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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09월
  • 2014.09.01
  • 1299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목숨 걸고 일구는 희망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전명선 부위원장
(2학년 7반 찬호 아버지)

 

박유안 

사진 박영록

 

“가족대책위 부위원장님이시죠? 2학년 찬호 아빠라고 들었는데요”라고 첫 마디를 던지니, 슬프게도 “찬호도 여러 명 있더라구요. 저는 2학년 7반 찬호 아빠입니다”라는 대답이 건너온다. 


100일이 훌쩍 넘은 세월호 참사. 하지만 아직도 학생 다섯 명을 포함 10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고, 진상규명을 향한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온 나라가 애도하는 가운데, 참사의 현장을 지키던 유가족들은 이제 뙤약볕 아래서 진상규명을 염원하며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리라는 굳은 일념으로 똘똘 뭉친 유가족들은 전국을 돌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고, 목숨을 건 단식과 국회 농성 등을 통해 제대로 된 4.16특별법 제정을 압박하고 있다. 


가족대책위의 요구에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한 청와대와 여당, 400만 서명자의 뜻과 힘을 망각한 채 무기력한 밀실 야합으로 스스로 궁지에 몰린 야당, 그 정치적 실랑이 속에서, 한여름 휴가철의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망각의 세월호’라는 한탄이 들리기 시작하는 8월 중순, 국회 본관 앞 농성장을 찾아 가족대책위에서 진상규명분과 일을 맡고 있는 전명선 부위원장을 만나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열 분의 실종자 문제가 가장 큰일이라고 하셨는데, 진상규명 및 장례 문제 등 유가족 분들이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참사의 고통을 견디기에도 벅차실 텐데, 이렇게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기까지 하셔야 하다니…….

4월 16일부터 현장에 있었다. 첫날부터 절망이었다. 진도체육관의 분위기는 아무런 통제도 느낄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체계적인 구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첫날의 구조학생 명단이 거짓말투성이로 밝혀지자 우리는 비극을 직감했다. 해경이 막으려고 드는 걸 뚫고 2시간 반 만에 팽목항에 가 봐도 아무런 구조행위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걸 가족들 모두가 들어가서 보았다. 그렇게 보내고 맞은 둘째 날이야말로 정말 힘들었다. 여전히 구조 행위는 안 보이고, 배는 다 가라앉고, 물은 차디차고……. 그날 밤 두시에 바다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아, 저 바다에서 애가 48시간 이상 살기는 힘들겠구나.’ 하지만 애엄마나 큰애한테는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켜야 했다. 혼자 그날 밤에 담배 다섯 갑을 다 피웠다. 그때부터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애는 죽어 가는데 난 그 주위를 맴돌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국민들이 에어포켓air pocket, 침몰한 선박의 선체 내에 공기가 남아있는 공간에 희망을 걸고 있던 무렵이 아닌가?

나도 식구들을 그렇게 안심시키긴 했다. 하지만 스쿠버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희망을 걸기 어려웠다. 애들 시신이 기본적인 세안도 안 된 채로, 눈이든 코든 입이든 분비물 그대로인 처참한 모습으로 부모들에게 노출되던 때다. 둘째 날부터 가족 대표 열세 분 정도가 일을 시작해서 검안소부터 만들게 했다. 그때부터 가족대표단 분들의 요청에 따라 정부는 움직였다. 

내 생각은 그랬다. “못 구해줬으니, 부모로서 할 거는 시신이라도 잘 수습하자. 그리고 억울함이라도 풀어주자. 진상을 밝혀서 억울하게 죽은 애들 넋이라도 풀어주자.” 그것뿐이었다. 그때부터 많은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찬호는 아주 늦게 땅에 올라왔다. 281번째였다. 그 바다에 잠긴 지 30일 만이었다. 그땐 이미 안산에 합동분향소도 만들어진 때였다. 내가 안산으로 올라와 5월 21일에 분향소에 가니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툼이 일곤 했다. 그래서 장례지원, 진상규명, 심리·생계, 수색구조 등 분과체제를 만들기로 하고, 그때부터 진상규명분과 부위원장으로 일했다. 

 

참사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대응 또한 거의 참사 수준이다. 이 참혹한 사건의 진상을 아직 아무도 모른다니 기가 찰 따름이다. 검찰은 죽은 유병언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녔고…….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진상을 파헤쳐야 하는 건가?

우린 다들 직장생활하고 조그맣게 자영업 하는 그냥 엄마, 아빠였다. 당연히 법률에 대한 지식도 없었다. (지금은 대한변협이 대책위와 MOU양해각서를 맺어 변호사 분들도 상주하고 있다.) 다만 우리 가족들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4월 16일부터 단 하루도 그 사고현장을 떠난 적이 없다는 거다. 태풍으로 전부 피항할 때를 빼고는 24시간 현장을 지켜본 게 가장 큰 무기였다. 현장에서 그렇게 모은 자료들, 애들 핸드폰에서 복구한 자료들, 그런 게 진상규명에 큰 힘이 되리라 생각했다. 기관에 대한 자료는 국회의원들 통해서 간접적으로 구해야 하니 아무래도 부족하다. 하지만 현장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 진상규명에 꼭 필요한 자료들이니까. 


