니, 이런저런 상상을 미리 해본다고 나쁠 건 없지 않겠는가. 혹시 아는가. 이런 준비 끝에 정말로 교황을 만나게 될지.

신을 믿지 않는 자, 교황을 만나다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 / 프란치스코 교황·에우제니오 스칼파리 지음/ 바다출판사

교황을 만나기 전에 읽어야 할 첫 책은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교황의 편지』다. 2013년 9월 11일, 이탈리아의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에 교황이 직접 보낸 편지가 실렸다. <라 레푸블리카>의 창립자 스칼파리가 같은 지면에 두 차례에 걸쳐 올린 질문에 대해 교황이 직접 답변을 보내온 것이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교황은 스칼파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권했고, 둘은 교황의 거처인 산타 마르타 관의 작은 방에서 만나 신과 믿음, 종교와 세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지식인과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교황의 대화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큰 관심이 쏠렸고, 둘 사이에 오간 편지와 대화의 내용을 두고 언론인, 철학자, 종교인 등 각계각층에서 논쟁이 이어졌다. 이 책은 그 전 과정을 차례로 담았다.

벌어진 상황 자체가 워낙 놀라운 일이라 흥미를 끄는데, 본론에 들어가면 더욱 놀라게 된다. 우선 교황의 유머인데, 둘이 만나자마자 교황은 “당신에 대해 잘 아는 제 동료 중 한 사람이 말하길, 당신이 저를 개종시키려 들 거라더군요”라 말하고, 스칼파리는 “그럴 리가 있나요. 제 친구들도 성하께서 저를 개종시키려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맞받는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교황은 열린 자세로 무신론자에게 신과 신앙에 대해 설명하는데, ‘무신론자도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무신론자에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죄라는 것은 자신의 양심에 역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심에 귀 기울이고 양심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가 선이나 악으로 느끼는 어떤 대상 앞에서 나름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우리의 행복이나 불행이 좌우됩니다.”라고 말하며 무신론자의 양심의 가치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여준다. 대화에 나선 교황의 태도, 대화 내용에서 보여준 교황의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말이 아닌 실천의 무게와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된다.

교황이 다녀간 자리, 무엇이 남을까

참여사회 2014년 8월호 (통권 213호)

교황과 나 – 개혁가 프란치스코와 한국 / 김근수 지음 / 메디치미디어

<교황과 나>는 최근 출간된 책 가운데 교황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유일한 책이지만, 개혁 교황 탄생의 의미와 가톨릭교회의 역사, 교회와 정치, 사회의 관계까지 폭넓게 다룬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 김근수는 해방신학자로 교황처럼(?)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했다. 제목처럼 교황과 나의 관계, 다시 말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독자들이 교황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인간은 하느님과도 독대하는 존재인데, 왜 교황과는 단독으로 만나지 못하느냐는 도발적인 물음을 던지며, 예수를 통해 하느님과 대화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확인하고 강조한다. 이는 비단 종교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교회 민주화’, ‘종교 민주화’라는 종교와 사회의 관계까지 함께 고민한 결과라 하겠다. 게다가 지난 6월에 로마, 아시시 등을 다녀와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달라진 현지의 분위기와 상황까지 한데 담아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4장 <한국 사회와 종교에 남은 선택지>다. 개혁 교황을 선출하며 오랜 기간 쌓여온 구조적인 문제를 솔직히 드러내고 차례로 해결하며, 종교와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동시에 가톨릭교회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교황청에 비해 한국 천주교회는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교회뿐 아니라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가난한 이와 함께하자고 말하고 실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비추어 볼 때, 한국정치는 같은 문제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한국사회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감동을 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이 멀지 않다는 걸 강조하는 해방신학의 가르침이 드러나는 분석이다. 

이 책은 “세속 권력자나 교회 권력자나 군림하려 들면 덕을 잃고, 온 정성으로 섬기면 외려 존경받는 세상임을 이 나라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배울 수 있다. 신앙은 상호적인 것임을 인정할 때 절대적인 것이 될 테니까.”라며 끝을 맺는다. 이제 곧 두 사람이 같은 땅에 서게 된다. 둘에게도 그리고 둘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어떤 변화가 시작되길 기대한다. 어쩌면 교황을 만나는 까닭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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