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1월 2014-11-03   620

[특집] 가카의톡과 사이버 망명

특집 호구거나 호갱이거나

가카의톡과 사이버 망명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지난 9월 말께 시작된 ‘카톡 망명’ 사태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라 할 검찰도 적잖이 당황한 듯하다.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분노어린 일갈을 충실히 받아서 “명예훼손 수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을 뿐인데. 그 내용에 포함된 ‘인터넷 모니터링’ 이라는 말이 이런 파장을 불러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개인정보, 명예훼손, 사이버 감시와 사찰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쯤 되면 나올 만한 얘기들은 다 나온 듯하다. 검찰은 검찰대로, 카카오는 카카오대로, 법원은 법원대로 앞으로는 이용자 정보 보호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며 각자의 외양간을 고치겠다고 한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얼마나 책임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따지는 게 큰 의미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간 수사기관과 이동통신사, 포털 등의 플레이어들이 시민의 개인정보들을 얼마나 안이하고 무심히 다뤄왔는지 분명히 드러난 만큼, 이런 일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우리 법제도의 ‘빈 곳’이 어디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개인정보, 수사기관은 무제한 열람 가능?

개념들이 복잡하지만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통신자료’ 문제다. 이번 일이 터진 뒤로 언론에 ‘이동통신 3사, 통신자료 수사기관에 과잉제공’등의 기사제목이 많이 나왔다. 통신자료는 간단히 말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말한다. 이동통신사의 경우라면 010-1234-5678이라는 번호 주인의 실명, 주민번호가 통신자료에 해당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라면 ‘iloveyou’라는 아이디 주인의 실명, 주민번호, 주소가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지금 검찰이나 국정원 같은 수사기관이 어떤 휴대전화 번호 사용자의 인적사항을 이동통신사로부터 받아내는 데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동통신사는 가입자의 인적사항(그러니까 통신자료)를 달라는 검찰이나 국정원의 요청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이렇게 해서 2013년 수사기관에 흘러들어간 ‘통신자료’는 무려 700만 건에 이른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동통신사에 당신의 인적사항이 수사기관으로 제공되었는지 문의한다면? 이동통신사는 수사상 비밀이라며 가르쳐주지 않는다. 수사기관은 영장도 없이 수백만 명의 인적사항을 이동통신사로부터 받아 가는데, 정작 당사자는 이를 확인할 방법조차 없다. 법원의 영장 없이 수사기관이 함부로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받아갈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1).

통신비밀보호법, 이용자의 ‘알 권리’가 우선 돼야 

다음은 통신사실확인자료와 통신제한 조치다. 통신자료가 가입자 인적사항이라면,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그 가입자가 어떤 번호와 언제 몇 분 동안 통화했는지 등에 해당한다. 인터넷으로 치면, 어느 사이트에 언제 접속했는지 등을 담은 로그기록이 바로 이 통신사실확인자료에 해당한다. 그리고 통신제한조치는 쉽게 말해 감청이라고 보면 된다. 수사기관이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받거나 감청을 하려면 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수사기관이 아무런 통제 없이 이런 정보에 접근하게 될 경우, 프라이버시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 있을 수 있는 만큼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의 통신사실확인자료가 수사기관으로 제공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당사자에게 바로 통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누구와 언제 통화하고, 어떤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하는지 수사기관이 다 들여다보고 있는데도, 통신비밀보호법은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하는 시점을 ‘검사가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을 통보하거나 내사 사건을 종결한 때로부터 30일 이내’로 정하고 있다. 수사가 장기화되면 당사자는 몇 년이고 자신의 전화통화내역이나 인터넷 접속 기록을 수사기관이 들여다보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 곧바로 이용자에게 통신사실확인자료에 대한 압수나 감청사실이 통지해야 한다. 당사자에게 알려줄 경우, 접속 기록 등을 삭제할 수 있는 문제는 얼마든지 제도적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무심코 한 말도 형사처벌?

이렇게 제도상 빈 곳이 많다는 점과 별개로 이 시점에서 곱씹어 볼 내용이 있다면, 다른 것도 아닌 ‘명예훼손’에 대해 수사기관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이다. 이번 검찰 발표가 유독 많은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진 것 역시, 검찰이 간첩사건도 유괴사건도 아닌 ‘명예훼손’ 수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은 ‘다른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켰다’는 이유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어떤 말이 누군가의 사회적 평판을 객관적으로 떨어뜨렸는지는 본질적으로 명확하지 않으며, 우리 법은 허위가 아닌 진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어 있어 예측가능성이 대단히 낮다. 무심코 한 말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 사람들이 지금도 무수히 많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인터넷을 모니터링 해가면서까지 명예훼손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니,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가 나서서 명예훼손을 형사 처벌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의문이 많다. 인권선진국으로 꼽히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명예훼손을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 명예훼손은 당사자 사이에서 민사적으로 해결할 문제지, 국가가 나서서 처벌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엔 인권위원회 역시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 처벌이 보통 사람들의 명예를 보호하기보다는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으며, 이를 감안하여 명예훼손의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우리나라에 권고한 바 있다. 당장 명예훼손죄를 없애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적어도 명예훼손을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할 수 있는 친고죄로 바꾸기라도 해야 한다. 지금처럼 당사자는 자신의 명예훼손을 주장하지도 않는데, 수사기관이 그의 명예를 지켜주겠다며 나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1)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경우, 네이버나 다음 등 주요 포털사들은 영장 없는 통신자료 제공요청에 따르지 않고 있다. ‘(포털사업자가)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넘겨준  것은 위법하다’는 2012년 서울고등법원 판결 때문이다 

정민영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변호사.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문제에 관심이 많다. 탕수육을 좋아하고, 날씬해지는데 관심이 많다. 법 공부를 하기 전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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