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9월 2014-09-01   1311

[특집] 좌담 – 세월호 이후의 사회운동

참여사회 좌담

세월호 이후의 사회운동

사회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패널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박주민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법률대리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
정경섭 민중의 집 공동대표

정리 이선희

사진 오유진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도깨비에 홀리면 아무리 도망쳐도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된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사회운동은 비슷한 느낌에 휩싸였다.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서 땀 흘려 활동 했지만, 세상은 돌고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 온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어디서부터 세상을 바꿔나가야 할까? 누구도 쉬이 정답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만든다는 믿음을 되새기며, 세월호 이후에 사회운동은 어떻게 변해야 할지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세월호 참사가 던진 질문

박정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20년간 권력감시 운동을 했는데, 도대체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전체 시민사회운동이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질 여건은 갖추었나,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먼저, 세월호 참사 이후 각자 단체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는지 상황을 공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경섭 민중의 집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러 단체들이랑 실명을 기재한 현수막을 걸었어요. 대로변을 도배할 정도로. 공적 거리에 자신의 실명을 등장시키는 행위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구청에서 현수막을 철거하면 찾아와서 게시하는 과정을 거쳤고, 집회에 같이 참여하기도 했어요.세월호 이후에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면서 지역에서 삶의 안전망을 만들어가는 운동을 해보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내부 토론을 많이 했고, 8월 말부터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활동을 진행하려고 해요.

윤기돈세월호 관련한 운동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못했어요. 거리 서명을 받거나 집회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사회 운동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깊이 있는 성찰을 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했을 때 울림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고, 고민이 시작된 정도인 것 같아요.

김민수 청년운동을 하다보니까 조합원들 대부분이 IMF세대에요. 내가 속한 사회가 일자리나 내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고 배운 세대죠. 한겨레신문을 보니까 ‘세월호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더라고요. 일자리를 넘어서 생존을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청년 운동이나 진보운동에서 ‘어떻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가 화두인데, 우리 세대 혹은 다음 세대가 이것을 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이예요. 

박주민 세월호 참사가 기존에 운동하던 세력들에게 큰 질문을 던진 것 같습니다. 특히 시민운동진영에 대해서. 가족대책위가 범국민대책위를 만날 때 늘 묻는 질문이 있어요. “국민대책회의는 (집회에) 몇 명을 데리고 나왔나요?” 고정적인 풀뿌리 조직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상을 못하냐는 질문이 나와요. 그동안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보수 쪽에서는 선전을 할 때 동창모임·교회들을 이용하는데, 과연 우리는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망이 있나? 세월호 이후에 자발적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세월호가 지나도 그 사람들을 우리가 엮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면서 운동 진영이 가지고 있는 역량이 상당히 약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특별법이 제정되면 세상이 바뀌나?

박정은  유가족들이 처음에는 자신들을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운동에 대해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 분들이 투사가 되셨어요. 그분들을 이렇게 만드는 국가권력과 정치의 문제를 정말 많이 느꼈는데, 특별법 제정 과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 하셨어요?

윤기돈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뭘 놓쳤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해요. 세월호가 ‘각자도생’하는 문화를 생각하게 하는데, 단체들도 그런 것은 아닐까요? 진상규명은 진상규명대로 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시키기 어려울 것 같아요. 대책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 박근혜, 반 새누리 전선이 그어졌잖아요. 그렇게 전선이 그어진 이상 어쨌든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40%는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전선을 모호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다른 형태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장에서 싸우고 계신 분들께 이렇게 말하기 죄송한데, 뭔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오면서 흐름을 놓쳤다고 하면, 그 흐름을 놓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바로 잡아야, 특별법 제정도 힘을 받을 것 같아요.

정경섭 특별법은 그 자체로 중요한데, 한 쪽에서 세상을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운동 방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운동권들이 그 당시에 ‘김영삼 퇴진하라’를 외쳤더라고요. 지존파 사건이 자본주의 사회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효 사상’을 고취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김영삼 퇴진은 좀 정세분석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박탈감을 느끼는지 같이 공감하지 못한 거죠. 그런데 2014년 우리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가 재난에 진보진영이 개입한 게 처음인거 같은데, 어떻게 이것들을 사회 변화의 원동력으로 만들 것인지 시험대에 오른 거 같아요. 특별법도 중요하지만, 또 다른 한 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숙제인거 같습니다.

