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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1월
  • 2014.11.03
  • 803

마당 있는 집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지난 주말 오랜 만에 북한산에 올랐다. 진달래 능선을 따라 올라가 대동문을 거쳐 백운대 쪽 주능선을 탔는데, 익숙한 산임에도 가을 색깔로 바뀐 산 풍경이 새삼 아름다웠다. 청명한 바람이 불고, 인수, 백운, 만경의 삼각三角은 가을 햇살에 빛났으며, 그 삼각산 뒤로는 코발트 빛 투명한 하늘이 걸려있었다. 가을 삼각산은 명징한 사색에 빠져있는 청년의 자태였다. 올해는 가을이 길어서인지 유난히 산들이 드높고 추색秋色도 깊다. 


그러다 잠시 쉬면서 동쪽으로 성곽너머를 바라보니 불암산과 수락산 아래 아파트 단지들이 상계동에서 의정부에 이르기까지 회색빛 회랑을 이루며 길게 뻗어있다. 북한산 쪽 가까이로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눈에 들어온다. 북한산성 부근에서 늘 보이는 익숙한 아파트 풍경인데도 눈부신 가을 풍광 탓인지 그날따라 눈에 심히 거슬렸다. 저 시멘트 덩어리들이 푸른 숲과 들판이고 그 사이로 중랑천 물길이 느릿느릿 흐른다면, 노원蘆原이 말 그대로 갈대 무성한 벌판이면 어떨까 싶었다. 

 

아파트 같이 획일화된 삶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갑갑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까. 나도 아파트 살이를 한 지 거의 삼십년이 되었다. 아파트는 박정희시대의 산물로 알고 있는데 아마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주거형태일 것이다. 홍콩이나 중국의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우리처럼 아파트가 보편적 주거형태로 자리 잡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아파트가 여러 면에서 효율적이고 생활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양적 성장과 효율성만 일방적으로 추구했지 삶의 다른 질적 가치들은 외면했던 박정희 시대의 삶과 딱 맞아떨어지는 주거형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가 추방한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때문에 우리 삶은 또 얼마나 획일화되고 팍팍해 졌는가. 여러 세대가 함께 거주할 수 없는 구조이니 전통 방식처럼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아이를 낳아도 집에서 키우고 보살피기가 어렵다. 남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인지 산후조리원이라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이한 업종도 생겨났다. 자식세대의 도움 없이 따로 살던 노인들은 독립적 활동이 불가능해지면 자식 집이 아니라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큼 인구 대비 요양원이 많은 나라도 없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탄생, 혼례, 잔치, 운명殞命, 장례를 제가 살고 있는 집에서 치를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 조차 드물어 졌다.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은 훼방꾼이다. 이웃사촌이 아니다. 아파트는 몰개성의 획일화된 생활공간, 그냥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공간일 따름이지, 우리의 능동적 삶이 기획하고 만들어 내는 풍요로운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담을 수 있는 보금자리는 아니다. 

 

우리는 능동적인 삶을 꾸릴 수 있을까

이런 아파트에 우리나라 가구의 절반이상이 살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런 대량생산 공산품처럼 답답하고 규격화된 삶에서 탈출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요즘 특히 자주 한다. 마당이 제법 깊어서 꽃나무 밭이 있고, 한 구석에는 조그만 텃밭도 있으며, 또 마당 잔디도 키울 수 있는 그런 시골집이 아니라도 좋겠다. 그저 작은 흙 마당이 있는 남향받이 집이면 족할 듯하다. 마당으로 향한 창을 열어놓으면 바람 냄새가 코끝에 와 닿고, 비오면 처마 끝에 비 듣는 소리 들리고, 이웃집 지붕들에 갇혀 한 뼘만 해도 나만의 하늘이 보이는 그런 집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담장 너머 동네이웃과 정담도 나누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탈출계획을 즐거운 생각거리로만 남겨놓은 채 현실화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미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서, 마당 있는 집에서 산다는 막연한 두려움, 불편함과 번거로움, 비용, 가족들의 의견 등등에 대한 현실적 고려가 더 이상의 생각의 진전을 가로 막는다. 야생동물을 오래 동안 붙잡아두면 야성을 잃어버려 우리에서 풀어줘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구차한 내 신세와 그리 다르지 않다.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다니고 있음. 그러나 이제는 인생사에서 우연의 작용을 인정함. 산밑에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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