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4년 09월 2014-09-01   706

[읽자] 책을 읽기 전에 해야 할 일들

책을 읽기 전에
해야 할 일들

박태근 알라딘 인문MD가 권하는 9월의 책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늘 부족하고, 독서보다 급한 일은 쉬지 않고 찾아온다. 때에 따라 핑계거리가 다르겠지만, 책을 두고 읽는 공간, 서가와 책상 정리는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물론 두 가지 일을 하고 나면 마치 독서를 마친 듯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홀가분해 정작 독서가 힘들어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독서를 위해서라면 책상과 서가를 멀리할 수 없다. 내 취향이 가지런히 정리된 책상에서는 새로운 생각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싶어지기 마련이고, 겉보기에는 무질서하게 보이더라도 내 독서 이력과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긴 서가를 둘러보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어떤 책을 꺼내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읽자’라고 외치기 전에 둘러봐야 할 책상과 서가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책상에 놓인 것과 놓이지 않은 것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데스크 프로젝트-100명의 채상이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김종민 지음/스윙밴드

서점에서 일하다 보니 책상 위에는 언제나 책이 가득하다. 매일 새로운 책이 쏟아지니 며칠만 방심해도 책이 탑이 되고 탑이 모여 성을 이루어 옆 사람이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나야 매일 보는 책상이라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지만,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책상을 본다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 『데스크 프로젝트』는 전 세계 크리에이터 100명의 책상을 한데 모았다. 책장을 넘기며 개성 넘치는 책상 사진과 책상에 대한 감상을 살펴보자면, 책상의 주인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이 물건을 왜 책상에 두었으며, 이런 책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누군가는 꿈꾸는 공간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이라 말하는 책상은, 여느 가구와는 달리 내 마음과 생각과 성격과 지향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다채로운 책상과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내 책상으로 시선이 움직인다. 내 책상은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까. 『데스크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행하여 세계적인 기획으로 만들고 책으로 펴낸 이 책의 저자 디자이너 김종민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만의 책상이 있나요, 하루에 책상이 있는 공간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시나요,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그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나요, 주변에 어떤 물건들을 두고 있습니까, 어떤 물건이 가장 특별하게 느껴지나요.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가지런히 놓고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기에 앞서, 이 질문들에 답하며 책상에 어울릴 법한 책을 골라보면 어떨까 싶다.

책을 버려야만 책을 읽는다

참여사회 2014년 9월호 (통권 214호)
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 정은문고

서가에 비하면 책상은 좁은 공간이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책상이 일상과 오늘을 보여준다면, 서가는 인생과 전 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인지 나는 집에 놀러온 이들이 내 서가를 둘러보는 게 부끄러우면서도 남의 집에 가서는 그이의 서가를 찬찬히 둘러보며 그의 시간을 읽는다. 서가 정리는 책과 독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제와도 같다. 이 글을 쓰며 고개를 돌려 서가를 보니, 이런 말을 꺼낼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하다. 사방이 서가로 가득 찬 데다 서가에는 책이 두 겹으로 쌓였고, 서가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책들이 라면 상자에 담겨 집 안에 새로운 벽과 길을 만드는 지경이니, 책이 사는 집인지 사람이 사는 집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3만 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오카자키 다케시는 이를 『장서의 괴로움』이라 말한다. 이 책에는 책에 지쳐 헌책방을 부르거나, 책을 위한 집을 다시 짓거나, 스스로 헌책 시장을 열어 책을 처분하는 등 책과 치른 전쟁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가 겪은 이야기에 일본의 여러 작가와 장서가가 겪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책 고생’을 보니 이미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 할 내 이야기인 듯싶어 눈앞이 깜깜하다. 저자는 책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는 방법을 차례로 제시하는데, 결과는 버려야만 한다는 진리다. 책이 쌓이면 지적생산의 과정도 막혀 제대로 순환되지 않고 정체될 뿐이니, 필요한 책은 언제든 손이 닿을 수 있게 하고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손에서 놓아주라는 말이다. 그는 대략 500여 권이 적당한 장서량이라고 말하는데, 언젠가 이 정도 수효로 서가를 관리하며 새로운 책 한 권을 넣으려면 지난 책 한 권을 과감하게 집 밖으로 내보낸다는 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가 4~5년은 흐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서가에서 내보낸 책은 한 권도 없다. 일단 『장서의 괴로움』을 꽂아둘 자리를 마련해보려고 한다. 가을은 이별과 그리움의 계절이기도 하니, 제법 어울리는 일 아닌가. 어떤 책을 빼낼지, 이 고민이 가을이 지나기 전에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박태근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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