대책위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안산의 진상규명분과에서 타임라인 작성 작업을 하고 있다. 시간대별로 타임라인이 완성되면 거짓으로 대응할 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허점이 발각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에 발견된 세월호 노트북만 해도 그렇다. 국정원에서는 애초 그 담당자가 죽어서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살아 있다는 게 밝혀지니까, 무슨 오류가 있었다고 하고선 끝이라는 식이다. 이런 거짓 변명들의 진위를 속속들이 밝힐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설령 그러지는 못한다 해도 국민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끔 우리가 증거보전을 최대한 해내고 끝까지 추적해서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방송이 있고 언론이 있는 게 아닌가? 

현장에서 언론 보도를 접할 때도 왜곡과 거짓으로 믿을 수가 없었지만, 지금도 3개 방송사를 통해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 게 거의 하나도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객관적으로 방송이 나가야 하는데, 다 위에서 자르고 주관적으로 바꿔놓는다. 국민들의 판단을 흐려놓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우리가 기관 보고 관련해서 청와대의 4대 거짓과 89가지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기관 보고의 파행처럼 앞으로 열릴 청문회가 파행을 겪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대로 모아둔 자료를 제대로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타임라인 작성과 그런 분석 작업을 통해 기존의 의혹을 파헤칠 자료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청문회 준비도 별도로 하고 있으며, 기관보고, 청문회 결과 등을 두고 별도로 토론회도 개최할 생각이다. 민변이든 대한변협이든 변호사 분이 발제를 하고 정리해서 거짓과 의혹을 밝히려는 것이다. 

 

둘째 날이야말로 정말 힘들었다. 여전히 구조 행위는 안 보이고, 배는 다 가라앉고, 물은 차디차고……. 그날 밤 두시에 바다에서 나오며 생각했다. ‘아, 저 바다에서 애가 48시간 이상 살기는 힘들겠구나.’ 하지만 애엄마나 큰애한테는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켜야 했다. 혼자 그날 밤에 담배 다섯 갑을 다 피웠다. 그때부터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애는 죽어 가는데 난 그 주위를 맴돌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

어떤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 중이신 건가? 주로 정부와 관련된 것들인가?

(정부와 사고현장) 두 가지 다 있다. 언론에 밝혀진 것과 차이가 있는 게 있다. 하다못해 영상까지도 그렇다. 생존학생 증언도 세 차례나 받아뒀는데 한두 가지만 언론에 공개되었을 뿐이다. 디지털 포렌식(법의학) 자료도 문자만 정리했지, 영상, 사진은 아직 미완 상태이다. 기존의 기관 자료도 아직 정리 중이고. 대한변협에서 다섯 분이 이 일을 맡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청문회 자료 준비작업과도 공유 중이고, 빠진 의혹들을 캐내기 위해 민변, 국민대책위, 참여연대, 로스쿨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 어민, 화물기사, 생존자들의 영상이나 녹취록을 속기사들이 자료로 풀고 있다. 8월 중순을 목표로 기자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집중적으로 자료를 정리, 분석 중이다. 8월 16일 교황의 시복식 전에 지금 모은 자료들을 최대한 분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다.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공권력이 의혹의 당사자이다 보니, 현장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가족대책위와 적극 협력해 사태의 전말을 밝히려는 의지가 거의 없어 보이는데, 어떤가?

그렇다. 공권력이라고 하셨는데, 가령 해경과 진도 VTS 경우는 기관보고 때 이미 위증죄를 저질렀다. 고의로 CCTV를 훼손한다든가……. 청해진-해경-언딘의 유착설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실제 사고 현장에서의 활동과 관련해서다. 명절 때 서로 만났는지 어떤지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왜 그렇게 구조 현장을 철저하게 통제했는지, 실제 구조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그게 알고 싶은 거다. 관제구역 안에 들어온 뒤의 교신내용도 증거보전을 통해 세세히 밝혀야 할 부분이다. 뭘 감추려고 CCTV를 훼손했는지, 왜 관할이 아니라면서 80킬로미터나 떨어진 제주 VTS로 넘기려 했는지, 제주 쪽 자료는 왜 중간 부분이 통째 빠져 있는지 등 증거인멸과 관련해 의혹이 크다. 결론적으로 해경은 구조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위증, 증거조작, 증거인멸 등 너무나 큰 의혹의 당사자인 셈이다. 

 

유착설을 밝힐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계신 건가?

