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9월 2014-09-01   1395

[만남] 책은 도끼다 – 김종수 회원

책은 도끼다

김종수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사진 Nina ahn

‘이번 인터뷰는 참여연대 20주년을 맞아 창립 회원 김종수 한울출판사 대표를 만나 보기로 하였습니다.

책장 앞으로 갔다. 왼쪽 책장은 최근 책들, 오른쪽은 다 읽었거나 오래된 책들이 꽂혀 있다. ‘한울’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들 중 우리 집에 있는 건 무엇인지, 몇 권이나 있는지 궁금했다. 예상대로 한울의 책은 모두 오른쪽 책장에서 나왔다. 그러나 6권이라는 수는 생각보다 많았고, 우직한 아카데미즘을 지향한다는 평판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들 사이로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책도 눈에 띄었다. 『한국 힙합』. 이 책이 한울에서? 잭 런던의 『강철군화』 밑에 적힌 ‘한울’을 보며 끄덕이던 고개가 힙합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 갸우뚱거린다.

부풀어만 가는 궁금증들을 수첩에 옮겨 적으며 파주에 있다는 출판의 도시로 길을 나섰다.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1994년 : 하나의 보루는 남아 있어야 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외관의 한울출판사 건물. 약속장소인 지하 북카페에 들어서니 사방의 벽이 온통 책이다. 지하공간의 습기를 머금어 더욱 짙어진 책 냄새, 그 육중한 공기 사이로 난 길을 걸어 그가 왔다.

“벌써 20년이 되었어요? 근데 이거 사람들이 읽긴 해요? 요즘 사람들 잘 안 읽는데. (참여사회를 이러 저리 넘겨보며) 이건 편집을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듯한데…….”

동행했던 담당간사가 인터뷰에 관한 이런 저런 설명과 함께 참여사회 8월호를 건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이 긴장된다. 숙제 검사를 맡으러 온 아이처럼 한껏 주눅이 든 채로 힘겹게 첫 질문을 던졌다.

“1994년도라, 그 당시는 사람들이 뭔가를 한다하면 다들 가입해 주고 후원해 주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저도 뭐 참여연대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겠다, 이런 것보다는 그런 차원에서 창립회원이 된 거죠. 그게 그 당시 문화였으니까. 창립멤버였던 조희연 선생과도 오랜 지기이고.

참여연대가 만들어졌던 1994년의 풍경이 그의 입을 통해 한 장의 스케치로 옮겨진다.

“서클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대학의 운동권들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오랜 시간 함께 사회의 변혁을 위해 애써오던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시민운동, 시민단체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어요.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긴 했는데, 권력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아래로부터 나오는 힘들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중심체로서 ‘참여연대’가 창립된 것이죠.”

시민들의 의지와 참여까지도 모두 아우를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들어진 시민들의 단체 ‘참여연대.’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회원으로 남은 건 이런 희망의 보루가 하나쯤은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참여연대도 그렇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많은 분들이 지금은 다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 모두를 하나로 일반화해서 말하기도 어렵고 또 시대마다 상황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길도 있는 거긴 한데, 그래도 저는 시민단체 활동이 정치의 영역으로 나가기 위한 길목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시민운동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거고 그 여파는 시민운동의 힘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갈 테니까요.”

그의 우려를 일반 시민들의 반정치 정서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 출신의 정치가들이 멋들어지게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참여연대를 만들 당시엔 없었던 새로운 질문들이 20년이란 세월과 함께 자라나고 있다. 참된 성장이란 정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지 않는가. 더 많은 질문들의 무게를 짊어져도 좋을 만큼 듬직한 청년의 모습으로 자란 참여연대. 그의 탄탄한 어깨를 믿을 뿐이다.

1978년 : 모범학생은 왜 모범시민이 되지 못하였는가

갑작스레 손님 몇 분이 찾아오셨다. 잠시 인사를 하러 자리를 비웠던 그가 돌아오며 어렸을 적 알았지만 초면인 분이라고 설명을 붙인다. 안 그래도 어린 시절에 대해 물어볼 참이었는데 화제가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아, 아까 그분은 김산호씨라고 유명한 만화가세요. ‘라이파이’라는 지금 5,60대 사람들이 가장 즐겨봤던 SF만화를 만드신 분이죠.”

초로에 접어든 그에게도 SF만화를 즐기던 소년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어떤 아이였느냐고 묻자 그는 그저 평범하고 개성이 없는 학생이었다고 짧게 답했다. 모범생이셨나 봐요, 하고 재차 묻자 뭐 그렇죠, 하고 다시 짧은 대답. 그렇다면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던 청년기로 곧장 갈 수밖에.

“대학 때는 왜 모범적인 생활을 하지 않았냐구요? 뭐 그거야 그때 세상이 그렇게 살 수 없는 곳이었잖아요. 학교 안에 경찰부대가 상주하는, 유신체제라는 게 그런 거니까. 당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죠. 물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여전히 방관자였고 개인의 미래만을 위해 애쓸 뿐이었죠.”

1979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그는 생애 처음 감옥에 갔다. 당시 이 조치로 구속되거나 수감되었던 사람들은 500명이 넘는다. 이후 1982년과 88년에도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구속, 수감되었다.

“당시 사회는 우리가 책을 통해 보고 배우던 세상과는 너무 달랐어요. 이건 아닌데, 그럼 바꿔야하지 않겠나, 그게 우리의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했죠. 그 중엔 노동운동 쪽으로 간 이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일신의 안위 같은 건 모두 버리고 가야했어요.”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던 학생이 자살을 한 적도 있었다. 그가 청년기를 보낸 1970년대는 그랬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쉽지 않았던, 그의 청춘을 닮아 그렇게 시퍼렇기만 하던 시절.

