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1월 2014-01-09   1003

[놀자] 빨강머리 신부의 처절한 추위를 나는 법

빨강머리 신부의 처절한 추위를 나는 법 

 

이채훈 PD가 길잡이 하는 따뜻한 음악 이야기 
좋은 음악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가난한 사람들,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음악, 『참여사회』로 읽고 유튜브로 함께 들어요! 2014년 한 해, 클래식 음악을 통해 따뜻하게 소통하며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잔인한 바람, 소름 끼치는 어둠 속에서 추위에 떤다.
끊임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너무 추워서 이를 부딪친다.”             

– <사계> 중 ‘겨울’ 1악장에 비발디가 써 넣은 소네트

 

냉면은 원래 평안도, 함경도의 겨울 음식이다. 꽁꽁 얼어붙은 고드름을 따서 육수에 넣어 먹은 게 냉면의 유래라고 한다. 여름에 ‘이열치열’이 더위를 이기는 지혜라면, 겨울에 ‘이한치한以寒治寒’은 어떨까? 세상이 쌀쌀해서 마음마저 추워지는 요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이 잠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1악장, 처절한 추위다. 현악 합주는 덜덜 떠는 이미지를 묘사하고, 바이올린 솔로는 고통에 못 이겨 절규한다. 여기저기 불협화음이 많이 나오는데, 손과 뺨이 얼어붙어 뒤틀리는 모습이다. 바이올린 솔로가 목을 길게 빼고 따스한 햇살이 어디 있을까 사방을 둘러보지만, 곧 불협화음의 트레몰로?가 햇살을 삼켜버린다. 

 

“밖에는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따뜻한 난롯가에 둘러앉아
즐거웠던 나날들을 떠올린다.”                                

– ‘겨울’ 2악장에 비발디가 써 넣은 소네트

 

2악장, 추위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아늑한 난롯가 풍경이다. 겨울에 우리가 따뜻한 아랫목을 그리워하듯 서양 사람들은 난롯가를 그리워 하나보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참 정겹다. 모든 파트가 피치카토??로 반주하는데, 창밖에 떨어지는 빗소리라 해도 좋고, 화로에서 나무가 불타는 소리라 해도 좋다. 멜로디가 쉽고 단순해서 휘파람으로 불기 안성맞춤이다.   

 

참여사회 2014-01월호

‘빨강머리의 신부’ 안토니오 비발디 (1678~1741)
비발디 <사계> 중  ‘겨울’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Vivaldi Winter Sarah Chang’을 검색하세요! http://youtu.be/sRgaBqD2tmw

 

 

‘빨강머리의 신부prete rosso’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는 25살 때 사제 서품을 받고 베네치아의 산 피에타 성당에서 일했다. 그는 미사 도중 신도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서 작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만 미쳐 있었다고 한다. 신부님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방한 사람이 있었다. 법률가이자 극작가였던 카를로 골도니(1707~1793)의 말. “비발디는 바이올리니스트로는 만점, 작곡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 사제로서는 빵점이다.” 비발디는 재치 있게 응수했다. “골도니는 험담가로는 만점, 극작가로서는 그저 그런 편, 법률가로는 빵점이다.”   

당시 베네치아는 남녀 사이의 풍기문란이 아주 심했던 모양이다. 성당에 속한 피에타 자선원은 길에 버려진 사생아를 수천 명 수용하고 있었는데, 이들 중 엄선한 40명 안팎의 소녀들이 합주를 했다. 비발디의 협주곡을 제일 먼저 연주한 게 바로 이 소녀들이었던 것. 비발디는 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이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비교적 쉽게 음악을 썼다. 

금남의 집이었던 이 자선원에서 늘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오자 사람들은 매우 신비롭게 생각했다. 평소 쇠창살 속에 갇혀서 지낸 이 불우한 소녀들 중에는 애꾸도 있고, 천연두로 망가진 얼굴도 있었다. 하지만 “천사처럼 노래했고”, “어떤 악기도 두려움 없이 척척 연주했으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우아함과 정확성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이들에게는 음악을 연주하러 나가는 시간이야말로 햇살을 보는 해방의 시간이었고, 비발디의 음악이야말로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해주는 기쁨과 축복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아주 기꺼이 연습했고, 그래서 연주 실력이 출중했던 게 아닐까? 

 

“넘어질까 두려워 살금살금, 조심조심 얼음 위를 걷는다. 힘차게 한번 걸었더니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시 얼음 위로 뛰어가 보지만 이번엔 얼음이 깨지고 무너진다. 굳게 닫힌 문을 향해 바람들이 전쟁을 하듯 돌진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겨울이고, 또한 겨울이 주는 즐거움 아닌가.”       – ‘겨울’ 3악장에 비발디가 써 넣은 소네트

3악장은 겨울의 멋과 재미를 들려준다. 어느 대목에서 얼음 위를 살살 걷고, 미끄러져 넘어지고, 얼음이 깨져 무너지는지 상상해 보자. 생각에 잠겨서 천천히 걸어간다. 겨울은 무엇일까? 혹독한 시련은 왜 어김없이 찾아올까? 겨울이 가면 봄이 오긴 오는 걸까? 비발디의 ‘겨울’은 이윽고 꽁꽁 얼어붙은 길을 걷기 시작하고, 곧 찬바람에 몸과 마음이 아파 온다. 클로징은 춥고 힘들지만 그래도 겨울은 재미있다고 얘기한다. 엄혹한 겨울이지만 음악이 있고 친구가 있으니 견딜 만 하다고 비발디는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 같다. 

 

 

이채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침묵사』(공저) 등.

 

1.트레몰로tremolo ‘떤다’는 뜻. 현악기에서 한 음을 급속히 반복해서 연주하여 떠는 듯한 효과를 낸다.

2. 피치카토pizzicato 현악기를 활로 연주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퉁기는 주법. 

3.『비발디』, 롤랑 드 캉트, 중앙M&B, 1995,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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