박주민 시복미사 전날, 새벽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가족들과 잠 못 이루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분이 “변호사님 우리사회가 예전에도 이렇게 엉망이었나요?”라고 묻더라고요. 예전엔 더 심했다고 말했더니, “저희는 왜 몰랐죠?” 그러더라고요. 5년 전에만 알았어도 아이들 안 죽었을 텐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선 박근혜 정부는 700명에 가까운 투사를 만들었다, 자기들은 세상이 엉망인 걸 느꼈기 때문에 모른척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그래요. 실제로 회사를 정리하고 나온 분들이 꽤 있어요. 특별법 싸움이 트로피 쟁탈전처럼 법만 왔다 갔다 하는데, 특별법 싸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엉망인지 밝히는 법, 엉망인 걸 고치기 위한 법이죠. 특별법만으로 해결 안 되고 광범위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동의해요. 정치를 재해석하고 재인식 하는 것, 공동체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감시하는 것, 이런 것들을 하자고 이야기해야 하고,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되었을까?

김민수 시민들이 자기 일상을 버리고 투사가 된다고 사회가 좋아지는 게 아니고, 일상에서 주위의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현안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구조가 되어야 시민운동의 활동에도 반응하게 될 것 같아요. 개개인의 시민들은 저마다의 문제의식이 있는데, 조직이 안 되어 있는 게 문제에요. 어떻게 조직할까? 시민운동이 일상의 구체적 경험을 대변해준 경험이 있느냐, 거대담론에 대해서만 치중해 온 것 아니냐고 시민들이 묻고 있는 것 같아요. 청년유니온에서 토익시험 문제 같은 거 이야기하면, 노동조합 관심 없던 친구들이 토익 진짜 문제 많다고 반응을 보이거든요. 사람들이 그렇게 배은망덕하지 않아요.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박정은

박정은 시민들에게 맞춤형으로 못했어요. 변명의 여지가 없죠. 참여연대도 어떻게 시민 참여를 끌어낼 것인지가 고민 이예요. 한 번도 그들의 이해관계를 공감하거나 대변해준 적 없다고 하지만, 늘 염두하고는 있어요. 소소하게 맞춤형 활동도 해야 하지만 관피아, 규제완화, 특별법 제정 같은 제도 개선 운동도 꼭 필요하거든요. 동시다발로 하지 못하니까 하나를 선택하다보면 큰 제도나 체제 변화와 같은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논리가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윤기돈 김우창 선생님이 ‘선험적 도덕의지의 폭력성’이라는 말을 했어요. 운동을 계속 해온 사람들은 반 새누리 전선, 신자유주의 문제 등으로 압축적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운동하면, 하루하루 살기 급급한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아요. 사회나 내 삶을 돌아볼 여유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면 훨씬 많은 변화가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죠. 이걸 깨지 못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정경섭  2008년 광우병 촛불 등 사회적 에너지가 분출된 사건은 많이 있었는데, 동네에 돌아가거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소멸되는 것 같아요. 민중의 집은 유럽에서 차용한 아이디어인데, 동네별로 노동조합·협동조합·진보정당·시민단체가 같은 공간을 활용하면서 지역을 변화시키는 동력을 만드는 거죠. 일상 삶을 조직하는 것, 일상에 돌아왔을 때 주변에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먹든 밥을 먹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숙제고 고민이에요. 제가 마포에서 10년 넘게 활동했는데, 누군가의 생계를 해결해 준 적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동네 사연 있는 밥집을 홍보하는 활동을 하려고 해요. 민중의 집과 네트워킹하면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먹고 산다는 것을 못 보여주면 선언적인 구호밖에 남지 않을 거 같아서요.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김민수

김민수 집회 갔다 와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일상적 관계에서 해석하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작동시킬 시간과 자원이 부족해요. 특히 청년들은 동네에서 주민인 적이 없어요. 홍대에서 술 먹고 집에 들어가서 잠만 자는 객식구 같은 존재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을 서로 해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뭔가 투쟁할수록 운동이 확장되지 않고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고 성장하지 못하는 거죠. 20~30대에 대해 시민운동이 그들의 존재를 해석하고, 경험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갈등이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운동의 힘이 세질 것 같아요. 