초기에 해경이 구난동원령 내렸던 서류를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가족들에게 브리핑할 때 이 공문을 30군데 (구조전문) 회사에 뿌렸다고 했다. 그런데 공문 받은 데서 참여 못하겠다는 타당한 이유를 해명한 회신이 온 게 없다. 과연 동원령이 내려진 게 맞는지 의혹인 거다. 광주지검에서 조사받고 있는 해경의 최 모 차장은 언딘과의 유착설에 연루되어 있는데, 우리 가족대책위는 청해진이 언딘과 맺은 계약서 원본을 입수해 가지고 있다. “해경이 언딘을 부를 이유가 없다”고 하던 사람이 언딘더러 “빨리 오라”고 보낸 문자가 나오지 않았나. 하나하나 이렇게 밝혀내야 한다. 이런 유착관계를 밝히지 않으면 그 비리 때문에 또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드시 밝혀낼 거다.

 

여·야 총무 간의 특별법 합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가족대책위와의 협의나 협력은 없었나?

가족대책위에는 학생, 선생님, 일반인 희생자 등의 가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대책위에서는 총회를 통해 안건을 결정한다. 우리와 MOU를 체결한 대한변협에서 나온 특별 법안이 그렇게 모든 의견을 수렴해 만들어졌던 거다. 이 법안에는 진상규명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특례입학도, 의사상자 지정 내용도 없다. 그런데 이게 언론을 통해 잘못 알려지면서 마음을 다치는 가족 분들이 많다. 배상, 보상 문제도 마찬가지다. 7월 2일 공청회에서도 얘기했듯,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게 되면 국가가 구조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음을 밝힐 테고, 그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정당한 배상을 하면 된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게 최우선이다. 


국회에 세월호 특별법 TF가 꾸려지자, 가족들은 TF와의 협의체 구성 요청, 참관인 자격 요청을 했다 거듭 거부당한 뒤, 결국 TF에 10분간 법안을 설명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양당 의원 4명씩 8명 앞에서 설명한 뒤, 우리가 물었다. “왜 이 법안이 안 된다는 건지,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이 대답을 못하더라. TF모임에 나온 의원들이 아예 검토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온 거였다. 대통령이 “성역 없는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얘기했지 않았나. 국무총리는 “4월 16일을 기념일로 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고 유가족들 앞에서 얘기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국회에 공을 넘겼고, 국회는 당리당략만 따지며 또 청와대만 바라본다. 이런 거 보면 대한민국 썩어빠졌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400만 국민이 동참하고 국회의원도 226명이 뜻을 함께한 법이 왜 이렇게 안 만들어지는 건가. 

 

이번 밀실야합 파문에 따른 지체에도 불구하고 가족대책위 나름의 진상규명 노력은 계속하실 작정인가?

기관보고도 파행을 겪었는데, 이번 청문회도 잘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가족들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나름대로 청문회 준비와 토론회 준비를 계속 할 거다. 증거보전 신청한 자료들 제대로 받은 게 하나도 없다. VTS 녹음자료도 여섯 채널을 따로 풀어 확인해야 한다. 해양플랜트연구소의 수조실험 결과도 받아봐야 한다. 조작 은폐 시도를 낱낱이 밝혀 국민들에게 알릴 거다. 국민 있고 나라 있는 건데, 언제까지 저렇게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일 수 있겠는가. 분통은 터지지만, 유가족들끼리 힘을 합쳐 철저한 진상규명의 노력을 늦추지 않을 거다. 국회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어렵다고 본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지금도 목숨을 걸고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참척慘慽의 처참함을 제대로 다스릴 겨를도 없이 가족들은 장례지원, 심리·생계지원, 수색구조, 대외협력 등의 일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장례를 치른 후 술로만 시름을 달래던 아버지도 있었지만, 이제는 부모님들끼리 서로를 챙기며 힘이 되어주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반별로 부모님들이 전국을 돌며 함께 서명전을 다니고 함께 리본을 만들고 함께 분향소 당번을 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눈 결실이다. 


전 부위원장께 가족 분들이 변화하는 얘기를 듣다 문득 깨달았다. 가족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똘똘 뭉치듯, 처참한 대한민국에 허탈해 하던 시민들도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똘똘 뭉치면 대한민국을 확 바꾸는 더 큰 기적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대한민국을 바꾸어야 처참한 비극의 상징이던 세월호가 안전한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 ‘세월호’는 꼭 희망이 되어야 한다. 

 

 

7월 9일 3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청원했다. 그러나 8월 7일 여야는 가족들의 요구를 짓밟는 내용으로 특별법에 합의했다. 단식과 농성을 포함해 제대로 된 유가족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8월 말인 현재까지 유가족들의 요구를 반영한 특별법은 제정되지 않고 있다.

 

 

박유안

기웃기웃 번역가. ‘알트’ 출판사에서 일하는 그는 “까칠해도 친절하게”가 삶의 모토이며, “쟌 모리스를 번역한 작가”로 기억되길 바란다. 밤엔 주로 땅고 추며 논다. 맘 놓고 춤 출 좋은 세상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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