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2월 2014-12-01   755

[경제] FTA 공화국의 양다리 외교

FTA 공화국의
양다리 외교

정태인 경제평론가,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창립 준비위원

 

 

참여사회 2014년 12월호(통권 217호)

 

아펙APEC,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순방외교를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밤 공군 1호기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얼마나 자랑하고 싶은 게 있으면  서둘러 비행기 회견까지 자청했을까? 박대통령은 이번 순방의 성과로  한중 및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꼽았고 “외교라는 게 거의 경제”라며 예의 경제영토FTA를 맺은 나라들의 GDP 합 타령을 덧붙였다. 물론 국회가 비준을 늦추면 그만큼 손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중간 수준의 포괄적인 한중 FTA
지난 11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정상은 FTA 협상이 사실상 타결되었다고 공식선언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민관 공동연구를 시작한 한중 FTA가 2012년 5월 첫 번째 협상을 개시한 후 14차례 협상을 거쳐 30개월 만에 일단락된 것이다.

한중 FTA와 한·뉴질랜드 FTA, 양 쪽 다 공식 협정문이 발표되지 않았으며, 정부의 보도자료는 지극히 제한된 정보만 전하고 있다. 한·뉴질랜드 FTA의 공식 보도자료는 달랑 5쪽에 이를 부연 설명한 참고자료를 8쪽 덧붙었고, 그래도 너무 짧아 민망했는지 쟁점 중심으로 3쪽 짜리 참고자료를 추가했다. 한·중 FTA는 그나마 55쪽이지만 본문 15쪽에,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의 설명자료가 40쪽이었다.

기실 한국의 통상관료들은 농축산물 분야를 제외하고는 느긋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최근 어느 나라의 어떤 FTA에서도 가장 큰 쟁점이 되기 일쑤인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분야의 협상은 한미 FTA 때 이미 끝마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나 한미 FTA 수준을 넘는 조항이 들어가 있을까? 어떤 나라도 이 세 분야에서 미국보다 더 독한 요구를 할 수 없으며, 우리나라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미 법과 규칙을 다 바꿨으니 어느 새 이들 분야는 한국의 공격 무기가 되었다.

그 결과 요즘 한국의 FTA는 한국의 농축산물 시장과, 외국의 공산물시장이나 다른 분야를 견줘 타협점을 끌어내는 것이 되었다. 예컨대 한중 FTA의 경우 대중 수입 농수축산물 중 30%를 ‘양허협정을 맺은 나라끼리 최혜국 대우를 하여 관세율을 인하하는것 제외’하는 대신 중국의 자동차와 LCD, 철강의 관세를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 또 원래 공산품의 관세가 낮았던 뉴질랜드의 경우엔 워킹 홀리데이나 농축수산 훈련비자 등 서비스 분야의 소소한 이익을 얻어내는 식이다.

 

FTA 전략 부재와 양다리 외교의 한계
정부의 보도자료는 온통 우리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강조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미국, EU에 이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뉴질랜드 등 농업 최강국들과 줄줄이 FTA를 맺었으니 한국의 농축산업이 고사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더 큰 문제는 FTA를 경제 문제로만 보고 14번째 FTA, 73.45%의 경제영토 등 숫자 놀음에 골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아시아의 FTA, 특히 한중 FTA는 원래부터 외교안보적 요소가 훨씬 강한 협상이었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이후 아시아 미사일방어계획(MD미사일방어계획,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과 TPP를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니 중국 처지에서 한중 FTA는 대응 전략의 일환일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박대통령은 이번 순방에서 중국 주도의 FTAAP아시아태평양 연안 21개국으로 구성된 APEC이 최종 목표로 지향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와 미국 주도의 TPP에 모두 반색했다.

경제의 땅따먹기, 그리고 외교안보의 양다리가 한국의 전략인 셈인데 지뢰밭을 걷는 아슬아슬한 곡예일 수밖에 없다. 길은 하나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을 모두 두려워하는 러시아, 남북한, 일본, 아세안, 인도를 연결해서 반反패권 연합세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들 나라가 중심이 된다면, 전후 제3세계에 대해서 미국과 소련이 그랬듯이 미국과 중국도 중간국가들의 호의를 얻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 모든 나라에 이익이 되는 협력 프로그램을 제시해서 두 패권국가가 강요하는 지뢰를 제거하면 된다.

아서라. 말아라. 박대통령 앞에선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얻으려고 함일 뿐이다.

 

정태인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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