시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박정은 아까 청년들이 토익시험을 보는데 호응이 있다고 하셨죠? 그러면 토익 시험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거부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나요?

김민수 조직화된 실체가 없어요. 20대에 대한 문제를 많이 느끼실 것 같은데, 선배 세대와 저희 세대 간에 긴장과 갈등이 있어요. 20대가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이 없는 DNA를 타고난 게 아니에요. 10대 때 광우병 집회 나가고, 0교시 폐지하자고 요구하고, 반값등록금 시위한 사람들이거든요. 토익 시험거부라는 투사의 영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참여 경험이 많아요. 근데 지금 20~30대는 박탈감이 심해요. 작게라도 이겨본 경험이 없는 세대에요. 촛불 드는 것이 삶의 조건을 못 바꿀 바에야 도서관 가서 책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정경섭

정경섭 예전에는 사회를 바꾸는 사람들의 주요 정서가 개인적 욕망을 내려놓는 순교자적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개인의 욕망이 구현되면서 사회가 바뀌는 선순환 구조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동물병원 협동조합을 하는데, 1년 만에 조합원이 570명이 됐어요. 대부분이 20~30대 여성인데, 이분들은 지역에서 정말 못 봤던 분들이거든요. 마포에 성미산 중심으로 육아 공동체 같은 것들이 있지만, 아이 없는 사람들은 끼기 힘들거든요. 근데 동물은 세대를 넘어 얘기할게 많아요. 반려 동물 키우는 분들은 병원비 같은 것들이 절실한 문제인데, 이런 욕망들을 구현시킬 수 있는 것이 사회운동과 만나야 할 시점이 온 것 같아요. 

박주민 세월호 때 소위 ‘유모차 부대’라고 하는 엄마들이 나왔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전에는 아이에게 유기농 이유식 먹이고 좋은 유치원 보내는 게 잘 키우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월호 이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아이를 잘 키워도 비행기 잘못 태우거나, 수학여행 잘못 보내면 사고가 나니까 ‘애를 잘 키우는 게 뭐지?’ 이런 고민이 들게 된 거죠. ‘독자생존’ 만으로 안 되고, 사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에요. 이런 일들이 점점 많아질 텐데, 현상과 본질의 고리를 찾는 고민들이 모이게 해야 되요. 근데 이런 활동을 하면  동네에서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깨달음을 주는 것 하나, 편하게 오프라인에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할 것 같아요.

구태의연한 정치의 반복을 막는 법?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박주민

박주민 세월호 가족 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봐요. 이야기 하다 보니 이런 생각에 미쳤어요. 광주 518은 15년 만에 특별법 만들고 34년 만에 학살자들 재산을 환수했는데, 어떻게 가능했지? 5.18을 계기로 광주라는 도시의 성격이 바뀌었어요. 광주에서는 5.18 문제 해결 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표를 못 받는 거죠. 부모님들한테 안산을 바꿔보자고 얘기했어요. 안산과 주변 지역까지 포섭해서, 세월호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면 당선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고요. 세월호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역운동으로 전환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정은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번에 김득중(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지부장)씨가 평택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잖아요. 평택은 다수의 쌍용 자동차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충격적인 강제진압도 다 봤고, 많은 분들이 자살도 했는데 당선 안됐어요. 

박주민 지역 운동이 쉽진 않겠죠. 얼마 전,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시장과 골목으로 파고들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들 자신 없어 하더라고요. 우리끼리 카카오톡·팟캐스트· SNS 할뿐이지, 그들을 설득하고 파고 들 수 있느냐, 또 그런 노력을 해왔냐고 하면 다들 대답 못해요. 지역 활동을 몇 년 동안 했어도 결과가 같았을까요? 안산 단원구는 한 집 건너 하나가 희생자여서 지역적 블록을 가지고 있어요. 마음먹고 지역 사람들하고 얘기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박정은 지역운동을 해야 된다고 하는데, 공중전(중앙 정부나 국회 등 중심을 대상으로 한 운동)은 필요 없을까요? 공중전도 필요하고, 지역(아래)으로부터의 대중적인 운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주민  ‘공중전’이라는 게 애매해요. 우리는 매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 카카오톡·팟캐스트·SNS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반이 있어야 해요. 100만이 팟캐스트를 듣는다고 하는데, 200~300만으로 늘어나야죠. 우리가 해온 공중전과 대중이 분리된 게 아니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둘 다 잘해야 하는 상황인거죠. 저변을 넓히는 운동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못써오지 않았나 싶어요.

