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11월 2014-11-03   719

[정치] 추첨의 민주성을 살리자

추첨의 민주성을 살리자!


이용마 MBC 해직기자

참여사회 2014년 11월호 (통권 216호)

정권에 따라 바뀐 감사 결과

박근혜 정권 출범 직전인 2013년 1월, 감사원은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총체적 부실’이라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6개월 뒤 제2차 발표에서는 4대강 사업 부실이 사실상 대운하 사업을 밀어붙이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해놓고 국민을 속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재임하던 2010년에는 4대강 사업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불과 3년 만에 결과가 180도로 바뀐 것이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의 부실을 지적하자,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광범위하게 제기되었다. 하지만 양건 감사원장이 그 직후 물러나면서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양건 감사원장의 퇴진은 결국 정권교체기에 양건 원장의 오판에 따른 해프닝으로 그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 대운하 사업에 반대했던 만큼, 4대강 사업의 부실을 지적하는 것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한 것이다. 정부는 감사원 발표 이후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의미 있는 후속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을 한창 진행하던 2010년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공사에만 무려 22조원이 투입되었고, 유지비용만 한 해 수천억 원이 드는 4대강 사업 결과는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김황식 감사원장은 당시 현직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밀어붙이는 사업에 대해 전혀 토를 달지 못했다.

청와대는 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감사원

감사원의 이와 같은 행보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감사원은 최근 세월호 참사 당시의 현황에 대해 긴급 감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청와대에 대한 감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은 면담조차 못하고, 청와대 행정관 2명을 상대로 몇 가지 질문만 하고 감사를 끝낸 사실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현황에 대해 14차례에 걸쳐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문건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저 3년 반 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될 것이라는 말에 그냥 돌아왔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대한 부실 감사, 봐주기 감사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황창현 감사원장은 오히려 현직 대통령은 현행법상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감사원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하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비록 감사원장의 임명은 형식적으로 대통령이 하지만, 감사원은 헌법상 독립된 기관이다. 감사원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는 행정부의 한 기관이 아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감사원은 청와대에 대한 감사 권한이 있고,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가장 권한을 남용할 소지도 많고, 남용할 권한도 많은 현직 대통령에 대해서만 유독 감사를 할 수 없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리스 민주주의의 꽃은 추첨제였다

감사원장뿐만이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고 있는 모든 직책에 대해,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과 같은 사법부 수장은 물론 재판관들도 일제히 물갈이 된다. KBS와 MBC,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의 사장들도 다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바뀐다. 새로 제도화된 상설 특검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배경이다. 한마디로 행정부를 독점하는 순간 사법부와 언론 등 모든 권력기관을 동시에 장악한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이들이 중립적인 인사인 양 국민을 호도한다.

최근 개헌론이 부상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설령 의원내각제를 한들 특정 정당의 총리가 권력기관의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다면, 상황이 달라지겠는가.

권력기관장들의 임기를 대통령보다 짧게 한 뒤, 여야가 권력기관의 후보를 동수로 추천해 추첨을 하거나, 여야의 추천을 받은 후보들을 번갈아 임명한다면, 적어도 지금 제기되는 권력기관의 편파성 시비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제왕’은 대통령제라는 제도가 아니라 권력의 독점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꽃도 선출이 아닌 추첨제였다.

이용마 

정치학 박사.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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