“데모 그런 거 말고 기억에 남는 거라…, 대학신문 만들었던 것? 데모 말고는 그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죠. 1년 반 정도 했으니까.”

그래도 청춘시절 이야기인데, 짧지만 알싸한 연애담 하나 정도는 얻어들을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파주출판단지 내에 있는 한울출판사 건물 지하 북카페. 한울 출판사에서 그동안 만든 책들로 가득차 있다.

2014년 : 나는 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력에 적힌 한 줄의 문장, ‘25살에 한울출판사 시작.’ 25살이라는 숫자가 인상적이다. 세상을 믿고 사업을 시작하긴 이른 나이, 반대로 세상의 입장에선 사람 하나 보고 사업을 맡기기엔 어린 나이니까.

“대학 때 신문사 편집장까지 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2년 동안 신문을 만들었는데 수업을 한 달 이상씩 빠져가며 한 적도 있어요. 그런 경험들이 출판사 차린 것과 무관하지 않겠죠.”

걱정이 되는 건 그의 어린 나이뿐만이 아니다. 자금은 어디서? 직원은? 수익은 났는지?

“아는 이들에게 돈 빌려 책 하나 만들고 거기서 돈 좀 남으면 또 한 권 만들고 그랬죠. 대부분 사회과학 서적들이라 수익도 많지 않았고, 월급 제대로 받는 직원도 없었어요.”

그러나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와 밥벌이의 고달픔을 걱정하기엔 세상은 더없이 불온했다.

“82년과 8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은 모두 제가 만든 책들 때문이었죠. 하나는 남미의 정치경제학 책들 냈을 때고 하나는 홍동근 목사의 북한 방문기 『미완의 귀향일기』 때문이었죠.”

책을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가야했던 두 번의 감옥행. 특정한 이념적 경향성을 띄는 책들은 쉽게 나올 수 없던 시대였다. 상업적인 출판사들은 아예 그런 책들을 만들지 않았다. 정작 세상에 대해 제대로 안내해 줄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처음 책을 만들 때만 해도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바꾸거나 이해하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라고. 근데 대학에서 책에 대해 강의하며 책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게 된 이후부터 책 그 자체가 하나의 수단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날 세상을 이만큼 만든 것은 바로 책이에요. 프랑스혁명도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저서에 바탕을 둔 것이고 기독교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 또한 성경이라는 텍스트 때문인 거고. 책이란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책에 실리는 내용이 가벼워지면 사람들의 생각이 가벼워지고 그러면 정치나 정책도 가벼워질 테고 결국엔 세상도 그 만큼 가벼워질 수밖에 없는 거죠.”

책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사키 아타루의 저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 떠올랐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경을 읽고 또 읽었던 행위에서 비롯된 ‘대혁명’이었음을 논증하며 ‘책을 읽고 쓰는 것’ 그것이 바로 혁명이라고 역설하던 책.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았던 바로 그 책에 대해 책을 만드는 그와 함께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어진 지금, ‘이 견해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 위에 길게 가로선을 그었다.

“미국에서 한 해에 나오는 책이 4백만 종쯤 돼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출판사에서는 5천 종이 나오죠. 미국이나 영국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데는 다 이런 것들이 바탕에 있는 거죠.”

책이 화제가 된 후로 그의 대답이 길어졌다.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도 ‘가족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성실히 해나가는 사람’이라는 답변을 짧게 던지고는 바로 다시 책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미국대통령이 퇴임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이름을 딴 도서관을 짓는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지방자치의 성장과 함께 늘어난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수로 이어지던 대화는 ‘책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다가 왜 양질의 텍스트가 중요한가라는 문제로까지 쉼 없이 흘러갔다. 

“우리나라처럼 시장이 작은 곳은 당연히 책값이 비쌀 수밖에 없는데 시장이 훨씬 큰 미국이나 독일보다도 더 싸요. 저는 그렇게 안 해요. 책을 만드는 비용을 책값에 포함시키죠. 물론 그러면 책값이 비싸져요. 개인들이 사보기엔 부담스럽죠. 도서관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누군가가 꼭 필요로 하는 책을 정당한 가격에 만들어서 도서관에 파는 것, 이것이 그가 30년 넘게 책을 만들 수 있었던 노하우의 결정체다.

“지금도 출판인으로서의 철학은 하나예요. 이 책이 도서관에 소장될 가치가 있느냐, 있다면 만들어야죠.”

책은 도끼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여야 한다.’

카프카의 책 『변신』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시 카페를 천천히 돌아본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책들로 빽빽한 공간, 꽁꽁 언 세상을 깨뜨리기 위해 벼려진 도끼들로 지하 세상은 눈이 부시다. 그 도끼들을 보자 그제야 이해가 갔다. 왜 세상이 그를 감옥에 가두었는지, 왜 세상이 그토록 그가 만들어내는 책들을 두려워했는지.

“텍스트가 좋으면, 그래서 도서관에 소장할 가치가 있다면 책으로 만듭니다. 간혹 사정이 안 돼서 우리가 만들지 못하면 다른 출판사에 가서 내라고 말하죠. 그러고도 도저히 안 되겠으면 다시 우리한테 오라고, 그렇게 일러둡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선물해준 책 한권을 손에 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한적한 자유로를 달렸다. 오래지 않아 집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현관의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러는 내내 나는 몇 번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던가. 수많은 책들이 한꺼번에 토해내는 짙은 숨결과도 같은 냄새. 습기를 머금어 한층 더 짙어진 책 냄새가 내 몸에 실려 이곳까지 따라와 있었다.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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