시민운동의 저변확대, 어떻게 가능할까?

윤기돈 지역이든 어떤 그룹이든, 소통망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원자력공학과를 나와서 페이스북 친구 중에 ‘핵마피아’가 다수 있어요.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하지만,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거예요. 저는 생명운동, 녹색운동이 궁극적 운동이라고 보지만 현재로서는 부문운동일 수 있어요. 이 사회에서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쌓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지금은 모든 의제들이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지고 있잖아요.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힘이 분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정은 세월호 국면에서 분출했던 에너지를 어떻게 소진시키지 않을 것이냐.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촛불집회 이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탄핵 정국, 광우병, 세월호 등등 사건이 많았는데, 소진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여연대는 그동안 제도 개선 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김민수 촛불이 시민사회에 주는 반대급부가 있는 것 같아요. 집회에 10만이 모이면 그게 다 우리 저변처럼 보이는 거죠. 개인적 삶을 살다가 화가 나서 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우리의 저변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반대로, 이 사람들이 다시 안 나오면 소진됐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보수적인 시민을 진보적 시민으로 생각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홀로 외롭게 존재하던 개인을 사회적 관계로 끌어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밥 혼자 먹던 사람이 반려동물을 계기로 사회에 나오는 거잖아요. 거칠게 이야기하면, 시민운동은 프레임·전술·전략이 과잉상태인 것 같아요. 밀양, 강정 같은 현안이 발생했을 때 사회적 당위로서 동력을 유지시키는 것 아닌가. 현재의 시민운동에겐 소소한 가치나 일상의 부대낌을 느끼는 현장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정경섭 그래서 정치적 의미를 찾아야 해요. 반려동물이 어떻게 태어나서 소비되고 죽는지 전 과정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중요해요. 이제까지 시민운동은 그러지 못했죠. 국가 권력에 대한 정치만 해왔는데, 담론을 넓혀야 해요. 진보정당에서 잘 했으면 하고 기대했는데, 잘 못했죠. 시민운동이 그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윤기돈

윤기돈 변화라는 것이 제도를 바꿔내고 뭘 없애고 이런 거 대신 어떻게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될 거 같아요. 그동안의 운동은 개별 단체가 어떻게 주도하고 인지도를 넓히고 회원을 늘릴지 고민했어요.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운동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좋은 건데, 우리 단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해요. 예전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존재했죠. 단체들도 ‘각자도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저변을 확대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변화의 대상이다

박정은 각자도생하지 말고 같이 해요(웃음).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아니면 망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죠. 우리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민주주의 확장에 기여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우리만 잘한다고 안 되더라고요. 시민운동 확장이든 사회 변화든 저변을 넓히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서 이런 고민들을 다시 평가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주세요.

김민수 20년 축하드리고(웃음), 서두에 말한 것처럼 급박한 정세도 많지만, ‘운동의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더 자세히 토론해보고 싶어요. 지금 선배님들 역할을 새로운 사람이 메꿔가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새로운 운동의 양상을 만들고 사회적 관계를 회복해야 할 지 고민 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정경섭 세월호 문제와 함께 밀양도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책을 보니까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기아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프리카나 제 3세계의 생산물이 북반구로 가고 제 3세계는 계속 기아에 머물게 되는 구조잖아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지역이나 농촌의 누군가를 수탈하고 있다는 것인데 다른 지역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큰 단체들이 주도적으로 담론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도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을 수 있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가 모아지길 바랍니다. 

윤기돈 2008년 광우병 이후 운동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는 많았어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비통함, 이것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광주 시민들이 5.18을 잊지 못했던 것처럼. 쉽게 잊힐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나처럼 시민들도 잊지 않을 거라고 믿고 긴 호흡으로 변화를 모색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박주민 바뀌어야 한다는 범위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어요. 세월호 참사가 정치권의 문제도 있지만 개개인의 탐욕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이 빚은 일이기도 하잖아요.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바뀌어야 해요. 그리고 어떤 변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잘 엮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세월호 참사가 그 가능성을 약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광화문 광장에 소속 없는 사람들이 와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얘기를 하잖아요. 

박정은 오늘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